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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임성일의 맥] 그렇게 기성용은 '기성용'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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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기성용이 21일 중국 창사에 위치한 캠핀스키 호텔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 중국(중국 창사.23일)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1/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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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중국)=뉴스1) 임성일 기자 = 차범근. 홍명보. 박지성.

세 사람은 아주 유명한 그리고 대단한 축구선수였다. 각각 공격수, 수비수, 미드필더로 포지션은 달랐으나 1970~80년대(차범근), 1990년대(홍명보), 2000년대(박지성)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No.1 플레이어였다. 그들 뒤로 그들의 재능에 비견될 이들이 나오면 '제2의 차범근' '제2의 홍명보' '제2의 박지성'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자랐으면 싶은 바람이 담긴 수식어였는데, 사실 기대만큼 성장한 이들은 찾기 힘들다. 그들의 대를 잇는 선수가 왜 나오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차치한다. 그만큼 '큰 산' 같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차범근과 홍명보와 박지성은 그 자체로 후배들이 지향해야 할 기준점이 됐다는 뜻도 된다. 롤모델이자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면 그 리스트에 또 한명의 이름이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누군가는 2010년대는 '기성용의 시대'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용은, 점점 다른 누군가가 좇고 싶은 '기성용'이 되는 분위기다.

기성용은 2017년 3월 현재 한국 대표팀의 주장이다. 아직 많다고 볼 수 없는 나이(28)임에도 벌써 89회의 국가대항전에 출전한 그는 23일 오후 8시35분(한국시간) 중국 창사에 위치한 허룽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을 통해 90번째 A매치를 치르게 된다.

애초 출전이 불투명했다. 기성용은 2월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과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뒤 6경기 동안 필드를 밟지 못했다. 대표팀 합류가 가능할까 싶었던 흐름이었는데 다행히 소집 직전인 19일 본머스전에 선발로 출전하면서 우려를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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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이 20일 중국 창사에 위치한 허난시민운동장에서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 중국(중국 창사.23일)전을 앞두고 가진 첫 훈련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2017.3.20/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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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이 머물고 있는 창사 캠핀스키 호텔에서 지난 21일 마주한 기성용은 "재활의와 함께 충실하게 노력했고 덕분에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다. 지난 라운드도 난 선발로 나설지 몰랐는데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라면서 "쉬면서 대표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컨디션은 염려할 수준이 아니다"는 뜻을 전했다. 대표팀 관계자 역시 "오히려 기성용은 쉰 것이 득이 됐다. 컨디션이 떨어졌었는데 중요한 경기(중국전)를 앞두고 잘 쉬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만약 기성용이 합류하지 못했다면 치명적인 누수였다. 가뜩이나 손흥민이 경고누적으로 뛰지 못하고 팔방미인 미드필더 이재성과 베테랑 수비수 곽태휘가 부상으로 제외된 상황에서 전술적 에이스이자 선수단 구심점인 기성용까지 빠진다면 큰 타격이었다. 플레이어로서의 필요성과 가치, 이번 경기에서 해줘야 할 역할을 구구절절 쏟아내진 않겠다. 이 자리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리더 기성용과 인간 기성용의 값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최근 '국가대표'의 가치가 많이 퇴색한 것 아니냐는 안팎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기성용은 물 흐르듯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준비된 것처럼 쏟아졌다는 것에서 평소에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 느낄 수 있던 대목이다.

그는 "난 지금껏 한 번도 내가 대표팀에 당연히 들어올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뽑히는 곳"이라며 에둘러 자부심을 가져야 함을 피력했다. 이어 "대표팀은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지만 오기 싫다고 오지 않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더했다. 묵직한 단어로 바꾸면, '숙명'이라는 표현도 가능할 내용이다.

이어 기성용은 "많은 이들이 예전에는 더 뜨거운 투혼을 발휘했고 옛날 선수들이 보다 많이 희생했었다고 말한다"고 운을 띄웠다. 개인적으로 그다음 이어질 말은 "그건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는 뉘앙스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어긋났다.

그는 "세대가 달라졌다. 많은 선수들이 외국에 나가 있고 금전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 이건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라면서 "이런 상황이니 아무래도 대표팀과 소속팀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예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냉정한 견해를 밝혔다.

적절한 예도 들었다. 그는 "(손)흥민이가 지난해 9월 토트넘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대표팀에 다녀온 뒤 흐름이 끊겼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쉽다.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복귀했을 때의 몸 상태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에, 11월에 또 대표팀 일정을 소화했다"면서 "일반인은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는 말로 지금 있는 선수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희생하면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했다.

그리고 나서 궁극적으로 그는, 대표급 선수라면 스스로 받아들이고 극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기성용은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갈 때는 다 쏟아 부어야 한다. 어찌 본다면 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것인데 책임감 없이 뛰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단호한 목소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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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이 21일 중국 창사에 위치한 캠핀스키 호텔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 중국(중국 창사.23일)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3.21/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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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A매치 데뷔전은 2008년 9월5일 요르단과의 평가전이었다. 어느덧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지났다. 중국전에 뛰게 된다면 A매치 90회를 찍는다.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가입도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최종예선을 잘 마친다면 이후 평가전까지 계산해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그 고지에 오를 수도 있는 분위기다.

욕심이 나느냐는 질문에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 식의 형식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는 절실한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나 "센추리클럽보다는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나라 축구 발전을 위해 엄청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뒤 "나는 나가봐서 괜찮지만 동료들 중에는 월드컵을 밟아보지 못한 이들도 많다. 그들도 경험해 봐야 하기 때문에 절박하게 뛰어야 한다"는 어른스러운 발언을 덧붙였다.

이런 연설만으로도 주장 완장을 채우기에 충분한 선수다. 하지만 외려 스스로는 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이 뒷받침되지 않는 캡틴은 반쪽자리라고 전했다. 그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대표팀이다. 각자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뛰고 있는 이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내 자리에서 가장 좋은 모습,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각자가 이미 최고의 선수인데 그냥 말로 한다고 이끌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는 현명하고도 차가운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결혼을 통해, 아내의 내조와 딸의 재롱을 보면서 여러모로 또 많이 성숙해지고 있다던 그는 "결혼이 선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기에 후배들에게도 빨리 하라고 권하고 있는데, 요즘 애들은 말을 안 듣는다"고 농을 던질 줄도 알았다. 또 "허룽 스타디움의 잔디가 괜찮다고 들었다. 어쩌면 상암(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상암은 잔디가 워낙 안 좋아 가장 뛰기 힘든 곳"이라며 축구계를 향해 비수를 던질 줄도 알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카피는, 나이가 많은 이들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기성용을 보면 반대편에서도 참이 됨을 느낄 수 있다. 꼭 나이가 많아야 좋은 선수, 좋은 사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물여덟 기성용은 이미 든든한 리더가 됐다. 그리고 점점 더 차범근과 홍명보와 박지성이 걸었던 그 길로 접어들고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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