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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김민지의 고:스톱] '마녀의 법정'의 여자 vs '매드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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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KBS 2TV '마녀의 법정' 방송 화면 캡처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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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 '마녀의 법정', 성별 클리셰 깨부순 '통쾌한 문제작' (고)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싸운다!" 최근 방영 중인 KBS 2TV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극본 정도윤, 연출 김민태 김영균)에서 마이듬(정려원 분)이 남긴 말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일하는 검사다. 상사에게는 입안의 혀처럼 굴며 아부를 하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개척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필요하다면 성추행 피해자에게 사건을 덮어달라고 부탁하고, 승소를 위해 동성애자의 성 정체성을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뜻하는 말)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마이듬처럼 정의롭지 않고 이기적인 검사 캐릭터가 법정 드라마에 등장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한 건 꽤 흥미로운 설정이다. 게다가 마이듬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간다. '욕망의 주체=남성'이라는 드라마 클리셰를 완전히 비트는 방식이기 때문. '마녀의 법정'은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작법을 보여준다.

그간 드라마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수동적인 혹은 감정적인 존재로 묘사됐다.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가진 욕심을 표현하는 캐릭터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조력자 혹은 일을 망치는 '민폐 캐릭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마녀의 법정'은 기존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를 소화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마이듬은 본인이 가진 욕망을 숨기지 않고, 어설프게 착한 척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이 웨이'할 뿐이다. 예측 불가한 여성 캐릭터 마이듬의 등장은 그래서 더 파격적이다.

'마녀의 법정' 속 마이듬은 절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법정에서 동성애자인 피해자를 '아웃팅' 한 일로 비난을 하는 여진욱(윤현민 분)에게 "검사는 승소가 곧 사과다"라고 되받아 친다. 자신 역시 '몰카' 피해자가 된 후 법정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을 이해하는 듯한 말을 하지만 이는 오로지 승소를 위한 일일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tvN '비밀의 숲' 황시목이나 '아르곤' 김백진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는 주로 남성들이었다. 그러나 마이듬은 이 전형적인 틀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마이듬이 아닌 '남자 검사' 여진욱이다. 여남 캐릭터의 반전은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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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매드독' 방송 화면 캡처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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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독', 여성을 그려내는 진부하고 불쾌한 시선 (스톱)

반면 KBS 2TV 수목드라마 '매드독'(극본 김수진, 연출 황의경)에선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소 올드하다. 아니, 멋진 캐릭터를 두고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홍일점은 보험조사원 장하리(류화영 분). 장하리는 보험회사 보험조사팀 출신으로 사설보험조사팀 매드독에서 전천후 활약을 펼친다. 갖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일조하는 팀 내 능력자이자, 팀장 최강우(유지태 분)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능력치 만렙'인 데다 미모까지 출중하니 '매드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하리를 그려내는 제작진의 시선은 진부하다. '매드독'은 여성 캐릭터를 그저 섹시하게만 표현하는 기존 히어로물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한다. 1회에서 장하리는 의사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해 미인계로 그를 유혹한다. 이때 카메라는 밀착된 의상을 입은 장하리의 몸매를 클로즈업한다. 결국 이 장면에선 장하리와 의사 사이 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장하리의 몸매'만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이외에도 박순정(조재윤 분)이 장하리를 훑어보며 "예쁘다"고 외모를 평가하는 장면이나 김민준(우도환 분)이 장하리 가슴 부위에 있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신 역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장하리를 능력 있는 '매드독' 직원이 아닌 '예쁘고 섹시한 여자'로만 보게 했다.

'매드독' 속 장하리는 정말 괜찮은 캐릭터다. 그는 사건이 있을 때 직접 발로 뛰어 정보를 얻고 일을 해결하는 등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따뜻한 정까지 갖춘 인물이다. 인격적으로도 성숙해 팀원들의 신망도 두텁다. 그러나 장하리의 매력에 빠지려는 순간마다 그를 성적으로 소비하게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장하리는 그 누구보다 입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물인데, '매드독' 제작진은 그를 그저 '섹시한 여자'로 한정 짓는 듯하다. 장하리의 장기는 '미인계'와 '섹스어필'이 아니다. 제작진이 틀에 박힌 시선에서 벗어나야 캐릭터도, 극도 살릴 수 있다.

현재 '마녀의 법정'은 월화극 1위, '매드독'은 수목극 3위다. 물론 이 차이가 단순히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때문에 생긴 건 아니지만 영향은 있을 것이다. '마녀의 법정'은 여성 캐릭터를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려 했고, '매드독'은 진부하고 구시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한 작품은 결국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breeze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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