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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정재일 "음악은 모든 예술의 친구…작곡가니 그 이점 살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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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부터 전통음악까지…영화·창극·무용 등 경계없이 창작

청와대 애창곡 '야생화'도 공동 작곡…"박효신, 창작의 열망과 재능 굉장해"

연합뉴스

피아노 치는 정재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영화 '옥자'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전방위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정재일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2018.1.10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소리에 대한 호기심, 음악의 유연함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다. '이게 음악이야?'라고 지나칠 에스키모의 전통 음악에서 감동을 찾아내고, 일본의 전통극 노가쿠(能樂)에 담긴 정체 모를 소리에 매료돼 현지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음악을 향한 '학구열'이 충만한데 창작 재능과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연주력도 갖췄다. 대중음악에서 출발했지만 국악과 클래식까지 흡수하며 영화, 창극, 뮤지컬, 연극, 무용 등 예술 장르로 활동 반경을 확장한 정재일(36)의 이야기다. 작곡가 겸 연주자, 음악 감독 등 딱히 구분 짓기 어려워 음악계에선 그를 전방위 뮤지션이라 칭한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정재일을 만났다. 지난해 방대한 작업을 잇달아 끝낸 그는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음악 감독을 맡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기간 뉴욕에서 열린 '평창의 밤' 행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기념 만찬에서 공연했다. 또 소리꾼 한승석과 협업 앨범을 냈고, 음원차트 1위를 휩쓴 가수 박효신의 신곡 '겨울소리'의 편곡과 연주도 맡았다.

거침없는 도전처럼 보인다고 하자 그는 "음악 하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어드밴티지(Advantage)가 여러 예술과 교류하는 것"이라며 "음악은 모든 예술의 친한 친구이니 그 이점을 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전 예술 생산자보다 소비자로서의 삶이 중심에 있어요. 단지 음악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버티(Creativity)가 있을 뿐이죠. 어느 분야에서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곡과 연주니까요. 그런 경험치가 쌓이면서 제 음악이 다른 어법과 만나 감동을 만들어내기를 원해요. 클래식과 팝을 벗어나면 음악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지만 전 마음가짐이 다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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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음악감독 정재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영화 '옥자'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전방위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정재일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10 scape@yna.co.kr



그의 음악은 여러 작품 속에 알맞은 농도로 용해돼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중 영화 '옥자'에서 재기발랄한 작품 해석력을 보여줬다고 하자 그는 "어느 분야에서나 초보인 것을 즐긴다. 그래야 정신 차리고 긴장하게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예비후보에 이름이 올라있다.

"'옥자'는 스크립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 30%밖에 완성되지 않은 '슈퍼돼지'란 그 생명체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봉준호 감독님이 '우리 영화는 멋있게 가더라도 순간 휘청거리거나 절뚝거리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감독님은 존 덴버의 '애니스 송'(Annie's Song)을 선곡한 것 외에는 가이드를 주시지 않았는데 그 말씀에 힌트를 얻었죠."

그는 강원도, 서울, 뉴욕, 도살장 등 마치 로드 무비처럼 바뀌는 영화의 공간에 맞게 테마 악기를 골랐다. 강원도는 장면에 선행하지 않는 중립적인 음악이 필요해 기타를, 서울은 온갖 기괴한 일이 벌어지며 슬픔과 해학이 공존하니 브라스를 택하는 식이었다.

그중 브라스 음악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1989) 등에서 영감을 받아 투박하지만 강렬하고 선율은 슬픈데 리듬은 '뽕짝'과 닮아있는 발칸반도 집시 음악을 골랐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로 건너가 유튜브로 접한 브라스 밴드 '잠보 아구세비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진행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케스트라와 작업하고서 스코페로 갔다"며 "을지로 지하도 같은 곳에 녹음실이 있어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멤버들이 '노 워리'(No Worry)라고 했다. 엄청나게 에너제틱하게 연주해 '됐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서양 음악에 뿌리를 뒀지만, 그는 우리의 전통 음악에도 관심을 두며 접점을 넓혀갔다. 2001년부터 국악그룹 푸리에서 활동했고 그리스 신화에 판소리를 입힌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음악을 만들었으며, 국악인 한승석과 2014년 1집 '바리 어밴던드'에 이어 지난해 2집 '끝내 바다에'를 내놓았다.

그는 "전통 예술을 창작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좋아한다"며 "처음에는 정악(正樂)에 빠져들었다. 중2 때인가, 작곡가 강석희 교수님이 주최한 현대음악제 개막작이 종묘제례악이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음향이 유니버설(Universal) 하게 들렸다. 이후 푸리의 원일 씨를 만났고 판소리도 알게 됐다. 낯선 것은 지루하거나 관심이 없기 마련인데 어떤 계기로 애정이 다가오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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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 정재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영화 '옥자'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전방위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정재일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10 scape@yna.co.kr



흥미로운 것은 일찌감치 '신동', '천재'로 불리며 보폭을 넓힌 그가 음악가 되기 위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헤비메탈에 빠져 고교생 형들과 밴드를 만든 그는 중2 때 재즈 아카데미 1기생으로 들어갔다. 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으며 1999년 17세에 한상원, 정원영 이적 등으로 구성된 밴드 긱스의 멤버로 활동했다.

"고등 교육을 빨리 받고 싶어서 검정고시를 봤는데 결국 대학을 못 갔어요. 긱스로 앨범 녹음을 하면서 입시도 봤는데 떨어져서 흐지부지됐죠. 그래서 고등 교육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공부에 대한 열망보다 평소 인문학이나 진화 생물학에 관심이 있거든요."

문학보다 인문학을 선호한다는 그는 어린 시절 도올 김용옥 교수의 책과 경전(經典)을 즐겨 읽었고, 지금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등 석학들의 저서를 탐독한다. 경계가 없는 활동 역시 영화, 무용, 뮤지컬 등의 예술과 인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음악과의 앙상블이 빚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음악 자체에 심취해 예술과 삶을 연결하는 개념이 없었다"며 "폼 나는 팝송을 만들고 싶었고, 연주를 열심히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긱스로 활동하던 2000년 무용 작품 '넬켄'을 보며 이 세상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또 "예술을 생계 때문에 일찍이 시작해 내 삶의 철학이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지금도 안갯속에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석학들의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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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뮤지션 정재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과 영화 '옥자'의 음악감독을 맡는 등 전방위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정재일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10 scape@yna.co.kr



2003년 목소리를 담은 '눈물꽃'을 시작으로 솔로 앨범도 간간이 낸 그는 "전 소리를 찾아 헤매는 작곡가"라며 "앞으로는 드라마가 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씨앗이 되는 음악요. 연극이나 오페라, 전시 등 여러 형태로 분화시킬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가창은 박효신 같은 대단한 보컬리스트가 옆에 있으니…. 하하."

청와대 '애창곡'으로 불리는 박효신의 '야생화'를 공동 작곡하고, '겨울소리'까지 함께 작업한 그는 "군대에서 처음 만난 박효신 씨는 보컬은 물론 창작의 열망과 재능이 굉장한 뮤지션이다.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명확한 창작자 마인드가 있고 솔로이스트로도 매력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10개 이상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세간의 칭찬에 대해 "개수는 오해"라며 "밴드의 기본 악기인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을 연주하는데 작곡을 위한 것일 뿐 한 악기를 평생 연마한 분들에 비할 수 없다. 퍼포먼스보다는 내 음악을 만들 정도가 되려고 연습을 조금 더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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