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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평창 올림픽]차민규 “소치 땐 병실 TV로 봤는데…내가 주인공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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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딛고 출전, 첫 올림픽서 은메달

쇼트트랙 몸싸움 싫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 바꿔

0.01초차 은메달 아쉬움 묻자 “다리가 짧아 그런가 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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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25)는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다. 유난히 코피를 많이 흘리는 소년에게 부모님은 스케이트를 권했다. 재능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한 쇼트트랙으로 주니어 대회 상위권 무대를 늘 휩쓸었다.

쇼트트랙 출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차민규도 변신했다. 몸싸움이 싫었다. 한국체대에 입학한 뒤 2012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어릴 때부터 잘 달려 자신감도 있었다. 순간 스피드가 빠르다는 장점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단거리 선수로 적격이었다.

그러나 1년 만에 불운이 찾아왔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꿈꾸며 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다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병상에 누워 TV로 소치 올림픽을 볼 때는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의사는 부상이 심각해 회복되더라도 선수로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은 스케이트뿐, 하고 싶은 것도 스케이트밖에 없었다. 태극마크를 한번 달아본 다음에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다.

경향신문

3년 동안 이를 악물고 칼을 갈았던 차민규는 대학을 졸업하고 2016년 동두천시청에 입단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이인식 감독과 함께 ‘다시 해보자’고 다짐한 차민규는 그해 1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 한국 빙속 남자 단거리의 간판인 모태범을 꺾고 500m 1위에 올랐다. 당시 대회신기록(35초05)이었다. 그때부터 거침없는 그의 질주가 시작됐다. 지난해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알마티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차민규는 국내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1인자로 올라섰다. 4년 전 눈물을 머금고 TV로 지켜봤던 소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모태범이 슬럼프에 빠진 사이 한국 남자 단거리를 평정했다. 2016~2017시즌 월드컵 2차 대회 동메달에 이어 은메달을 딴 지난해 12월 월드컵 3차대회에서는 34초314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웠다. 당시 기록이 이번에 깨진 올림픽 기록보다 빨랐다. 조금씩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창 올림픽까지 왔다. 첫 올림픽이었다. 다른 국제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올림픽이었기에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추락과 아픔을 겪은 차민규에게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난 13일 중거리인 1500m에서 김민석이 동메달을 따내는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자극을 받았고 동시에 희망도 얻었다.

“나도 일 한번 내보고 싶다”고 말했던 차민규는 바람을 결국 이뤘다. 금메달도, 올림픽 기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영광도 하바드 로렌첸(노르웨이)에게 0.01초 차로 내줬지만 3위 안에만 들자던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한때는 부상과 불운에 좌절했지만, 결국 이겨내고 첫 올림픽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건 차민규는 조금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믹스트존에 등장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벅차다”며 말을 잇지 못했지만 ‘0.01초 차 아쉬움’에 대해 묻자 “다리가 짧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강릉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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