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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우주의 오디세이`에서 인공동면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탑승자들. 이들은 우주선의 AI컴퓨터인 할(HAL)에 의해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
[박상준의 사이언스&퓨처-2] SF에는 우주선 승무원으로 동물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서 클라크의 장편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에는 침팬지가 보조승무원으로 훌륭하게 제 몫을 하며, 데이비드 브린의 '떠오르는 행성'에서는 우주선 선장이 돌고래다. 그 밖에 오징어가 우주비행사로 등장한 작품도 있었는데, 손이 많아서 조종간을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같으면 차라리 인공지능(AI)에 맡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화성 여행은 최소한 6개월이 걸리는 긴 시간이 문제라고 얘기했다. 좁은 우주선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승무원들끼리 서로 부대끼는 문제도 있고, 먹을 식량이며 물을 넉넉히 싣는 것도 큰일이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으로 지능을 높인 곰을 승무원으로 태우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봤다. 곰은 겨울잠을 자니까 먹이를 적게 실어도 되고 인간 승무원과 마찰을 일으킬 위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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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스`의 인공동면 포드들. 120년 동안 잠자게 되어 있다. /사진=소니픽처스코리아 |
물론 곰을 똑똑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인간이 인공동면에 들어가는 쪽이 훨씬 쉬울 것이다. 실제로 우주여행 SF에 등장하는 우주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공 동면을 한다. 고전 명작 '2001 우주의 오디세이'(1968)부터 최근작인 '패신저스'(2016)까지 장거리 우주여행을 다룬 SF에서 인공동면은 사실상 클리셰나 다름없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인공동면과 냉동보존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동면은 체온이 아주 낮아져서 최소한의 신체 신진대사만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걸 하이버네이션(hibernation)이라고 하는데, 아마 낯익은 용어일 것이다. 맞다. 컴퓨터의 최대 절전 모드도 바로 이 단어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인공동면은 컴퓨터의 최대 절전 모드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하는 신체 상태를 뜻한다.
반면에 냉동보존(cryonics)이란 글자 그대로 몸을 얼려서 보관하는 것이다. 1998년 영화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는 장거리 우주여행을 떠나기 전에 탑승자들이 순식간에 냉동돼 꽁꽁 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진짜로 이런 방법을 써도 될까. 물은 액체일 때보다 고체 상태, 즉 얼음이 되면 부피가 늘어난다. 따지 않은 사이다를 냉동 칸에 넣어 두었다가 병이 깨져버린 경험이 한 번씩들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을 그대로 급속 냉동시켰다가는 세포 내 수분이 얼면서 세포벽을 다 찢어버릴 것이다. 다시 깨어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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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의 신체 냉동보존 탱크 /사진=알코어생명연장재단 |
미국 알코어(Alcor) 재단에서는 인간을 냉동보존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불치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의 신체를 보존했다가 먼 훗날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 다시 건강하게 되살린다는 것인데, 이들은 혈액을 모두 빼 낸 뒤 일종의 부동액 같은 성분을 대신 넣는다. 이렇게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가능해보이지만, 과연 그들이 미래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긴 하다.
아무튼 알코어 재단의 냉동신체들이야말로 인공동면이 왜 아직까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반례(反例)다. 이들은 일단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기에 냉동보존이라는 실험적 기술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반면에 인공동면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하려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인공동면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하는가. 비윤리적 과학 실험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과실치사로 사법적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실험 기회를 악용하는 반인륜적 범죄의 우려도 없지 않다. 아무리 피실험자 본인에게 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 연구 윤리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저체온요법 자체는 사실 지금도 의학에서 시행되고 있는 기술이다. 심장이나 뇌 등 중요한 수술을 할 때에는 인위적으로 체온을 낮춰 신체 신진대사량을 줄인다. 그러면 산소 소비량도 줄고 외부 자극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 받아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에 훨씬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런 저체온요법은 현재 아무리 길어도 사흘 정도가 한계이며 몇 주나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인공동면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현재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화성행 우주선의 탑승자들이 인공동면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술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2~3주 동안 겨울잠과 같은 상태에 들었다가 다시 서서히 회복하며 깨어난 후 일정 기간 뒤에 다시 동면에 드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인데, 이 연구도 결국은 인체 실험이 관건이다. 저체온 수면 상태로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지, 연구 윤리에 저촉되지 않는 방법으로 실험할 수 있을까.
이렇듯 인체 실험과 관련된 윤리 문제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아이템 하나를 얘기하고자 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1989년 영화 '어비스'에는 알고 보면 정말 놀라운 장면이 하나 나온다. 당연히 특수효과를 썼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사실은 어떤 속임수도 없이, 보이는 실제 상황 그대로 촬영한 장면이다. 다음에 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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