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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후 농촌이 사라진다] 단순 먹거리 생산 아닌 식량안보·생태보전 ‘첨병’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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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후 농촌이 사라진다] 단순 먹거리 생산 아닌 식량안보·생태보전 ‘첨병’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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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공약적 가치 높은 농촌마을 / 농업 다원적 기능에 주목 / 곡물 자급률 24%… OECD 최하위 / 국민생존 직결 식량안보 되새겨야 / 홍수 조절·대기 정화 등 역할 다양 / 국민에게 무형의 공익 서비스 펼쳐 / 농정 패러다임 전환 시급 /직불금제,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수 / 지속 가능한 영농할때로 제한 필요 / 헌법에 담긴 조항들 현실 반영 못해 / 식량 주권·농업 유지 근간 만들어야

우리나라 농촌의 농경지 흙(토양) 가치는 얼마나 될까. 지난 3월 ‘흙의 날’을 맞아 농촌진흥청이 흙의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공익적 가치를 발표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국내 토양의 가치는 한 해 280조6000억원으로 평가됐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또 농경지는 팔당댐 16개 크기인 39억t의 물을 저장한다. 이런 흙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초고령화로 머지않아 농촌 마을이 붕괴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농촌의 공익적 가치도 함께 사라진다. 선진국에서는 농업을 단순한 산업이나 경제 논리의 관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보존의 대상으로 판단한다. 선진농업의 큰 흐름은 지속 가능성이다.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식량안보·환경보전 공익적 가치 충분

농업과 농촌의 가장 큰 공익적 기능은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다. 식량안보 관점에서 보면 농촌은 국민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농촌은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논과 밭에는 9000만t의 토양산소가 저장돼 있다.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7000t에 맞먹는 양으로 지리산 171개의 산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를 낸다. 농경지가 없다면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그만큼 준다.

이처럼 농경지는 누구에게나 혜택을 주는 다원적 기능을 한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활동이 연간 산출하는 부가가치 중에서 시장에서 가치가 실현되는 농산물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부가가치를 말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올해 우리나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결과 연간 28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는 농업의 실물부가가치 22조원보다 6조원이나 더 많다.


농경지는 식량생산이라는 고유 기능 외에 홍수 조절과 수자원 함양, 대기 정화, 수질 정화, 토양 보전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농경지의 다원적 기능은 토지 소유주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나눠준다. 경기도개발연구원이 2014년 경기도 내 농업의 가치를 환산한 결과 4조∼5조원에 달했다. 이는 수도권 거주자 가구당 51만∼59만원의 무형의 공익적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보호하고자 직불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직불금제는 농가의 소득 보전이 아니라 다원적 기능 확산에 대한 정당한 보수인 셈이다. 이 때문에 직불금 지불은 지속가능한 영농활동을 할 때로 제한하고 다원적 기능 확산의 기여도에 따라 지급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KREI 김수석 선임연구위원은 “직불금제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친환경영농 조건 구비와 이행 의무가 전제돼야 한다”며 “스위스에서는 직불금 유형이 경작경관과 식량안보 등으로 다양하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농경지 면적은 1970년 이후 지금까지 46만2000㏊가 줄었다. 지난 48년간 매년 1만6853㏊의 농경지가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시민들이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KREI가 2017년 10월 도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의식 조사한 결과 70%가 공익적 기능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1년 전보다 7.9%가 증가해 갈수록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유지를 위해 세금을 부담하겠다는 응답도 53.0%에 달했다.

◆지속가능한 농업 헌법에 명시


우리나라 헌법에 농업을 담고 있는 조항은 두 개뿐이다. 121조의 경자유전 원칙과 123조의 국가가 농산물 가격 안정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두 조항 모두 현재의 농업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문재인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헌법에 농업·농촌의 기능과 역할, 국가의 지원의무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에 농업·농촌에 의무를 부여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정 헌법에 포함돼야 할 사항으로 두 가지가 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를 명시하는 것이다. 국가가 식량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다. 또 하나는 직접지불제의 근거를 헌법에 담는 것이다. 국가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수행에 대해 직접지불 방식의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식량주권 확보와 함께 농업·농촌 유지의 근간이 되는 대목이다. 농업생산량이나 농지에 비례한 국가 보조를 줄이는 대신 생태보호 역할에 따른 농가소득 보전정책을 펼 수 있게 된다. 농정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는 것이다.


선진국은 헌법에 농업의 공익적 역할을 명시한다. 국가 지원의 정당성도 담고 있다. 스위스는 1996년 연방헌법을 개정하면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보상원칙을 규정했다. 환경친화적인 생산을 전제로 직접지불제 운영도 명시했다.


농협과 농민단체는 농업가치를 헌법에 반영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3월 개헌안 2차 발표 때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보전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명시한 내용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농업계의 염원이 어느 정도 헌법에 담긴 것이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확산과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정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선진농업의 기준으로 지속가능 여부를 가장 먼저 따져야 한다. KREI 임영아 연구원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토양 복원이 중요하다”며 “윤작 등을 활용한 농지의 지속 가능성과 토양의 회복 능력을 초과하는 농약과 비료 사용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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