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길 절벽의 짜릿한 유혹…한계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계
북한산 백운대에 서면 건너편 인수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눈을 돌리면 만경대 능선 우뚝 솟은 바위 위에서 멋진 포즈로 뭇사람의 시선을 끄는 이도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백운대 뒤 닭벼슬처럼 곧추선 숨은벽 리지의 좁은 바위를 다람쥐처럼 오르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남들은 작은 바위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들은 어떻게 수십 길 절벽 위에서 그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살짝 경사진 길도 위험하다고 마다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수직의 벽을, 때로는 천장 구간까지 거침없이 넘어설까. 그 험한 곳에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을 당기는 힘은 또 무엇일까.
◇ 수직의 벽에서 얻는 무한한 자유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등반가이자 근대 알피니즘의 선구자 리오넬 테레이는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아무것도 얻는 게 없기에 더없이 자유로운 행위란 얘기다. 그 무한의 자유를 얻기 위해 등반가들은 깎아지른 벽에 붙는다.
북한산 백운대에 서면 건너편 인수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눈을 돌리면 만경대 능선 우뚝 솟은 바위 위에서 멋진 포즈로 뭇사람의 시선을 끄는 이도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백운대 뒤 닭벼슬처럼 곧추선 숨은벽 리지의 좁은 바위를 다람쥐처럼 오르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남들은 작은 바위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들은 어떻게 수십 길 절벽 위에서 그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살짝 경사진 길도 위험하다고 마다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수직의 벽을, 때로는 천장 구간까지 거침없이 넘어설까. 그 험한 곳에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을 당기는 힘은 또 무엇일까.
◇ 수직의 벽에서 얻는 무한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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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가 교육생이 서울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고 있다. |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등반가이자 근대 알피니즘의 선구자 리오넬 테레이는 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아무것도 얻는 게 없기에 더없이 자유로운 행위란 얘기다. 그 무한의 자유를 얻기 위해 등반가들은 깎아지른 벽에 붙는다.
그렇더라도 깎아지른 듯할 뿐 아니라 반질반질하기까지 한 인수봉에 붙으면 알프스를 여러 번 다녀온 외국 산악인들조차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 벽이 갖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영국의 위대한 등반가 알프레드 머메리는 "(남들이 간) 길이면 가지 마라"며 쉬운 길을 마다하고 험하고 힘든 코스를 개척하는 등반을 추구했다. 그 정신이 후세에 머메리즘(등로주의·Mummerism)이라는 멋진 단어를 남겼다.
암벽등반은 이런 선구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정신세계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매력 아닌 마력을 갖고 있다. 산악인들이 등반을 보상을 바라거나 순위와 기록을 따지는 스포츠와 구분하려는 것도 그래서다. 그 이상은 인수봉 정상에 서면 느낄 수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암벽을 오르면 보통 등산객은 볼 수 없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특혜를 얻게 된다. 사람들이 설악산 천불동계곡이나 공룡능선에서 감탄하지만 그건 설악산 진경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토왕골 '별을 따는 소년의 길'을 올라 마주한 토왕성 폭포의 압도적인 장관은 감탄사 대신 눈물을 쏟게 할 정도다. 장수대 뒤 미륵장군봉에서 건너다본 몽유도원도 벽은 안견이 꿈에서 본 선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 팀워크와 시스템으로 위험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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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산 주봉 정상에 선 신승모 교수와 이기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
세상에 대가 없는 게 없다고 그 멋진 선경을 보여주는 수직 암벽이 위험하고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추락이라도 한다면 생명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위험하고 어렵다는 게 사고로 연결된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암벽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대한산악연맹이 수십 년간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일어난 산악사고를 분석한 결과 암벽사고보다 일반 등산로 사고가 월등히 많았다.
등반은 위험한 바위를 안전하게 즐기는 '시스템'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바위 타는 사람들은 앞 사람이 올라갈 땐 아래에서, 뒷사람이 오를 땐 위에서 안전을 챙겨준다. 전문용어로 '확보'라고 한다.
로프(자일)를 이용해 서로를 지켜주는데 여기서 '자일 파트너'란 말이 나왔다. 등반 파트너는 생명을 맡길 만큼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또 바위 타는 매력을 높여준다.
등반 자체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기에 더 짜릿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등반을 하다 보면 중력뿐 아니라 시간까지 거슬러 오르는 매력도 느끼게 된다. 자일 파트너끼리 세대와 성별을 넘어 친해지는 흔치 않은 운동이란 얘기다.
필자는 지난해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대 신승모 교수, 이기범 코오롱등산학교 강사와 도봉산 주봉을 오른 적이 있다. 기둥처럼 우뚝 솟은 바위인데 외진 곳에 있어 찾는 이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 신 교수가 30여 년 전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해서 인수봉과 선인봉을 제쳐놓고 그리로 갔다. 그 정상에서 우리는 신 교수가 30여 년 전 느꼈던 감흥을 공유했다. 세월과 나이를 떠나 그 순간 하나가 됐다. 배려와 끈끈함은 다른 운동에선 찾기 힘든 매력이다.
◇ 잠재능력 확인 뒤 솟구치는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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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한편의 시 길`의 첨봉 구간을 서울등산학교 교육생들이 오르고 있다. |
정신을 집중해 벽을 오르다보면 도시에 있는 내내 머릿속을 채웠던 잡념은 사라지고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자연에 젖어든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 심신은 희열에 들뜨고 온몸은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다. 등반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게다가 한계를 넘어서려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세월만큼 쌓인 노폐물이 하나둘 쏟아져 나와 몸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등반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의 근육을 모두 사용하는데, 그중에서도 허리 근육을 많이 쓰기에 자연스레 몸매는 매끄러워지고 탄력이 붙는다.
등반을 하다보면 순간순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거기서 이제까지 침잠해 있던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때론 부족함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력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일깨우는 행위인 셈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전해봄 직하지 않을까. 이제 당신의 버킷 리스트에 이 멋진 꿈을 넣어보라. 올봄 인수봉 정상에서 새로운 자유를 누리는 것을.
[글·사진 = 등반가 정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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