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니에의 미발표 작품들이 곧 소개된다(Des inédits de Molinier, bientôt révélés)
숭고한 여장 남자인 피에르 몰리니에(Pierre Molinier)는 예술 차원으로 승화된 페티시즘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완벽한 오르가슴을 지녔던 인물이다. 그는 양성구유를 다룬 가장 문제적인 사진가였다. 최근 파리에 소재한 카멜 메누르 화랑이 그의 미발표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수백 점에 달하는 습작사진들은 동성애 선조로서의 작업테크닉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상습적인 유혹자, 확신에 찬 페티시스트, 골수 여장 남자, 부주의한 양성애자인 몰리니에는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두 개의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천국에 바로 도달하기 위해 ‘쾌락’을 즐기는 일과 ‘시간의 무한 속에 흔적을 남기는일’이 그것이었다.” 자신의 난장판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몰리니에는 잘라내고 다시 붙이며 정리하고 조작한 사진들을 손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사진들은 거의비현실적인 모습들로 탈바꿈한다. 그는 먼저 가터벨트를 걸치고 하이힐을 신은 자기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 자화상 위에다 상상속의 ‘반려자’ 역할을 하는 마네킹 사진을 중첩시킨다. 사진은 팔들과 검은 비단으로 감싼 화관 모양의 다리, 꽃받침 형상의 엉덩이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그는 모든 각도에서 바라본 사진 모델 포즈를취했고, 그런 다음 귀신 같은 얼굴과 나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으로 현재까지남아있는 것은 160점뿐이다.
“상습적인 유혹자, 확신에 찬 페티시스트, 골수 여장 남자, 부주의한 양성애자인 몰리니에는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두 개의 강박관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천국에 바로 도달하기 위해 ‘쾌락’을 즐기는 일과 ‘시간의 무한 속에 흔적을 남기는일’이 그것이었다.” 자신의 난장판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몰리니에는 잘라내고 다시 붙이며 정리하고 조작한 사진들을 손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사진들은 거의비현실적인 모습들로 탈바꿈한다. 그는 먼저 가터벨트를 걸치고 하이힐을 신은 자기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 자화상 위에다 상상속의 ‘반려자’ 역할을 하는 마네킹 사진을 중첩시킨다. 사진은 팔들과 검은 비단으로 감싼 화관 모양의 다리, 꽃받침 형상의 엉덩이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그는 모든 각도에서 바라본 사진 모델 포즈를취했고, 그런 다음 귀신 같은 얼굴과 나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으로 현재까지남아있는 것은 160점뿐이다.
카멜 메누르 화랑은 ‘미발표 작품들’이란 기념비적 전시회를 그의 방에서 열었다. 최종 포토몽타주 작업을 하기 위한 습작, 친구에게 선물한 사진들, 네거티브, 연필로 덧칠한 단 하나의 습작들 등 전시된 이미지들은 몰리니에 작품세계에서 중간 단계에속한다. 화랑은 몰리니에의 일기, 메모, 사적인 편지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모든 자료는 전시회 개최를 전후해 특별히 출간된 책 속에 들어있다. 책에는 800점의 사진들이 들어있는데, 그 대부분이 미발표 작품들이다. 사진들은 작업방식을 밝혀내고, 복합적인 이미지들의 기원과 연금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회화, 사진 및 추문이곁들인 실존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가 드러나지요. 예술가가 세심하게 꾸민 신화가 작품의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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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이루는 쓰레기더미도 빠뜨릴 수 없다. 거실 한가운데 무덤처럼 놓여있다. “우리는 포세 거리에사는 무당집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아틀리에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커다란 인형이 거울 앞에 놓여있으며, 방문객을 유혹한다”고 몰리니에에 대한 책을 저술한 에릭 메르시에(Eric Mercie)가 설명해 준다.
몰리니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예술가를 아주 존경했던 인물인 화랑업자 알랭우댕(Alain Oudin)의 인터뷰를 싣는다. 그는 수년 동안의 열정적인 연구 끝에 몰리니에가 제작한 무수한 미발표 포토몽타주 작품들을 찾아낸 사람이다. 작품들 중에는 몰리니에 자신과 그가 사랑하던 인형을 바로크식으로 만든 아주 유명한 자화상인 ‘유혹의 반영’, 인형 사진인지 여성들을 찍은 사진인지 모호한 ‘마법의 소녀들’도 포함돼 있다.
-몰리니에가 여장 남자였을까요?
▶18세부터 76세까지 그는 남자이자 여자인 이중적인 이미지를 자신에게 부여했지요. 다리와 엉덩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요. 일생 동안 그는 각선미를 중시했습니다.
-쾌락에 대한 그의 예외적인 인내심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다리에 대한 페티시즘에서입니다. 몰리니에는 그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에게 다리는 하이힐이나 팬티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슴을 떨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왜 정액에 매료되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으로 무얼 했을까요?
▶최고의 요기들처럼 오직 정액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도전을 시도해보았지요. 이런 방식이 자유와 독립의 추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해보는데 몰리니에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는 알고자 했습니다.
1955년께부터 그는 정액을 글라시칠에 사용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테크닉을 개발했습니다. 연달아 15번에 걸쳐 니스 칠을 했는데, 칠 사이의 층을 정액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액이 작품에 ‘아주 특별한’ 빛을 부여한다고 몰리니에는 주장했지요. 사본의 채색을 담당했던 중세 수도사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유명했나요?
▶생전에 그는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에서 육체 예술의 중요한 선구자로 인식되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수음하는 사람’ 이미지가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었지요.
장-자크 포베르(Jean-Jacques Pauvert)는 1957년부터 그의 사진들을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1968년 혁명이 몰리니에에게 예언자 위상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몰리니에는 늘 검열의 대상이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드골 부인이 몰리니에에 대한 책의 출간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왜 그의 아파트에는 온갖 종류의 쓰레기더미가 차고 넘쳤을까요?
▶피로, 용이함, 게으름 때문이었겠지요. 그는 자신이 현관으로 사용하던 방을 가구와 열쇠 아틀리에로, 음식물 보관 장소로,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는 이 방을 ‘잡동사니 방’이라 불렀습니다. 1973년에 피에르 부르자드의 요청에 따라 딱 한 번 거실을 청소했을 따름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을까요?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고, 고유한 의미에서나 비유적인 의미에서 자신들을 ‘벗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몰리니에는 치유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미지는 몰리니에의 작품)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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