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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세계유산·아베담화…암초넘어 합의된 한일정상회담

연합뉴스 조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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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세계유산·아베담화…암초넘어 합의된 한일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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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중재·수교 50주년 동력 등으로 여러 악재 어렵게 돌파
6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한 한일정상.(연합뉴스.자료사진)

6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한 한일정상.(연합뉴스.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암초에 암초를 넘고 넘어 성사된 한일정상회담이었다.

오는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하기까지 양국은 역사 갈등 속에 '밥상'을 차리려다 치우기를 반복하는 곡절을 겪었다.

2013년 2월과 2012년 12월과 각각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인해 급격히 악화한 한일관계 정상화의 과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했다.

박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3년은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문제가 정상회담의 최대 암초가 됐다.

일본 정부의 2인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그해 2월 박 대통령 취임 축사사절로 방한했을 때 박 대통령 앞에서 '야스쿠니신사가 미국 알링턴 묘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펴더니 4월 21일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한국 정부는 당시 추진 중이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을 취소하며 강력 반발했다.


이후 한미일 3각 공조를 복원하려는 미국이 중재외교를 펴는 가운데, 한일은 역사인식 문제로 갈등하면서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26일 아베 총리가 집권 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임기 중에 한일정상회담이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중재외교에 박차를 가했다. 두 정상은 작년 3월 25일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계기삼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사이에 둔 채 어색한 첫 대면을 했다.


하지만 정식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집단 자위권 추진, 고노(河野) 담화(군위안부 제도에 일본군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담화) 검증 등 아베 정권의 '우향우' 행보 와중에 한국내 대일 여론은 악화했고, 산케이 신문 기자 기소(작년 10월 8일) 등으로 인해 일본내 대 한국 여론도 급속히 얼어 붙었다.

이런 상황이 외교적 창의성을 제약하면서 한국은 군위안부 문제의 진전을 사실상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걸었고, 일본은 '전제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작년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때 양국 정상이 나란히 앉아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그 효과는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이들을 잠시 안도하게 하는 수준에 그쳤다.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올해 들어서도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가 중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담화가 나올 8월 이후로 미뤄지는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 사이에는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희미하나마 존재했다. 그런 인식 아래 6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양국 대사관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교차 참석하고, 그 전날 한일 외교장관이 도쿄에서 회담하면서 정상회담으로 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후 7월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진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놓고 한일 외교당국의 상호 불신이 한때 심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명확한 사죄가 빠진 아베 담화(8월 14일 발표)에 대해 박 대통령이 비판 대신 일정한 평가를 함으로써 정상회담으로 가는 불씨는 이어졌다.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한국내 여론이 점차 고개를 드는 가운데 한일 정상회담의 무대를 만든 쪽은 한국이었다. 중국의 항일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결정한 박 대통령이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때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10월말 또는 11월초 한국에서 개최하는데 대해 중국의 동의를 받아 낸 것이다.

이후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이던 지난 15일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에 한일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발언함에 따라 정상회담 개최는 기정사실이 됐지만 양측은 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와 그와 결부된 한일 정상회담 의전 등으로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26일 청와대 당국자가 '11월 2일 개최안'을 일본에 제의했다고 밝힌 데 대해 이튿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모른다'고 발뺌하는 등 정상회담 성사 공식 발표 직전까지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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