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입지 점점 약화할 것…그럴수록 고품격으로 승부해야"
다큐 '순례'-'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 중에서 |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드라마도 시청률 한 자릿수가 허다한 요즘, 다큐멘터리가 10%를 넘었으니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죠. 가족과 친구, 사랑, 이별은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KBS 1TV 다큐멘터리 '순례'를 연출한 김한석(46) PD를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10년 전 히트해 국내 다큐멘터리의 대표격이 된 '차마고도'의 시청률이 13.7%(닐슨코리아)를 찍은 후 다큐멘터리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매우 오랜만이다. '순례'는 인도 라다크를 배경으로 한 1편이 10.2%를 기록했다. 그 외 편도 8%대로 선전했다.
다큐 '순례' 1편의 주인공 쏘남 왕모 |
비구니가 되려는 산골 소녀 쏘남 왕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1편 '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는 라다크의 청정 자연과 슬픈 작별 이야기를 조화롭게 녹여내 특히 시청자들로부터 호평받았다.
"쏘남 왕모는 제 막내딸과 동갑이에요. 사춘기여서 초반에는 제작진에게 낯을 가리고 틱틱대는 모습도 딸과 비슷했어요. 200일 이상을 같이 지내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죠. 쏘남 왕모가 출가해서 머리를 깎던 순간에는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쏘남 왕모부터 3편 '집으로 가는 길'의 우리쌈바 같이 현지에서 화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쏘남 왕모만 해도 찾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김 PD는 "처음에 '순례'라는 키워드를 잡았지만 종교적인 이야기만 해서는 공감을 얻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며 "쏘남 왕모의 경우에도 험난한 길을 시작하는 승려, 승려보다는 더 어려운 길을 걷는 비구니, 비구니 중에서도 소녀… 이런 식으로 대상을 추려 나갔다"고 설명했다.
다큐 '순례' 3편 주요 장면들 |
3편의 주인공 우리쌈바는 세네갈의 척박한 환경에서 소금을 캐며 사는 60세 가장이었다. 영상 중간중간 메타포로 등장한 소똥구리는 끊임없이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하는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가족을 위해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사는 가장을 상징한다고 김 PD는 설명했다.
"환경도 인종도 다르지만 가장은 어느 세상에서나 비슷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감을 많이 얻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우리쌈바가 마지막에 고향인 기니로 돌아갔는지, 못 돌아갔는지는 일부러 공개하지 않고 열린 결말을 보여줬어요. 시청자가 보면서 느낀 것이 결말입니다."
쏘남 왕모와 우리쌈바뿐만 아니라 2편 '신의 눈물' 속 잉카의 후예들과 최종회 속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여정을 떠난 사람들 역시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결국 우리 삶의 모습이다.
다큐 '순례' 3편 주요 장면 |
김 PD는 지구 4분의 1바퀴를 돌면서 더욱더 '우리가 모두 순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퇴근길 건널목에 선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모두 순례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의 인생이 곧 순례길인거죠. 시청자들께서 평소 '내 삶은 왜 이렇게 척박하고 힘들지'라고 한탄했다면 이 작품을 보고 '내 하루하루도 가치가 있구나', '이 언덕을 지나면 오아시스가 나오겠지' 하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순례'는 광활한 자연을 담기 위해 전 여정을 최첨단 카메라와 특수촬영장비를 사용, UHD(초고화질) 영상으로 담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PD는 "UHD 전용 수신기로 보면 정말 생생하기는 하다"면서도 "무엇으로 찍었냐보다는 어떻게 피사체를 담아냈느냐가 결국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상에 공을 들인 만큼 나중에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리라는 기대는 있다. TV 판에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다큐 '순례'의 김한석 PD |
'순례'의 경우 가뭄의 단비처럼 다큐멘터리계에 반가운 뉴스였지만 국내 다큐 제작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김 PD는 "상업 논리로 따지면 다큐가 수익성이 없으니 갈수록 입지는 약화할 것"이라며 "그럴수록 세계 다큐 무대에서는 고품격, 고퀄리티를 요구한다. 그래서 KBS 다큐의 책무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수익성과 별개로 다큐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인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다큐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시청자가 KBS에 기대하는 바라고도 생각한다"며 "다큐 마지막에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수신료로 제작됐습니다'라는 자막이 뜰 때 뿌듯했다는 시청자 소감이 늘 가장 와 닿는다"고 덧붙였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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