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경청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다룬 책 <세종식 경청>. |
# 세종이 ‘위대한 임금’이 될 수 있있던 덕목 중 하나는 경청(傾聽)이었다. 인기 역사강사 설민석의 <역사 읽어주는 남자 : 설민석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는 아예 한 챕터를 ‘경청의 1인자, 세종대왕’으로 삼고 있다. <세종식 경청>(2016, 조병인)이라는 책까지 나왔다. 세종실록에는 경청과 관련된 세종의 여러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는 백성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구언’ 시간, 낮은 직급의 관리자를 직접 만나는 ‘윤대’를 즐겨 행했다. 확실한 것은 훌륭한 리더를 꿈꾼다면 ‘경청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돈이나 시간을 낼 필요도 없다. 동의한다면 살면서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을 상대로 경청 훈련을 하면 된다.
# 지난 14일 오후 서울 올림픽 파크텔에서는 문체부가 주최한 ‘국민과 함께 하는 체육 청책(聽策) 포럼’이 열렸다. 사전 등록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체육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실제로 생활체육, 학교체육, 엘리트체육, 스포츠산업 등 체육계에서 150여 명이 참석해 사전에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롭게 체육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나쁜 시절 나쁜 사람이었으니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노태강 2차관이 호스트를 맡았는데, 그는 시작하면서 "입은 닫고 귀만 열어 놓겠다. 좋은 의견을 많이 개진해달라"고 주문했다. 자리배치까지 노 차관을 빙 둘러 에워싸는 원형으로 꾸며 경청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손범규 한국중고탁구연맹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픈 얘기를 하는 등 시도 자체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특히 노태강 차관의 경청 자세는 아주 인상적이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노태강 문화체육부 2차관. |
# 같은 날 한 언론계 선배로부터 의외의 푸념을 들었는데, 그 안에 노태강 이름 석 자가 들어 있었다. 이 선배는 ‘최순실 일당이 체육계에서 저지른 비리가 정권교체까지 이어졌는데, 정작 새 정부는 체육정책에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노태강 등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여당 실세의원으로부터 발목을 잡힌다’는 기사를 썼다. 내용을 꼼꼼히 체크하니 나름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해당의원으로부터 모욕적인 표현이 포함된 거친 항의를 받았다. 문자항의를 직접 봤는데 표현이 참 ‘저렴’했다. 내리 4선에 교육과 체육의 전문가로 알려진 그답지 않은 항의방식이었다. 백번 양보해도 최소한 ‘경청’의 자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 경청과 관련해 자료를 찾다 보니 요즘 인물로는 압도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청책’이라는 말 자체도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경청의 경은 본디 기울 경이다.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인데 거기에 공경할 경을 더하고 싶다.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편견이 없는 자세로 귀 기울여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박원순의 말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박 시장은 경청을 소통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경청 10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중 경청을 제도화하라(2원칙)는 노태강의 청책 포럼과 닿아 있고, 반대자의 의견을 들어라(5원칙)는 여당 실세의원을 배척한다.
# 한 일본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진심을 듣기 위해서는 내 입을 다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뿐이다. 물론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이기는 하지만.’ 맞다. 말하려는 사람은 많고, 들으려는 사람은 적은 시대다. 평범한 우리네들이야 덕이 모자라니 할 수 없다고 해도, 위정자들은 아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듣되, 반드시 널리 물어보고 국가의 덕을 베풀며 백성의 사정에 정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게 하라.’ 600년 전 세종대왕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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