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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생갈렌주 도로에서 보이는 알프스 산맥의 모습. 몽환적인 아침 분위기는 오랜 세월 여행객들을 유혹해왔다. |
햐, 고민이다. 스위스관광청 소장만 15년째. 매일경제 신익수 여행전문 기자의 기고 부탁을 받고 덜컥 응했는데, 어떤 투어를 소개할까. 기차? 아니다. 이미 '스위스=기차'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다. 그렇다면? 맞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투어. 볼 것 없었다. 사실, 스위스의 매력은 도시보다는 바깥이다. 푸른 초원, 수정 같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험산 구석구석 고갯길을 달려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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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차량 렌트. 든든한 SUV 한 대를 빌려 놓고 지도를 펼쳤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 총길이만 1643㎞. 스위스관광청이 여행자의 동선에 맞춰 루트를 최적화한 스위스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 장난 아니다. 문화가 전혀 다른 4개 언어권을 지난다. 길 주변에는 44개의 명소가 있는 것도 포인트. 11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있다. 로잔 루트부터 찍었다. 취리히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달아 오른쪽으로 도는 코스다. 이 길의 핵심은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빙하 따라 걷기와 자연에 깃든 선인들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포도밭 하이킹.
들머리는 베트머알프 마을이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 마을. 당연히 마을도 고산 턱 바로 아래다. 해발 고도만 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보다 높다. 걷기 싫은 내가 트래킹을 할 리 없다. 마을 아래쪽 베텐 기차역에서 케이블카에 탑승. 알레치 빙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 전망대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탄다. 등산로는 베트머호른 전망대 옆에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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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탄성들이 쏟아진다. 멀리서부터 눈에 파노라마처럼 박히는 알레치. 22㎞짜리 유럽 최장 빙하다. 빙하 아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0m에 달한다. 빙하의 무게만 270t이라는 알레치. 녹이면 전 세계 인구가 6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다.
다시 투어 돌입. 그랜드 투어에선 모두 5개의 이름난 패스(고갯길)를 지난다. 그 가운데 험하고 멀기로 수위를 다투는 고갯길이 푸르카 패스다. 안내판에 적힌 사전적인 설명은 '글레치 마을과 안데르마트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여기선 굳이 목적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푸르카 패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운전의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카 패스는 해발 2429m를 지나는 산악 도로다. 그랜드 투어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의 산악 도로를 따라 추격 장면을 찍었다. 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이 10㎞ 정도 줄곧 이어진다. 오르는 내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살벌한 풍경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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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마터호른의 모습. |
푸르카 패스 맞은편은 그림젤 패스(2100m)다. 이 길도 만만찮다. 푸르카 패스가 동서를 잇는다면 그림젤 패스는 남북을 연결한다. 놀라지 마시라. 이 길은 여름 시즌에만 운영된다. 우리처럼 '제설작업' 하며 오르내리는 수준이 아니다. 통째 얼음이 덮여 있는 꼴이다.
고개 아래 글레치 마을도 포인트.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가 교차하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앞으로 론 빙하가 흘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작은 산간 마을인데도 어김없이 트레일은 조성돼 있다. 정말 '하이킹의 천국' 스위스답다. 우윳빛 론 강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제법이다.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 마을 생모리스. 마을 이름과 같은 수도원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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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의 옛 부두인 쉬프페(Schipfe)의 야경. |
1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추앙받는 선교자들을 위한 장소다. 중세 금세공업자들이 만든 걸작 성물 예술품 등 기독교의 보물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꼭 찾아봐야 할 것. 수도원 정문에 새겨진 김대건 신부 등 한국 순교자들의 한글 이름이다. 길을 가다 느닺없이 만난 니더발트라는 작은 산간 마을. 여기도 압권이다. 샬레(오두막집) 스타일의 집들이 여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츠 계열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곳이다. 아, 그러고 보니 또 설렌다. 최소 8일. '8일간 꿈의 드라이브'를 해야 이 그랜드 투어 코스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8일간의 느닺없음에, 어떤 마을들을 만날까.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그랜드 투어 100배 즐기는 Tip
8일간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제대로 준비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1. 스위스 그랜드 투어 시기
여름이다. 스위스로 치면 4월부터 10월 사이다. 알프스 산 고갯길 통행은 눈이 녹는 여름에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2. 자동차 렌트
스위스 렌터카는 기본적으로 수동이다. 내비게이션, 없다. 차량 예약 시 영어 GPS(내비게이션)와 오토차량을 신청하도록 한다.
3. 교통법
속도 제한:도로에 표시되어 있는 속도가 기준이나 대개 마을 내에서는 시속 50㎞이며, 마을 밖에서는 시속 80㎞다.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20㎞다.
고속도로 이용권 '비네트(Vignette)'를 차량에 부착해야 하는데, 국경이나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단, 렌탈 차량의 경우 이미 부착되어 있다.
라운드어바웃에서는 이미 통행하고 있는 차량들이 우선권을 가지며, 반드시 모든 차량이 통과한 후에 진입해야 한다.
철로를 이용하는 기차나 트램이 항상 우선권을 가진다.
어린이의 경우 카시트를 이용해야 한다.
4. 주유
사전에 미리미리가 정답. 도심지 밖에서는 주유소가 그리 자주 보이지 않는다.
5. 응급상황 전화번호
경찰 117, 화재 118, 앰뷸런스 144, 스위스 구조대 1414
※사진·자료 제공〓스위스정부관광청(www.MySwitzerland.co.kr)
[글 = 로잔 / 시에르(스위스) 김지인 스위스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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