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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안방보험이 최근 인수한 알리안츠생명 한국지사. |
‘STS, 피델릭스, 카카오, 초록뱀, 아가방, 동양생명, 알리안츠생명….’
최근 수년 사이 중국 자본이 인수합병이나 지분투자를 통해 경영에 참여한 기업들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 규모는 1181억달러(약 142조원)로 사상 최대. 한국 기업도 이들의 사정권에 포함된 셈이다.
우리 기업 인수에 적극적
▶‘그린필드’서 ‘브라운필드’로
국내 유입되는 중국 자본의 최근 특징은 ‘그린필드’ 투자에서 ‘브라운필드’ 투자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중국은 우리나라 국채나 주식을 매입하거나 부동산을 개발하는 식의 그린필드 투자를 해왔다. 투자 주체는 홍콩의 민간 자본이 주를 이뤘다. 요즘은 달라졌다. 국내 기업의 지분을 직접 사들이거나 인수하는 식의 브라운필드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투자 주체도 중국 본토의 국유 자본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차이나머니의 국내 기업 쇼핑이 중국 정부가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브라운필드 투자는 2014년 하반기부터 급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투자 주체가 국내 상장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건수가 2006~2013년 단 1건에 불과했지만 2014년 2건, 지난해 10건, 올해는 4월 기준 벌써 3건을 기록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중국이 눈에 띄게 지분을 사 모으는 분야는 모바일 게임이다.
중국 샨다게임즈는 지난 2004년 국내 중견 PC온라인 게임사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했다. 당시 약 150억원에 달하던 ‘미르의전설2’의 로열티 문제가 불거지자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삼켰다. 글로벌 1위 게임회사인 텐센트는 2014년 한 해 동안 굵직한 국내 게임업체들에 집중적으로 지분을 투자했다. 넷마블게임즈, 네시삼십삼분, 파티게임즈, 카본아이드 등이다. 텐센트는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 플랫폼인 카카오에도 일찌감치 13.3% 지분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 최근에는 중국 게임업체 아워팜이 NHN엔터테인먼트가 보유 중인 웹젠 지분 19.24%를 2039억원에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외에도 아이덴티티게임즈, 룽투코리아 등 중국이 인수·지분투자한 국내 모바일 게임업체는 수십 개에 달한다.
모바일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은 텐센트, 샨다 등 중국 내 게임 대기업들이 투자 주체였다면 요즘은 중국계 사모펀드들도 투자 의사를 타진해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도 중국 자금이 야금야금 침투하고 있다. 2014년 키이스트와 NEW, 2015년 레드로버, 초록뱀미디어, FNC엔터테인먼트, 올해 씨그널엔터테인먼트 등 벌써 10여개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인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한류 스타가 출연한 드라마 등 작품 중심의 투자가 많았다. 최근에는 제작사·PD·작가 등 콘텐츠 생산 주체에 직접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한다. 잡은 고기를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고기잡이배는 물론, 선장과 선원까지 통째로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IT, 헬스케어,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자본의 기업 쇼핑이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선 중국 반도체 업체인 동심반도체유한공사가 지난해 4월 메모리 반도체 전문 설계업체인 피델릭스의 최대 주주가 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SK하이닉스의 지분 15~20%를 인수하려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화장품과 헬스케어업계에선 중국 유미도그룹이 넥스트아이를, 완구업계에선 홍콩 사모펀드가 영실업을 인수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아동복 전문 중견기업 서양네트웍스와 아가방컴퍼니가 잇따라 팔렸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중국경제팀장은 “중국이 그간 국내 기업에 단순 지분투자만 해왔는데 최근 들어 경영권을 인수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오랜 지분투자 기간을 거치며 해외 기업에 대한 운영 노하우가 쌓이자 국내 기업을 ‘테스트베드’로 삼은 셈”이라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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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권 보유 1위…은행 속속 침투
차이나머니의 존재감은 금융 시장에서도 예사롭지 않다. 크게 보면 금융산업에 직접 진출하는 형태가 하나, 자본 시장에 투자하는 형태가 또 하나다.
특히 금융산업 진출은 눈에 띌 정도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중국계 은행은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1990년대 연락사무소 형태로 한국에 들어온 중국계 은행들은 2010년 이후 예금, 대출,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등 고객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자산을 부쩍 늘려왔다. 지난해 기준 중국계 은행 5개의 총자산은 70조원을 넘겼다. 웬만한 지방은행보다 크다. 여기에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열리면서 중국 광다은행까지 가세,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중국계 은행이 많이 진출한 도시가 됐다.
보험 시장에서도 중국계 자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 안방보험은 지난해 동양생명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도 사들였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중국계 보험사가 단숨에 국내 5위로 올라선다.
범중국계인 대만 기업들 움직임도 활발하다. 유안타증권(옛 동양종금증권)은 증권업계의 주요 기업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대만계 금융그룹 푸폰그룹은 지난해 2200억원을 들여 현대라이프 지분 48%를 사들이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중 무역뿐 아니라 중국 내 금융 산업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투자 다변화를 해야 하는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금융 시장이 훌륭한 대안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업체를 인수해 금융 보안, 상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이식받을 수 있다는 점도 차이나머니의 진출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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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수 성장하면서 투자처 다변화 필요
중국이 채권 계속 사면 국내 보험사 ‘흔들’
자본 시장에서도 차이나머니의 위력은 대단하다.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 자본의 주식투자는 연평균 1조9000억원(34.1%)씩 늘려왔다. 올해 2월 기준 중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 금액은 8조402억원에 달한다.
채권 시장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은 돋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국의 한국 상장채권 보유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말 우리나라 상장채권 14조466억원어치를 보유했던 중국은 지난해 말엔 17조428억원까지 늘렸다. 올해 4월 기준 중국은 한국 채권의 최대 보유 국가로 올라섰다. 김영익 교수는 “중국 자본의 채권 매수가 급격하게 확대될 경우 금리 하락 가속화로 한국의 일부 보험사는 파산할 수도 있는 만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랜드마크 건설, 중국 업체 몫 커진다
지난 4월 초 국내 건설업계를 들썩이게 한 소식이 있었다. 제주시에 짓는 38층짜리 ‘드림타워 카지노 복합리조트’ 시공사로 중국 건설사인 중국건축고분유한공사(CSCEC)가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제주시 핵심 상권인 노형오거리에 들어서는 드림타워는 제주 랜드마크로 기대가 크다. 연면적 30만2777㎡에 호텔 776실과 호텔레지던스 850실, 슬롯머신 300대를 운영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복합쇼핑몰 등이 들어선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지상 38층(169m)짜리 쌍둥이 건물인 드림타워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1.8배 면적을 자랑한다. 공사비만 7000억원으로 오는 5월 착공해 2019년 3월 완공 예정이다.
눈길을 끄는 건 CSCEC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점. 먼저 공사비를 받지 못해도 조건 없이 돈을 들여 건물 완공을 책임지기로 했다. 또한 착공 후 18개월 동안 모든 공사를 자체 자금으로 진행한다. 18개월이 지나도 누적 공사비가 1800억원(약 10억위안)이 되지 않으면 공사비 청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건설사가 ‘조건 없는 책임준공 확약’에다 미리 공사비를 받지 않는 ‘외상 공사’를 받아들인 건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보통 국내 건설사들이 단순 도급 사업을 통해 일정 기간 단위로 기성금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원래 드림타워 공사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할 거란 관측이 많았다. 2014년 3월 한화·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시공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행사 측이 공사비 지급 확약을 하지 않은 데다 850실 호텔레지던스 분양 흥행 여부가 불투명해 한화·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은 중도에 포기했다. 뤼디그룹(녹지그룹)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 시공사를 물색했고, 결국 CSCEC가 시공계약을 따낸 셈이다.
CSCEC는 자산 규모 171조원, 연매출 141조원(2014년 기준)에 이르는 세계 1위 건설사다. 국내 최대 건설사인 현대건설 매출이 20조원에 못 미치는 것과 대비된다. CSCEC는 그동안 중국 상하이 월드파이낸셜센터, 두바이 팜주메이라 등 세계 116개국에서 560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탄탄한 시공 경험을 쌓았다.
이를 두고 국내 건설업계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38층짜리 제주 최고층 건물로 사실상 ‘제주도 랜드마크 건물’ 시공 몫을 중국 건설사에 내줬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국 건설사들은 자금력이 워낙 탄탄해 말도 안 되는 시공 조건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계속해서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면서 우리 건설 시장을 장악하면 국내 건설사가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국 개발업체들은 기회만 있으면 국내 대규모 프로젝트를 호시탐탐 노리는 분위기다. 지역별로 보면 제주도가 가장 활발하다. 중국 녹지개발은 서귀포시 동홍, 토평동 일대에 153만㎡ 규모 헬스케어타운을 조성 중이다. 분마그룹도 제주 이호해수욕장 일대에 제주분마이호랜드를 건립하고 있다. 사업비만 4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제주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 요지에도 중국 자본이 속속 밀려드는 모습이다. 한동안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용지에 관심을 보여온 중국 뤼디그룹은 최근 매물로 나온 한남동 외국인아파트(한남외인주택) 터 매입을 준비 중이다. 한남외인주택 용지 면적은 6만677㎡로 매각 예정가는 6131억원이다. 뤼디그룹을 비롯한 중국 건설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경쟁이 치열해지면 입찰가가 1조원이 훌쩍 넘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건설업계에선 “중국 개발업체마다 자금 여력이 탄탄해 조건만 맞으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 초고층 빌딩 건설 물량까지 줄줄이 따낼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력,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중국 건설사의 국내 진출은 건설업계에 경각심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담합 논란 등으로 폐쇄적 이미지가 굳어진 상황이라 이참에 국내 건설사들은 시공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인들의 한국 부동산 투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모습이다. 제주에선 외국인 소유 건축물의 70% 이상이 중국인 몫일 정도다.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6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면서 중국인을 위한 숙박시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제주 함덕, 애월 일대에는 한국인을 받지 않는 중국인 전용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중국인들이 한국 부동산을 잇따라 사들이는 건 부동산투자이민제 영향도 크다. 부동산투자이민제는 외국인이 국내 부동산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국내 거주자격(F-2)을 주고 5년이 지나면 영주권(F-5)을 허용하는 제도다. 제주는 2010년 2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왔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제주뿐 아니라 서울, 인천, 강원 등 다른 지역에도 중국 자본이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 자본의 한국 부동산 투자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병수·김경민·박수호·나건웅·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54호 (2016.04.20~04.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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