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류중일 감독이 28일 2018KBO리그 넥센히어로즈와 LG트윈스의 시즌 2차전을 승리한 후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고척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이웅희기자] LG는 지난주 사인훔치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상대팀 사인을 적어 경기장 안에 붙여놓은 게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이전에도 사인훔치기 여부를 놓고 종종 양팀이 신경전을 벌인 적 있지만 이번처럼 확실한 ‘증거’가 잡힌 적은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급히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내렸지만 벌금을 걷는데 바빴다.
LG는 지난 18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원정경기에서 더그아웃 쪽 통로 근처에 KIA 배터리의 구종별 사인 분석 내용을 A4 용지에 적어 붙여놓았다. 이 종이가 외부로 공개되면서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상대팀 사인을 훔쳐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야구에서 사인훔치기는 일반적이다. 경기 전 선수들이 상대 사인 패턴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상대에 사인을 들키지 않는 것도 경기의 일부라고 말한다. 경기 도중 코치와 선수들이 수신호로 사인을 주고 받는데 이를 상대팀에 들키지 않으려고 정해진 이닝마다 사인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사인훔치기는 그 증거가 잡혔다는 점과 누상에 나간 주자가 포수의 구종별 사인을 보고 타자에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큰 문제였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LG가 부랴부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전력분석팀이 주자들의 도루에 도움을 주고자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쓰임새를 도루로 한정해 사죄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를 앞두고 인쇄물 형태로 선수단 전체가 상대 사인 정보를 공유했다는 점은 분명 KBO리그 규정을 어긴 행위다. 사인을 훔쳐 경기력 향상으로 연결시켰다는 개연성 높은 추측은 야구의 순수성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LG에 주홍글씨처럼 ‘사인훔치기’가 따라다닐 게 분명하다. KBO는 지난 20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KBO리그 규정 제 26조 2항에 명기된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사항 위반을 이유로 LG 구단에 벌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LG 양상문 단장에게는 엄중경고, 코치진과 선수단 관리에 책임있는 LG 류중일 감독에게 제재금 1000만원, 1·3루 주루코치인 한혁수, 유지현 코치에게도 각각 제재금 100만원의 벌금 징계를 내렸다. “의도성과 별개로 일반적이지 않은 이번 사건이 리그 전체의 품위와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징계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사인훔치기 논란은 두고 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다. 불신이 싹트면 서로를 속이는 기만이 된다. 기만은 갈등과 대립의 증폭을 부른다. 예를 들어 특정 경기에서 타자가 마치 상대 투수의 구종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잘 친다면 ‘색안경’을 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벌금으로만 끝난 KBO의 징계도, 사죄로만 끝난 LG의 자체 징계도 아쉬울 따름이다. 논의와 판단의 프레임이 현실적인 상황을 아우르기 힘든 구조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망각의 시계추가 작동하더라도 따끔했던 기억을 잊지 않을 장치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번 징계를 보면 벌금만 내면 끝날 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인간의 정의를 통찰한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자에게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으면 향후 더 치밀한 연막 속에 유사한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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