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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Why] 학교 떠나겠다던 '미투'교수, 잠잠해지자 막후에서 여론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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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뉴스초점] 미투 운동 100일… 처벌 지지부진 미투 운동 소강 국면 경찰 70건 들여다봤지만 구속은 이윤택 등 2건뿐 발의된 140여개 법안은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아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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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고위 인사에 의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한국의 미투 운동이 100일을 넘겼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연극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재현 등 유력 인사의 잇따른 성(性) 추문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줬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성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방적인 폭로전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미투 운동은 최근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경찰은 미투 운동과 관련해 총 70명에 대한 성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수사에 착수한 대상은 20명 정도다. 연출가 이윤택과 극단 대표 조증윤 등 2명만 구속 기소되는 데 그쳤다. 제도 개선도 요원하다. 국회에선 올해 초부터 140여건이 넘는 미투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미투 소나기'가 그치고 남은 건 가해자들의 꼼수다. "평생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던 이들은 반성문 쓸 때의 초심을 잃어버린 걸까. 잠잠해진 여론을 틈타 호시탐탐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피해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며 막후에서 여론전을 펼치고, 폭로자를 상대로 역(逆)고소전을 벌인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납작 엎드렸다가 슬그머니 사퇴 의사를 거둬들인 국회의원도 있다. 미투가 수면 아래로 접어들려 하자, 보이지 않는 곳에선 피해자 가슴에 칼을 꽂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막후 여론전에 역(逆)고소까지

올해 대학가에선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미투 폭로가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동 지역 전문가였던 한국외대 A교수는 지난 3월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제보자가 "(A교수로부터)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모텔에 가자'는 등 지속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투서가 소셜미디어에 퍼진 직후였다. A교수는 "최선을 다했는데 책임을 지지 못해 죄송하다"며 '학교를 떠나겠다'는 사퇴의 변(辨)을 밝혔다. 학교 측은 A교수의 사표 수리를 보류했고 자체 위원회를 꾸려 조사 중이다. 진상조사 결과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징계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A교수는 최근 막후에서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 등을 상대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성추행이 아닌 순수한 감정이었다'는 식으로 결백을 주장하고 자신에 대한 구명(救命)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받는 식이다. A교수의 전화를 받았다는 한 대학원생은 "논문을 써야 하지 않겠냐며 운을 띄우더니 탄원서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2000년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2008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현재 논문지도를 받고 있는 한 대학원생은 "논문을 구실로 갑질을 하다 성추문에 휩싸인 사람이 다시 이를 이용해 '셀프 구명'을 하고 있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일지(본명 임종주) 동덕여대 교수는 자신을 상대로 미투 폭로를 한 학생을 고소했다. 그는 수업 도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김지은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2년 전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피해 학생의 증언이 나왔다. 하 교수는 즉각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한 달 후 해당 학생을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및 협박으로 고소했다. 그는 "익명 뒤에 숨어 한 개인을 인격 살해하는 인민재판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비대위를 꾸려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 학생회는 "피해자 진술도 받지 않고 하 교수도 출석하지 않는 등 부실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사 진행 경과에 대한 공유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담센터 등을 통해 간접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미투 폭로가 진실 공방과 소송전으로 얼룩지는 동안 피해자는 정신적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일단 초강수 두고 뒤집기도

'일단 피하고 보자'는 유형도 있다. 사퇴 등 초강수를 두어 상황을 무마하고, 여론이 잠잠해졌을 때 이를 거두어들이는 식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을 두고 '미투 대응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민 의원은 지난 3월 사업가로 알려진 한 여성이 10년 전 자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즉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며 "(국회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 의원 가족들도 "사퇴는 자신의 엄격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거들었다.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 변명부터 하고 보는 당시 세태에 비춰 민 의원의 대응이 '신선하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는 두 달 만인 지난 4일 "당과 유권자의 뜻에 따라 사직을 철회하고 의정 활동에 헌신하겠다"고 국회의원 사직서를 스스로 거뒀다.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구 주민 6539명의 탄원서를 근거로 들었다. "미투 운동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 쇼를 벌였다"는 비난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지난 2월 이윤택과 함께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하용부 전 밀양연극촌장은 의혹이 제기된 직후 "다 내려놓겠다"며 인간문화재 반납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가무형문화 제68호인 밀양백중놀이 기능 보유자다. 하지만 석 달이 넘은 아직까지도 아무런 반납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힘파시(himpathy)?

시작은 떠들썩했던 미투 운동의 끝에 가해자들의 꼼수가 횡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힘파시(himpathy)'를 꼽는다. 힘파시는 '그(him)'와 '동정(sympathy)'의 합성어로 가해자에 대해 소속 집단의 구성원이나 대중의 부적절하고 과도한 동정을 뜻한다.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권위나 경제적 부(富)가 클수록 힘파시도 커진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분석했다. 케이트 만 코넬대 교수는 "한 분야의 권위자가 물의를 일으켜도 나중엔 끼리끼리 봐주기식 문화가 작용해 제 식구를 감싸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검찰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검찰은 자체 조사단을 꾸려 85일간 관련 의혹을 수사했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안태근 전 검사장을 비롯한 7명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성추행 은폐 의혹의 실체를 정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서 검사가 수사 필요성을 강조한 2차 피해와 관련해서도 의견 표명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추가 감찰 조사를 요청했다. 법무부 성범죄·성희롱 대책위원회도 "검찰 내부 등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여전히 의문이 있다"며 '셀프 조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힘파시'는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도 한다. 지난 2월 연극계에선 극단 목화의 연출가 오태석을 상대로 한 성추행 피해 증언이 나왔다. 오씨는 입장 표명 없이 잠적했다. 제보자는 이후 '오태석이 무너지면 한국 연극이 무너진다'는 식의 반(半)협박성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 사이 극단 목화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페루와 루마니아에서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성폭행 의혹에 연루된 배우 조민기씨가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땐 일부 네티즌이 피해자의 소셜미디어로 몰려가 협박성 메시지를 남겼다. "당신이 사람 한 명 죽였다" "그때 가서 말하지 왜 이제 와서 그랬냐"는 글들이 달렸다.

결국 피해자가 모든 것을 짊어진다.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투서한 한 대학원생은 "미투 관련 뉴스에 무고죄를 강화하고 꽃뱀을 조심해야 한다는 댓글을 보면 고통스러워 숨이 막힌다"고 했다. 상급자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미투 운동 활동가로 변신한 남정숙(전 성균관대 교수) 전국미투피해생존자연대 대표는 "정부가 대책 마련에 쉬쉬하는 동안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2차 피해만이 남았다"고 분석한다. 그는 "피해자들은 인생을 걸고 용기를 내 사실을 알리는 만큼 사회적인 지지와 조속한 조치가 절실하다"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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