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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소송 이기고도 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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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제조사 배상 판결 이끌어냈지만… 업체 세퓨는 이미 폐업]

- 돈 받기 힘들다는 것 알지만…

"숨진 우리 아이의 납골당에 판결문이라도 놓고 싶었다"

옥시 등 4개社와는 이미 합의, 국가 상대 손배소는 기각

조선일보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11건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재판장 이은희)는 1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최모씨 등 13명이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세퓨는 피해자들에게 각 1000만~1억원씩 총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因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씨 등이 청구한 위자료 전액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제출한 신문 기사나 보도 자료만으로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씨 등은 지난 2014년 8월 세퓨와 국가를 비롯해 옥시레킷벤키저, 롯데쇼핑, 한빛화학, 용마산업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를 상대로 9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재판에서 "제조사들이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제품을 제조·판매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 역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피해자들이 옥시 등 4개사와 조정에 합의하면서 세퓨와 국가에 대해서만 판결이 선고됐다.

이번에 인정된 위자료 액수는 최고 1억원이지만 2심에선 더 많은 위자료를 인정받을 수도 있다. 법원이 지난달부터 사람의 생명에 피해를 입히고 이익을 올린 기업의 '불법 영리 행위'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자료 3억원을 물리되 소비자가 믿고 사용한 상품이 광범위한 인명 피해를 낳았을 경우 9억원까지 위자료를 올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1심 재판부도 최근 상향된 위자료 기준을 검토했지만 피해자들이 청구한 금액을 넘어서 위자료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이 항소하면서 청구액을 변경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승소한 피해자들이 실제 세퓨로부터 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직원이 10명 정도 되는 작은 업체였던 세퓨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1년 폐업했다. 세퓨 전 대표인 오모씨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법정을 찾은 피해자 김대원(41)씨는 "세퓨가 이미 파산한 상태라 재판에서 승소했어도 배상받을 길이 없다"며 "아이 납골당에 판결문이라도 갖다 놓으려고 끝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딸 예안양은 세퓨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시름시름 앓다 태어난 지 10개월 만인 지난 2011년 4월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가습기살균제국정조사특위가 다시 가동돼 우리처럼 제조사가 파산해 소외받는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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