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부상 회복… 그라운드 휘저으며 攻守에서 콜롬비아전 지휘
한국 선수가 흥분하면 말리고 상대가 동료 위협땐 적극 항의
카르도나 인종차별 동작 사과… 축구협, 콜롬비아에 '적절 조치' 요구
한국 축구 대표팀이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대1로 이긴 지난 10일 주장 기성용(28)이 밝힌 소감이다. 거듭된 부진으로 침체했던 대표팀이 오랜만에 승리를 거뒀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 2골보다 더 많이 득점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잠깐의 결과에 취하는 대신 그는 내년 러시아월드컵을 그리고 있었다.
콜롬비아전 승리를 두고 "우리가 알던 한국 축구가 돌아왔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날의 한국 축구만큼이나 전문가와 팬들이 반긴 건 '캡틴 기성용'의 부활이었다. 지난 6월 무릎 수술 이후 컨디션이 온전치 않았던 그는 이날 완전히 회복한 모습으로 경기장을 휘젓고 다녔다.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수비 때는 골문 앞까지 내려갔고, 공격 땐 정확한 패스로 경기를 조율했다. 패스 길이 막히면 직접 드리블해 상대 수비를 뚫어냈다. 또 우리 선수가 흥분할 땐 말리고 상대 선수가 동료를 위협하면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두 골을 넣어 수훈 선수에 선정된 손흥민(25)만큼이나 큰 존재감을 드러낸 '언성 히어로(unsung hero·소리 없는 영웅)'였다.
달라진 한국 축구와 함께 ‘캡틴’도 돌아왔다. 기성용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성공을 도왔던 전 주장 박지성처럼 숨은 조력자로 2018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사진은 그가 지난 10일 콜롬비아전에서 드리블하는 모습. /송정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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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기성용을 보며 전 주장 박지성(36)을 떠올린다.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맡아 솔선수범하며 선수들을 이끌고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이란 성적을 냈다. 당시 그는 경기장 안에선 전력 질주하며 있는 힘을 모두 쏟고, 밖에선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당시 첫 월드컵을 경험했던 기성용이 이제 러시아월드컵에서 박지성이 갔던 길을 밟는 것이다.
기성용은 한때 '철없는 선수'로 불렸다. 경기장 안에서 상대 선수와 시비 붙는 일도 잦았고, 쉽게 흥분하는 스타일이었다.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던지'라는 글로 팬들을 비난해 논란이 되거나 애국가 연주 때 왼손을 가슴에 올려 구설에 오른 일도 있다.
그는 2015년 호주아시안컵 때 주장을 맡은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줄이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고, 축구 외적인 논란을 일으키는 일도 사라졌다. 팀이 부진할 땐 절친한 동료들에게도 "정신 차려야 한다" "국가대표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쓴소리를 했고, 경기력이 좋으면 "동료들이 잘했다"고 공을 돌렸다. 한국은 14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세르비아와 평가전을 치른다. 기성용은 "이 경기도 쉽게 지지 않겠다"며 "(월드컵을 대비할)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콜롬비아전에서 기성용에게 인종차별 동작을 한 에드윈 카르도나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카르도나가 "오해가 있었다"며 사과했고, 콜롬비아축구협회가 11일 '카르도나의 행동에 대해 한국 대표팀과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경기 후반 중반 카르도나는 몸싸움을 벌이던 기성용의 앞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찢어 아시아인 차별 동작을 했고, 기성용은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손등을 카르도나 쪽으로 들어 보이며 항의했다. 기성용의 손가락은 '지금 당신을 보고 있다' '우리가 2대0으로 이기고 있다' 등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후 별다른 대응 없이 경기를 마친 기성용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런 행위는 용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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