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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올림픽이 끝난 날, 이상화는 드디어 “나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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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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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가 제게 와서 앞으로도 존경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존경한다고 얘기했어요.”

이상화(29)가 고다이라 나오(32)의 이름을 불렀다. 절친했던 사이를 드러내지 않고 라이벌로 지내야 했던 한국과 일본의 스케이트 1인자들은 올림픽 무대를 마치고 손을 꽉 잡았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오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마친 뒤 함께 공식 기자회견장에 자리했다. 금메달은 고다이라가, 은메달은 이상화가 가져갔다.

평창으로 오기 전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던 이상화는 레이스를 마친 뒤 울음을 터뜨렸다. 환호하는 관중 앞에서 눈물을 쏟았고 마지막 16조의 경기가 끝난 뒤 메달 색이 확정되자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다가갔다. 서로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마주한 둘은 잠시 끌어안았고, 울고 있는 이상화를 고다이라는 보듬어주며 말을 건넸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고다이라는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먼저 이야기했다. 상화가 엄청난 부담 속에서 출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해온 노력을 칭찬해주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나는 너를 계속 우러러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이상화가 고다이라의 손을 잡았고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이상화는 “지난 두번의 올림픽에서도 나오는 늘 메달을 따는 나를 축하해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뛰었다는 게 정말 좋은 경험이다”며 “나는 한 종목만 택하기 위해 500m만 출전한 반면에 (나오는) 500m에 1000m, 1500m까지 도전한 데 대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승패로 결론나는 스포츠에서는 경쟁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에서 이상화가 차지했던 여자 500m의 왕좌를 위협해오는 고다이라는 경기장 안에서는 분명한 라이벌이었다. 이상화는 이번 올림픽을 치르기 전 공식석상에서 단 한 번도 고다이라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언제나 ‘그 선수’라고 지칭해왔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국제대회에서 만났고 함께 달렸던 둘 사이에는 경기장 밖에서 더 큰 우정이 있었다. 이상화는 “라이벌이 있어서 우리가 이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덕분에 둘 다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다이라는 둘 사이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하나 꺼냈다. 고다이라는 “3년 전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위를 했는데 경기 직후 바로 네덜란드로 가야 했다. 그런데 공항에 갈 때 상화가 택시를 잡아줬고 택시비까지 내줬다”며 “경기를 내가 이겼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상화는 항상 날 도와줬다. 스케이트로서도, 친구로서도 훌륭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이상화는 기억이 떠오른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 귀엽다”며 ‘세 살 언니’인 고다이라를 바라보더니 “전에 나오가 한국에 왔다. 그때도 우리는 절친했고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챙겨줘야 하는 친구였다”며 “나오랑 시합할 때 졌다고 기분 나빴다거나 하는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항상 1등을 주고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음식을 항상 택배로 보내주는 좋은 친구다”고 ‘친구 나오’를 소개했다.

이상화는 “사실 나는 1000m를 뛰는 이유가 500m로 돌아가기 위해서인데 나오는 1500m까지도 뛰었다. 그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언젠가 둘이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한 적 있다. 나오가 ‘평창에서는 네가 1등해. 내가 2등할게’라고 하기에 ‘아니야. 네가 1등을 하고 내가 2등을 할게’라고 했는데 진짜 내가 2등을 했다”며 웃었다.

이상화는 평창을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선언했었다. 그리고 고다이라는 4년 뒤면 30대 후반이 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또 한 번 대결을 펼치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둘은 또 한참을 웃었다.

고다이라는 고민하다 한국어로 답했다. “몰라요.” 그러자 이상화가 마이크를 받았다. “우리가 작년에 월드컵 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 나갈 거냐고 물으니 나오가 ‘네가 하면 나도 하겠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나는 진짜 (베이징 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지금은 완전히 제대로 쉬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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