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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흑인 안타까워하는 백인 연예인… 늘 보던 구호단체 홍보물 뭔가 불편한데?

조선일보 최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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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흑인 안타까워하는 백인 연예인… 늘 보던 구호단체 홍보물 뭔가 불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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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구원자' 이미지 등 논란일자 英구호단체 홍보물에 연예인 빼
굶주림과 병 때문에 거의 뼈밖에 남지 않은 아프리카 빈곤국 아이들이 큰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아이의 옆에 서 있던 유명 인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도움을 호소한다. 국내 TV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호단체의 광고 방송이다. 이런 형식의 구호단체 광고에 대한 비판이 영국에서 제기됐다.

영국 구호단체 '코믹 릴리프(Comic Relief)'의 대표 리즈 워너는 23일(현지 시각)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유명인을 내세운 홍보 영상을 만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영국 유명 가수 에드 시런을 내세워 만든 홍보 영상이 예상치 못한 비판을 받은 게 계기였다. 이 영상이 '백인 구원자(white savior)'가 가난한 흑인을 구제하는 이미지를 정형화하고, 다른 사람의 가난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해 라이베리아를 찾은 영국 가수 에드 시런(왼쪽)이 “이 아이들은 보트에서 생활한다”며 옆에 앉은 아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코믹 릴리프 영상 캡처

지난해 라이베리아를 찾은 영국 가수 에드 시런(왼쪽)이 “이 아이들은 보트에서 생활한다”며 옆에 앉은 아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코믹 릴리프 영상 캡처


당시 홍보 영상에서 라이베리아를 찾은 에드 시런은 길거리의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 "아이들을 모두 데려다 호텔에서 재우고 싶다"고 했다. 처참한 생활 소개에만 집중하면서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다루지 않아, 에드 시런의 감정만 부각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예멘을 찾은 배우 톰 하디, 동아프리카를 찾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등장하는 다른 구호단체의 홍보 영상들 역시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코믹 릴리프가 올해 공개한 홍보 영상에는 연예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프리카 지역 아이들이 직접 자신에게 닥친 문제와 구호활동으로 인해 일어난 변화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유명인을 내세우는 방식의 구호단체 광고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명인들이 등장하면 더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보게 되고 후원으로 이어진다"며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그들의 삶에 도움을 가져다 준다면 무조건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당 의원 앤드루 브리겐은 "코믹 릴리프가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나머지, 좋은 일에 쓰일 모금액을 늘릴 방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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