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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TF기획-문화계 BL②] 최승호 감독 "블랙리스트, 국정원 개입 여부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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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바 있는 최승호 감독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상식을 말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이 없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최승호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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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권혁기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총 9743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야당을 지지하는 문화계 인사, 그리고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및 시국 선언을 한 문화예술인이 포함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대대적인 수사결과, 최순실(구속)과 문화융성위원이자 창조경제추진단장이었던 차은택(구속) 감독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한 의혹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는 김기춘 전(前)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기소로 이어졌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도 무관치 않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최승호 감독은 20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상식을 말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바 있는 최승호 감독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를 선언에 동참하면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최승호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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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퇴거 후 사저로 복귀한 3월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 앞에서 지지자 등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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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통령 탄핵을 생중계로 지켜봤을 것 같은데 문화예술인으로서 소감이 궁금하다.

이번 탄핵 인용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취임 이후 회자됐던 많은 의혹과 구설들이 사실로 드러난 상황이고, 헌재 결정문에서 밝혔듯이 헌법 수호에 대한 통치자로서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15년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가결이 구 기득권 세력이 대통령을 길들이려는 시도였다면 이번 박근혜 탄핵은 대통령과 일부 사(私)인들의 전횡에 대해 절대 다수 민심이 탄핵을 요구했고, 이를 정치권에서 받아들였고, 헌법재판소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준 것입니다. 이미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위축된 표현의 자유와 받아들이기 힘든 정부의 간섭을 경험하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도 통쾌하고도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이번 정권에서 특히 문화 연예계에 대한 탄압과 관련, 목소리가 많았다. 실제로 경험했던 불이익이나, 주변에서 들었던 일화가 있다면?

'변호인'에 투자했다가 신규 펀드 조성에서 매번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창투사 캐피탈원의 사례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태펀드는 창투사에서 운용하는 영화 펀드의 투자심사위원회에 의결주체로서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옵저버(observer, 관찰자)로서 참석합니다. 하지만 모태펀드 담당자가 비토(veto, 거부권)를 놓게 되면 편드를 운용하는 창투사 입장에서도 다음 번 펀드 결성 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우려돼 모태펀드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블랙리스트의 여파인지 모태 펀드의 편향된 시각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제작을 한 영화가 모 창투사 투자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대신 모태펀드에서 1) 영화를 19금으로 만들 것, 2) 당시 캐스팅 확정된 배우들이 바뀌면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습니다. 1)의 경우는 영화창작자의 작의를 훼손해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조건이며, 2)의 경우는 영화 제작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매한 조건이었습니다. 제작자로서 감독, 피디와 협의한 결과 우리는 모태펀드에서 내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투자 심사에 통과하고도 투자를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결과가 됐습니다. 이후 다른 창투사를 통해 투자를 받아 영화를 제작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모태펀드의 이런 행태는 표면적으로 영화 펀드 자체의 수익률이 낮다는 핑계를 들어 사실상의 투자 통제를 하고 있구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데,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본인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연명을 했다는 이유로 리스트에 올라갔던데 상식을 말하는 사람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것 자체로 상식이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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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독재 시절 발생한 부산의 '학림사건'(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변호인'이 개봉되자 제작사 위더스필름과 배급사 NEW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 등을 받아, 정부의 탄압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영화 '변호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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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탄핵 소추 쟁점에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빠져있었다. 물론 김기춘 조윤선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나?

당연히 밝혀질 일이고 주모자들을 포함해 그 부역자들까지 응분의 처벌이나 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자양분으로 먹고 삽니다. 소수의 먹고 살만한 예술인들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1년에 1000만 원 벌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자긍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정부와 관련부처는 우리들에게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장(場)과 예술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은 우리에겐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확실한 처벌만이 이후 다시 벌어질지 모를 정부의 문화 통제 시도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김기춘과 조윤선의 재판에서 다뤄야하는 쟁점이 있다고 생각한 바가 있다면?

국정원의 개입 여부를 확실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리스트의 작성부터 국정원이 개입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약 리스트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면 이는 명백한 국정원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사찰 행위입니다.

-최근 김세훈 영화진흥위원장이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블랙리스트 집행과 관련된 공식사과와 사퇴 일정을 밝히기로 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이와 관련된 의견이 있다면?

영진위원장 선임 당시에도 여러 차례 결론을 내리지 못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닌 우려가 있었는데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김세훈 위원장은 영화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 분이고 김종국 부위원장 역시 자질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에 취임 초기부터 말들이 나왔죠. 그리고 그들이 영화계를 위해 했던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독립영화전용관 육성 사업을 폐지해 지방 독립영화관들을 고사시킨 일이나,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축소, 콘텐츠진흥원과 사업 영역이 중복될 수밖에 없는 장편애니메이션 지원 등 관객들의 영화발전기금을 가지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일만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김세훈 위원장 이하 진흥위원 전원과 주요 임원들을 즉시 사퇴를 해야 하며 앞으로는 영진위원 선임에 영화계 제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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