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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1)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사

파이낸셜뉴스 윤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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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61)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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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키운 망고·리치·오크라, 곧 식탁에 오를겁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임찬규 박사(왼쪽)가 양다운 인턴연구원과 함께 망고의 유리당(단맛을 결정하는 물질)을 분석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임찬규 박사(왼쪽)가 양다운 인턴연구원과 함께 망고의 유리당(단맛을 결정하는 물질)을 분석하고 있다.


【 제주=윤경현 기자】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과일의 재배적지가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때 제주의 특산품이었던 감귤은 남해안 일대는 물론 충북으로 지배지역을 확대했다. 또 과거에는 사과하면 대구를 떠올렸으나 지금은 '춘천사과' '정선사과'가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오는 2050년 경북지역에서는 사과 재배가 어려울 전망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현재 재배하고 있는 작물은 수확량 감소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 반대로 열대·아열대 과일과 채소 등 새로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의 먹거리를 고민하는 곳이다. 해외에서 유전자원을 들여와 우리나라 환경에 맞도록 재배조건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지난달 24일 가뭄 끝에 찾아온 장맛비를 즐겁게 맞으며 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를 찾았다.

■온난화 대비 망고 등 열대과일 재배 연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없이 많은 비닐하우스였다. 언뜻 세어봐도 동그란 모양이 수백개는 족히 되는 듯했다. 대학에서 동양난을 연구하다 6년 전부터 열대과일을 연구 중인 임찬규 박사(39)는 "몇 개가 연결된 대형 하우스도 있어 총 50여동 정도 된다"고 소개했다.

임 박사가 기르고 있는 아열대 과수는 모두 18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망고와 용과, 올리브, 리치, 패션프루트 등 6개는 국내 도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수입산과의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국산 망고의 경우 완숙된 상태로 수확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수입산에 비해 맛과 향이 훨씬 뛰어나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제주에서는 60여농가가 망고를 재배하고 있는데 ㎏당 가격이 4만원 안팎으로 수입산보다 5배가량 비싸다.

수입돼 들어오는 열대과일은 검역절차를 거치는 탓에 싱싱한 생과에 비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 박사는 "리치의 경우 냉동으로 들여오고, 망고는 45∼60도에서 약 15분간 '온탕찜질'을 거쳐 수입된다"며 "그래서 생과처럼 보이지만 향이 없어지고, 식감도 물렁물렁해진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망고는 지난해 1만599t이 수입돼 전년(6154t)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임 박사가 직접 재배한 망고와 리치를 내놓으며 시식을 권했다. 잘 익은 사과를 닮은 애플망고에 눈길이 쏠렸다. 기대 이상이었다. 단연 지금까지 먹어본 최고의 맛이었다. 리치 역시 냉동으로 먹을 때와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지나치게 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임 박사는 "감귤의 경우 당도가 12브릭스(brix)를 넘으면 최상품으로 치는데 열대과일은 보통 16브릭스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리치의 경우 당도가 16∼18브릭스로 동남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 임 박사는 "시설재배를 통해 재배조건을 통제할 수 있어 더 맛있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착과량이 5분의 1에 불과해 수확량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위에 움츠러들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고품질을 유지하면서 수확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연구소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겨울철 온도조절인데 신경을 많이 쓰고, 손이 많이 갈수록 좋은 열매를 맺더라"면서 "시설에서 키우다보니 매개곤충이 없어 인공적으로 수정시켜야 하는 점도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수입 묘목이 자라고 있는 격리재배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우스 출입문에 커다란 자물쇠가 달린 것이 여느 하우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수입 묘목은 '병해충을 옮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뿌리의 흙을 모두 털어내고서 들여온다"며 "그리고 이곳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동안 검역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고 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해충을 막기 위해 하얀 그물망이 둘러져 있고, 그 속에는 지난 3월 말에 들여온 망고 묘목 120개가 화분에 심어져 있었다. "잎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임 박사의 말을 듣고 찬찬히 세어보니 잎이 달린 것은 15개가 전부였다. 임 박사는 "망고 묘목 수입가격이 1개당 8만∼10만원인데 검역과 격리재배를 거치면서 80%는 죽는다"며 "석 달 새 1000만원 가까이 까먹은 셈"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격리재배가 끝난 뒤에도 5년을 더 키워야 제대로 망고를 수확할 수 있단다. 그야말로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임 박사는 "망고는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중요한데 한 번은 하우스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이듬해 생육이 잘 안 돼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다른 하우스에서는 저수형 망고 개발이 한창이었다. 원산지에서는 5m까지 자라지만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만큼 낮게 유지하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지가 치고 올라오면 가로 방향으로 유도한다. 1m50㎝에서 꽃을 피우고, 1m70㎝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임 박사는 "수확할 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필요도 없다"면서 "처음에는 수확량이 적지만 시간이 흐르면 비슷해진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김천환 박사(왼쪽)와 임찬규 박사가 재배연구 중인 망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김천환 박사(왼쪽)와 임찬규 박사가 재배연구 중인 망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하우스엔 아티초크 등 생소한 채소 가득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과일뿐만 아니라 채소도 연구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와 울금(강황) 등 귀에 익은 이름과 함께 아티초크, 여주(쓴오이), 오크라, 차요테, 인디언시금치 등 낯선 채소들까지 무려 40종에 이른다.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하우스를 한 번씩 둘러보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채소 연구를 맡고 있는 김천환 박사(48)은 "채소나 과일 모두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채소는 빨리 자라는 대신 작물이 많고, 과일은 하나를 키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아스파라거스가 가득한 하우스에 들어섰다. 김 박사가 "먹어보라"며 하나를 뜯어서 건네줬다. 씹을 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게 평소 음식점에서 맛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김 박사는 "아스파라거스의 경우 추운 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하지만 열대에서 키우면 수확량이 3배로 늘어난다"며 "다만 진딧물, 총채벌레 등 병해충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시설에서 재배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채소 연구에서 병해충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통제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한 작물의 병해충을 박멸하고 나면 다른 작물에 있던 게 옮겨 온다"며 "모두 다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같은 땅에 한 가지 작물을 계속 심을 경우 잘 자라지 않는다"면서 "돌려심기를 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김 박사는 채소의 경우 3년이면 적응과정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라 조리법을 함께 개발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그래서 채소 연구에는 가급적 조리학과 교수 등을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린다.

김 박사는 "고추처럼 생긴 오크라의 경우 외국에서는 주로 구워서 먹는다"면서 "우리는 국이나 찌개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조리해서는 오크라의 참맛을 느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채소의 경우 한 번 조리에 실패할 경우 주부들이 다시 안 쓰는 경향이 있어 아열대채소들이 일반화되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좋은 채소를 대중에 알리고 싶은 의욕이 너무 앞서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지난 2009년 고급 요리에 쓰이는 아티초크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희귀성이 높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요. 호텔에서도 쓰겠다고 했고, 유통업체도 좋다고 했어요, 적정한 농가를 찾아 연결시켜 줬습니다. 약 1만㎡의 밭에서 잘 키웠어요. 그런데 호텔의 구매부서에서 제동을 걸고 나왔습니다. 수입산을 사다 쓰기로 결정했다는 거예요. 생산량의 10%만 팔고 유통업체는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결국 나머지는 갈아엎었죠. 다행히 도전의식이 강한 농가여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다른 하우스의 4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온도차에 따른 작물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만든 '온도구배하우스'다. 온풍기와 환풍기를 이용해 같은 하우스 안에서도 바깥 온도와 0∼5도의 차이가 나도록 조절한다.

김치 관련 채소와 감귤이 연구대상이다. 첫 번째 하우스에는 배추가 두 줄로 자라고 있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배추의 크기는 작았다가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무와 고추는 심은 지가 오래지 않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마지막 하우스에 심어놓은 한라봉은 크기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가운데에 있는 것이 단연 크고 튼실해 보였다. 임 박사는 "지구온난화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모두가 미래의 우리 농업을 위한 것"이라며 "유전자원의 보호·보존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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