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중부매일 언론사 이미지

[류병학의 '사진학교'] ⑬ 사진, 예술과 과학의 하인?

중부매일 중부매일
원문보기

[류병학의 '사진학교'] ⑬ 사진, 예술과 과학의 하인?

서울맑음 / -3.9 °
[중부매일]
칼 블로스펠트의 '속새풀 줄기'. 1928

흥미롭게도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의 '뉴 헤이븐의 생선 파는 여인'은 사진작품으로 촬영된 것이라기보다 회화의 '보조수단'으로 찍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그의 사진은 회화를 위한 일종의 '밑그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화가로서 그의 이름은 잊혀진 반면에 이 사진들, 사적인 목적에 사용된 보조수단들이었던 평범한 사진들 덕택에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게 되었다."

벤야민의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용어만큼이나 모호한 그의 '아우라' 개념이 아니라 '보조수단으로서의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은 단지 회화의 보조수단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진은 회화 이외에도 자연과학에서부터 관상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보조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1859년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살롱전에 입성한 사진을 보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사진술이 일말의 기능으로 인해 예술에 추가 사항으로서 채택된다면, 예술을 밀어내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예술이나 사진 모두가 부패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사진이 본연의 의무로 되돌아가야 할 때다. 말하자면 예술과 과학의 하인으로서, 마치 문예를 창조하거나 대신할 수는 없는 인쇄나 속기와도 같이 단순한 일만 하는 겸손한 하인으로 머물러야만 한다. 사진은 여행가의 앨범을 호사롭게 하거나, 그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정확함을 그의 눈앞에 재현시키는 일이나 맡으라고 권하는 편이 낮다. 사진으로는 자연과학자들의 도서관을 장식하라고 하고, 현미경으로나 볼 생물들이나 확대하라고 하자. 또 천문학자의 가설에 확증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성실하라고 하자."

보들레르가 사진의 본연 의무를 '예술과 과학의 하인'으로 간주하여 '현미경으로나 볼 생물들이나 확대하라'고 했던 말에 대해 70년 후인 1928년 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가 '반론'을 제기한다. 그 점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놀라운 식물사진들을 펴낸 블로스펠트는 속새풀의 줄기에서 고대기둥의 형태를, 청나래고사리에서 추기경의 지팡이를, 열 배로 확대한 밤나무와 단풍나무의 새싹에서 토템의 나무를, 그리고 산토끼 꽃에서 고딕양식의 원형 장식을 드러내 보여줬다."

칼 블로스펠트의 '공작고사리'. 1928

물론 벤야민은 블로스펠트의 사진작품을 본 것이 아니라 120점의 식물사진을 실은 '예술의 원형, 사진적 식물이미지(Urformen der Kunst, Photographische Pflanzenbilder)'(1928)라는 제목의 도록에 실린 사진들을 보았다. 아니다! 도록(에 실린 사진들)이 바로 블로스펠트의 사진작품이다. 그 도록은 베를린 미대에서 조각과 모형제작을 가르치던 블로스펠트 교수를 일약 '스타사진가'로 만들었다.


1884년 블로스펠트는 베를린 공예박물관 부설학교에서 스케치 수업을 받았다. 그는 그의 스케치교사였던 모리츠 모이러(Moritz Meurer)의 '장식적 형태' 연구를 위한 교육자료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모리츠 프로젝트 팀은 지중해 연안을 다니면서 장식적 형태 연구를 위해 식물을 스케치하거나 모형을 뜨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당시 모리츠 프로젝트 팀에서 사진을 담당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30여년간 식물사진만 촬영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식물사진은 식물표본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사진인 셈이다.

류병학 독립큐레이터

그런데 블로스펠트가 찍은 속새풀의 줄기에서 벤야민이 고대기둥의 형태를 보았다는 보조수단으로서의 사진은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사진작품으로 칭송된다. 그리고 블로스펠트는 '신즉물주의(die Neuen Sachlichkeit)' 사진의 영역을 개척한 사진작가로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블로스펠트의 장식적 형태 연구를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식물사진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사례로 블로스펠트의 '공작고사리(Adiantum pedatum)'를 들어보겠다. 그 사진이 여러분의 눈에 '공작고사리'로 보이나요? 만약 우리가 공작고사리에서 그 이미지를 발견하려면 '육백만불 사나이'의 눈을 빌려야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이미지는 공작고사리의 끝 부분을 12배로 확대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기의 눈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 독립큐레이터

<저작권자 Copyright ⓒ 중부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