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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SPO CRITIC] ‘히딩크 사태’ 히딩크의 진정성이 아니라 협회의 대응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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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거스 히딩크(71)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발언한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물론, 한국축구 관통하는 모든 이슈가 히딩크라는 이름 안으로 빨려 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 체제에 힘을 싣겠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고, 대부분 언론도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룬 신 감독의 계약이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민심’으로 불리는 여론은 현 대표팀과 협회를 불신하는 과정에서 무조건 히딩크를 데려오라고 맞서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으로 여긴 ‘히딩크 바람’은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히딩크 측의 6월 접촉 사실을 부인하다, 말을 번복해 접촉 자체는 인정하는 과정에서 더 커졌다. 협회는 팬들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도 있지만, 팬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논란의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협회의 사안에 대한 안일한 대처와 위기불감증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히딩크 복귀를 반대하는 축구계 일각에서는 “봉사하겠다”는 히딩크 감독의 선의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중국 대표팀, 잉글랜드 대표팀, 러시아 대표팀 등의 제의를 고사하고 한국에 봉사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대표팀 부임을 노리다가 무산된 이후 유일한 선택지인 한국 대표팀에 접근했다는 주장이다.

확실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자신의 감독 경력의 ‘피날레’로 장식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의지다. 히딩크 감독도 당연히 개인적인 욕심과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한국행을 고려한 것이다. 진정 한국 축구에 봉사하고 싶다면 연령별 대표팀이나 K리그, 한국 유소년 축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진정성있는 모습이 아니냐고 핀잔을 주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히딩크 감독의 ‘봉사’라는 단어는, 그가 거액의 연봉을 포기하기 위해 필요한 ‘명분’이다. 수사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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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의 한국 복귀 의지가 순수했는가는 쟁점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은 만 71세지만, 아직 감독직 은퇴를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과 일이 틀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은 상황에서, 제2의 고국인 한국 축구에 대해 ‘봉사하겠다’는 명분을 걸어두지 않고 연봉을 낮춘다면 본인의 몸값만 떨어지는 일이 된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 복귀가 순수한 마음이 아닐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 복귀를 적극 추진하는 거스히딩크재단 역시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 당장 한국축구계에서 입지가 높아질 것이다. 앞선 정황이 없더라도, 프로의 세계에서 히딩크 감독과 히딩크 감독 측의 의도가 비즈니스적 측면이 없는 완전히 순수한 일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적극적으로 오퍼하지 않은 것은, 연봉을 대폭 낮추고 오는 과정의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히딩크 감독의 ‘봉사’라는 단어에 대한 진정성이 아니다. 대표팀 선임 과정에서 예산 문제로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던 협회가 히딩크 급의 감독과 코칭 스태프를 ‘시가’보다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왜 고려조차 하지 않았느냐다. 김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카카오톡을 통한 가벼운 메시지이든, 히딩크 측이 말한 전화통화를 통한 타전이든, 공식 문건을 통한 제안이 아니라도 한국 축구가 본선 진출 무산 위기, 본선 진출 이후에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왜 히딩크 감독의 한국 복귀 의향이 있음에도 아무런 논의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느냐가 핵심이다.

히딩크 측이 당시 확실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협회의 입장도 해설득력이 떨어진다. 히딩크 감독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 출전을 마지막 목표로 설정하고 있지만, 당시도, 지금도 히딩크 감독의 유일한 선택지은 한국이 아닌 상황이다. 한국 대표팀에도 줄 하나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

히딩크 감독을 선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김 위원장은 7월 4일 기술위원회에서 기술위원들에게 이 사실을 공개하고, 더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을 두고 논의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신태용 감독을 정식으로 선임하고 밀어주겠다고 결정했다면, 그렇게 발표하고 밀어줬으면 됐다. 그러면 히딩크 감독도 다른 일을 알아봤을 것이고, 여론 일각에서 히딩크 감독을 왜 놓쳤느냐는 반대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핀치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전쟁과 같은 상황이 된 지금보다, 훨씬 차분하고 논리적인 토론이 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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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모르는 여론? 히딩크급 명장을 저렴하게 쓸 기회를 왜 고려하지 않았나

협회와 일부 언론은 ‘댓글 여론’을 4년에 한 번 축구를 보는 이들이 ‘히딩크에 대한 환상’을 갖고 비분강개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이들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신 감독 체제로 월드컵 본선에 도전했을 때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게 봐도 반반이라는 것은 축구계 전반의 반응이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어진 실패로 인해 이번 대회는 본선에 오르기 만 해도 다행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4년에 한번 축구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선, 지난 대회를 포함해 무려 8년의 무력감이 된다. 축구협회는 독립법인으로 자체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지만, A대표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고, 그 상징성이 협회가 그 막대한 운영비를 벌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축구협회는 축구 팬 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열렬히 관심이 없는 국민들도 축구를 즐기고, 축구와 더 가까워지고, 축구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고 운영된다. 국가 대표팀은 이 과정의 중심이 되는 존재다. 그렇다면, 평소 K리그를 보지 않고, 신태용 감독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현 사태를 관통하는 통찰이 없는 이들의 의견이라도 이토록 거센 상황이라면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하고, 일정 부분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히딩크를 바라는 것은 환상 때문이 아니라 협회의 지난 실책 때문이다. 제도를 만들고, 운영 철학을 세우고, 운영 기틀을 가지는 과정에선 축구계 전문가들이 뚝심을 갖고 밀어붙여야 하지만, 국가 대표팀의 운영 과정에서 나온 문제를 대응하는 과정에선 모든 의견을 수렴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과정이 투명하면, 결론에 대한 의견이 달라도 수긍할 수 있다. 지금 협회는 그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결론의 정당성을 의심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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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이어도 된다…문제는 과정이 불투명했던 것이다

애초 히딩크 감독 논의가 시작 된 6월부터, 기술위가 열린 7월, 언론에 히딩크 감독 복귀 의사가 드러난 9월까지 협회는 숙고도 부족했고 대응도 부실했다. 6월에는 직접 히딩크 감독의 의사를 확인했거나, 실제 연봉을 낮추겠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 가능한지는 확인해야 했다.

협회는 7월 기술위에서는 임시 감독의 현실성을 논의하거나, 히딩크 감독에게 최종예선 경기부터 지휘해야 계약할 수 있다고 협상을 벌일 수도 있었다. 임시 감독은 무리라고 선을 긋기보다, 히딩크 감독 본인과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었다면, 그 이후의 결정에 대해 ‘적폐’라는 의심을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협회는 히딩크 측의 전언을 묵살했고, 숨기면서 스스로 불신을 자초했다. 당시 모든 상황을 오픈하고 신 감독으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면, 본선 진출을 이룬 시점에서 신 김독 체제가 지금처럼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히딩크 감독을 어떤 식으로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어떤 사익이 발생하는 측면을 떠나 기대와 희망을 받지 못하는 대표팀이 다시 국민적 성원을 받아야 한다는 측면이 더 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이대로 나가서 실패한다면 더 타격이 클 것이다.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더구나 히딩크 감독은 실제로 월드컵은 물론 세계 축구에 풍부한 경험을 갖췄고, 무엇보다 러시아를 아주 잘 아는 인물이다. 그런 히딩크 감독을, 그 스스로 표현한대로 “연봉 1달러”로 활용할 수 있다면 왜 마다하는가. 설령 그가 대한축구협회에서 돈을 받지 않고 기타 광고 수익과 상업 수익으로 이를 충당하려 한다고 해도 그게 잘못된 일일까? 경험은 돈 주고 살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은 지금은 전성기가 지난 감독이라 불려도, 한국 축구가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 실패 괴정의 가장 큰 문제였던 ‘경험’을 가장 많이 가진 감독이다.

나는 신태용 감독 체제를 흔들고자 히딩크 활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표팀은 슈틸리테 감독이 이끌던 당시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2번의 최종예선을 거친 직후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 복귀설이 나와서 흔들리게 된 게 아니다. 이미 흔들리 던 팀이 중심을 잡고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히딩크 복귀설로 더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다만 대표팀이 이로 인해 국민적 관심을 회복한 것도 사실이다.

협회는 사실무근, 불쾌 같은 단어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때까지는 언론도 대체로 협회의 편이었다. 그런데 접촉이 아예 없었다는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사분오열됐다. 히딩크 측이 사익으로 접근했듯 아니든, 대표팀이 이렇게 흔들리게 만든 가장 큰 잘못은 협회에 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이번 사안에 대한 문제 만이 아니다. 히딩크 측의 접촉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협회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축구의 의사 결정 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협회 고위 임원의 배임, 횡령까지 드러난 마당에, 히딩크 사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다면, 러시아 월드컵으로 항해하는 신태용호는 거대한 불안을 안고 가게 된다. 이미 대회 전부터 의리 논란이라는 내부적 불안감을 안고 ‘원팀’이 되지 못한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보다 더 큰 위기를 안고 경기하게 될 것이다.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루면서 큰 재앙은 피했다고 한 숨 돌렸지만, 협회가 끈 것은 작은 불씨였을 뿐이다. 더 큰 불이 한국축구를 불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불을 키운 것은, 히딩크도, 히딩크 측도, 4년에 한번 축구를 보는 대중도 아닌, 대한축구협회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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