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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을 찾아서(19)] 인디언의 땅, 어떻게 빼앗겼나

파이낸셜뉴스 정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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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인디언을 찾아서(19)] 인디언의 땅, 어떻게 빼앗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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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부족 땅 나눠줘 공동체 해체.. 가난한 인디언, 결국 백인에게 땅 팔아
1887년 토지할당정책 시작.. 백인에게는 좋은 땅 주고 인디언에겐 불모지 넘겨



■토지할당정책 시행

멕시코전쟁(1846~1848년), 남북전쟁(1861~1865년), 평원인디언전쟁(1854~1881년)이 모두 끝나고 오늘날의 미합중국의 근간이 완성된 1880년대의 미국은 앞으로 인디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내린 결론은 인디언들을 마냥 인디언보호구역에 가둬 놓고 정부배급에만 의존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인디언도 일종의 소수민족으로 취급해 다른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시켜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에게 백인문화를 주입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해 칼라일과 같은 기숙학교를 설립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백인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철저히 주입시켰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인디언보호구역 내에서 부족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부족공동체를 어떻게든 해체하고 백인식 개인주의를 도입해 궁극에는 인디언을 보통의 미국시민으로 변화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1887년 토지할당정책이 시작됐다.

1887년 2월 7일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일반토지할당법은 흔히 최초 입안자의 이름을 따서 도스법(Dawes Act)이라고 부른다. 도스법의 도입 목적은 부족 공동소유의 땅을 개인에게 할당함으로써 부족공동체를 해체한 후 인디언들도 주의 법률을 따르도록 만들고, 자족형 농민을 육성해 인디언에 대한 정부지출 부담을 경감하고, 할당하고 남는 땅은 백인 정착민에게 나눠준다는 것이었다. 도스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세대주에게 160에이커(약 20만평)를 나눠주고 18세 이상의 미혼자에게는 80에이커를 18세 이하에게는 40에이커를 할당하되 받은 토지는 25년간 미국정부에 신탁해야 하며, 향후 4년의 기간 안에 할당받을 땅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에는 내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할당지를 지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일단 토지를 할당받게 되면 미국시민이 되고 주의 법률에 따라야 했다.

할당받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는 일이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았다. 백인에게 넘겨줄 잔여지는 대체로 좋은 땅으로 떼어놓고 인디언들이 할당받은 땅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열악한 경우도 많았거니와 앞마당 텃밭과는 달리 20만평의 토지에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농기구를 구입하는 등 상당한 초기투자가 필요하나 인디언의 경우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가 토지를 할당받은 경우에는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토지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책으로 연방의회는 할당받은 토지의 임대를 허용했다.

곧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로 인하여 경작이 불가능한 경우에 내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대차계약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1894년에는 임대허용 조건에 무능력도 추가됐다. 시장경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인디언들은 인디언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임대차계약을 맺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인디언의 권리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연방정부 주재관은 거꾸로 백인들과 결탁해 인디언을 착취하는 데 앞장을 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토지할당법의 폐해

토지할당법의 폐해가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06년 버크법이 제정되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내무부 장관이 '능력있는(competent)' 토지소유자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25년간 신탁조건에서 해방되어 언제든지 할당받은 토지를 팔 수 있도록 도스법을 개정했다.

인디언의 땅을 노리고 있던 백인들에게 아주 잔치용 멍석을 깔아준 형국이 되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능력자 인정을 받아내는 일도 만연했거니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디언들은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토지를 팔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스법 시행 당시 54만㎢이던 인디언의 땅은 이 법이 폐기됐던 1934년에는 19만㎢로 줄어들었다. 도스법 도입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국회의원 중의 한 사람인 텔러 상원의원은 "토지할당 정책이야말로 인디언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어 지구상의 방랑자로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는데 결국 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인디언들이 도스법의 숨겨진 의도를 모를 리 없었지만,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오로지 백인들의 자비에만 의존하고 있는 처지에 더 이상 미국 정부에 저항한다는 일은 불가능했다. 데보는 1940년에 발간된 그의 역사적인 명저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문명화된 5개 부족에 대한 배반'에서 5개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의 땅과 자원을 뺏어간 과정을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했다.

■토지선점 경주

인디언의 땅을 연방정부가 인수해 백인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할 경우 수많은 불하 희망자가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홈스테드를 공여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토지선점경주(Land Run)라는 코미디 같은 제도가 도입됐다.

토지선점경주는 오클라호마에서 모두 일곱차례 실시되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경주는 1893년 9월 16일 체로키로부터 양수받은 땅에서 벌어졌다. 토지선점경주의 대상이 된 땅의 크기는 모두 약 3만3000㎢로서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첫 경주는 1889년 4월 22일 정오 시간에 5만 명의 참가자가 일제히 출발하여 자신이 원하는 필지로 달려가는 것이었는데, 미리 마음에 둔 땅에 몰래 숨어들어 출발 시간에 맞추어 나타나 자신이 먼저 도착했다고 우기는 사례가 많아 토지 관련 다툼이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경주가 개최된 곳에서는 불과 반나절 만에 인구 1만 명의 도시 두 개, 곧 오클라호마시티와 거스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열연한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라는 제목의 영화에 토지선점경주 장면이 나온다.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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