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삼성 대 두산 경기에서 관중이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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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 더 스포츠-82] 미세먼지라는 불청객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KBO리그는 개막 첫날에만 9만6555명을 동원하는 등 주말 2연전 동안 총 18만명이 넘는 야구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는 역대 개막전 관중 수 2위에 해당하며, 동시에 전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한국프로야구는 올 시즌에도 역대 최대 흥행을 위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개막 직전에 있었던 미디어데이&팬페스트 행사 또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각 구단 주요 선수들의 우승 공약이었다. 올해는 선수들의 우승 공약이 예전에 비해 구체화되고 스케일도 커져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우승 직후 댄스나 탈의 등 단순 퍼포먼스 위주였던 공약에서 벗어나 올해는 팬들에 대한 식사 대접, 경기장 내 캠핑, 전지훈련 무료 초청 등 파격적인 공약이 나왔다. 2015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시작돼 어느덧 팬페스트 행사의 공식 Q&A가 돼버린 선수들의 우승 공약은 재미라는 요소가 과장되게 가미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구단 및 선수, 나아가 팬들의 희망과 기대가 투영돼 매년 업그레이드돼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간([지난 칼럼 바로가기])에 이야기했듯이 선수들의 화끈한 공약만큼이나 리그 우승은 쉽지가 않다. 36년간 KBO리그 역사에서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기준으로 현존하는 팀들 중에서 우승을 경험한 구단은 총 7개 구단이다. 신생 팀이라 할 수 있는 넥센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kt 위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 번 이상 우승의 달콤함을 맛봤다. 하지만 범위를 '2000년 이후'로 좁혀보면 우승을 경험한 팀은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등 단 4개 구단(현대 제외)에 불과하다. 롯데 자이언츠(1992년), LG 트윈스(1994년), 한화 이글스(1999년)는 짧게는 18년에서 길게는 25년 동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특히 충성도가 높고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이 3개 팀이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은 리그 전체를 봐서도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포츠에 각본이 없는 만큼 프로야구에서 우승이란 단순히 뜻하기만 하고 또 간절히 원한다고만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프로야구가 사람들로부터 더욱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프로야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메이저리그 구단 30개 중 우리의 한국시리즈로 비견될 수 있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팀은 시리즈가 시작된 1903년 이후 총 23개 팀이다(2000년 이후 13개 팀). 이 23개 팀 중 가장 오랫동안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하고 있는 팀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1948년 이후 무려 69년째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클리블랜드 팬들 중에는 평생 한 번도 자신의 응원 팀이 우승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뜻한다. 또 1949년 이후 출생한 클리블랜드 팬들은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팬들의 불행은 예전 시카고 컵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의 불행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물론 이 팀들은 최근 오래된 숙원을 풀었지만 짧게는 86년(보스턴 레드삭스), 길게는 108년(시카고 컵스)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LA 다저스(1988년 이후 29년째), 피츠버그 파이리츠(1979년 이후 38년째)는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그래도 그나마 이 팀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이전에 한 번이라도 우승을 해보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달리 아직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우승해보지 못한 메이저리그 팀 또한 7개나 있다. 이 팀들 중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같은 비교적 최근에 창단된, 소위 신생팀(1998년 창단)도 있지만, 이미 창단한 지 꽤 오래된 팀도 상당수다. 특히 박찬호와 추신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는 1961년 팀 창단 이후 무려 57년간 단 한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도 맛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일본 프로야구는 그래도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재팬시리즈 기준으로 현존하는 12개 일본 프로야구팀들은 모두 한 번 이상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경험이 있다. 2000년 이후 우승한 팀은 8개 팀이다. 가장 오랜 기간 우승을 못했던 팀은 주니치 드래건스로 첫 우승인 1954년 이후 53년 만인 2007년에야 시리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반면 한신 타이거스와 히로시마 도요카프는 가장 최근에 우승한 때가 1985년과 1984년으로 각각 32년, 33년째 우승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구조적으로 볼 때 더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면 정상의 자리는 단 한 개뿐이고 미국, 일본, 한국의 팀 수가 각각 30개, 12개, 10개임을 감안하면 단순 확률상으로 봤을 때는 한국프로야구 팀들의 우승 확률이 당연히 더 높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팀 수가 많은 만큼 단일 리그가 아닌 양대 리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리그 1위에 대해서도 우승으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총 30개 팀으로 운영되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양대 리그 우승과는 별도로 5개 팀으로 구성된 각 지구(division)별 1위 팀에도 우승팀(champion)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미국, 일본 프로야구에서 2000년 이후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한 팀은 각각 피츠버그와 오릭스 버펄로스가 유일하다. 나머지 팀들은 모두 크든 작든 우승 경험을 갖고 있다.
반면 KBO리그는 알다시피 10개 팀이 단일 리그로 운영되고 있다. KBO 또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분리하고 각각의 타이틀을 부여하고 있지만, 한국형 플레이오프라는 제도상의 한계를 감안할 때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팬들이나 선수들 또한 정규시즌 우승에 대한 가치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리그의 전체 팀 수는 미국과 일본이 많지만, 세분화돼 5~6개 팀이 하나의 지구 내지 하위 리그로 운영되고, 우승팀을 가린다는 점에서 우승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미국과 일본 팀들이 우승할 확률이 당연히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희소성이 높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당연히 더 높은 가치가 있다. 따라서 지구나 리그의 '작은' 우승과 월드시리즈나 재팬시리즈 그리고 코리안시리즈의 '큰' 우승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으며, '큰 우승'에 대한 열망과 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KBO리그의 규모나 인기가 커짐에 따라 보다 의미 있고 효율적인 리그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그냥 2018시즌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드림리그(가칭) 우승팀이자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이 당연히 더 의미 있다. 이는 구단 또한 마찬가지다. 똑같은 콘텐츠라도 운영 방식에 따라 더 재미있고 가치 있을 수 있다. 굳이 희소가치에만 매몰될 필요는 없다. 지금과는 다른 운영 방식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정지규 스포츠경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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