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판도라 상자’로 여겨지는 장자연 사건이 9년 만에 재조사에 들어간다. 그동안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달라”는 재수사 촉구 목소리가 높았으나 지지부진하다 올해 초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이 23만명을 넘어섰다.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정치권 이곳저곳에서도 구체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결국 이 사건을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지난 2일 10차 회의를 열고 1차 사전조사 사건을 대상으로 고 장자연 사건을 포함한 2차 사전조사 대상 5건을 선정했다. “과거사 정리의 의미와 사건의 중대성,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해 대상 사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장자연 사건은 대검찰청에 설치된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사전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이후 수사착수 경위나 수사과정에 의혹이 있는 경우 ‘본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 2009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자연 사건은 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받아 오다, 이를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와 성상납 대상자인 유력인사 리스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일명 ‘장자연 리스트’에는 언론계 인사, 방송사 PD, 중견기업의 오너 등 유력인사 30여 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경찰은 접대 의혹 등으로 수사 선상에 오른 17명 중에서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아무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와 전 매니저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것 또한 폭행이나 협박 혐의였다.
경찰은 “술자리 접대를 받은 사실은 확인했으나, 범죄 관련성이 확실하지 않아 내사중지 또는 내사종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예상대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재조사 이후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 의혹을 받고 있는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성역없는 조사가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 리스트에 오른 유명인사들에 대한 줄소환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결과도 투명하게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
장자연 계좌에 입금된 고액 수표에 관한 배경도 밝혀야 한다. 지난 달 말 방송된 KBS ‘뉴스9’에 따르면 “장자연 사건 수사 당시 금융거래를 집중 조사한 결과억대 수표를 입금한 남성 20여명의 명단을 경찰이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방송은 ”그러나 성접대 대가로 의심 가는 대목이지만 황당한 이들의 변명을 들은 경찰은 수사를 중단했고 수사 결과 발표에도 고액 수표 입금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중 유명 기업인과 고위 공무원 등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금 내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입증하지 못했는지 재수사 과정에서 밝혀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수사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9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전 국민적 바람 또한 거세다. 하지만 미궁 속에 빠졌던 실체와 혐의가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났다. 사건의 당사자가 살아있지 않고 대부분의 성폭력 관련 법들의 공소시효 또한 5년과 7년 등으로 짧은 편이다.
이번에도 공소시효를 감안해 수사나 징계를 의뢰하는 수준에서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풀어낼 의지가 있는지 역시 알 수가 없다. 당시엔 검찰 조사가 서면으로 대부분 이뤄졌다. 이번엔 달라야 하는데, 뜨거운 감자인 서지현 검사 사건이 대대적인 수사팀을 꾸리고도 이렇다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건 왜 일까.
장자연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일단 술 접대와 성 접대에 대한 강요와 성폭행 부분이 있었는지를 한점 의혹 없이 밝혀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검찰이나 경찰이 내부적으로 수사를 무마한 정황이 있는지, 외압이나 봐주기 논란은 없었는지를 가려내는 것 또한 핵심이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대한 국민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시대 ‘미투 운동’의 종결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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