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중앙일보 언론사 이미지

레이디 가가, 男댄서들과…'파격' 퍼포먼스

중앙일보 송지혜
원문보기

레이디 가가, 男댄서들과…'파격' 퍼포먼스

속보
충북 보은 김치제조 공장서 불…대응 1단계 발령
외계인 레이디가가,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노래 불러







송지혜 기자

송지혜 기자

‘진정한 퍼포먼스를 아는 행위예술가’.
27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레이디 가가(Lady Gagaㆍ26)의 공연을 보고 난 뒤 기자의 머리에 떠오른 하나의 단상이었다.

공연은 8시 20분 시작됐다. 예정 시간은 8시였다.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콘서트가 1시간 지연된 사실을 알기에 ‘생각보다 빨리 시작하는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20분이 되자 경기장 내 조명이 꺼졌다. 무대를 덮고 있던 장막이 걷히자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중세시대 성(城)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10m는 족히 돼 보였다. 성에는 내리막길 세트가 연결돼 있었다. 가가가 갑옷을 입은 몇 명의 호위부대와 같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이들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동시에, 첫 곡 ‘하이웨이 유니콘(Highway Unicorn)’이 시작됐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앞뒤 할 것 없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가”를 연호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나타나다니….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가가의 골수팬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성 두 명은 흥분된 목소리로 “쩐다(‘최고다’의 비속어)”는 말을 주고 받았다.

가가는 “한국 정부가 이 공연을 18세 이상만 볼 수 있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걸맞은 공연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공연은 이에 맞게 화끈하고, 도발적이었다. 두 번째 곡인 ‘거버먼트 후커(Government Hooker)’ 마지막 부분에서, 가가가 테이블 위에서 농염한 춤을 주고 받던 남자 백댄서를 권총으로 쏴 죽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그의 최신곡인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가 시작되자 관객들의 환호성은 더 커졌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불투명한 가운을 입은 그녀는 백댄서들과 혼연일체를 이루며 안무·노래를 소화했다.

공연은 마치 장엄한 뮤지컬처럼 연출됐다. 가가 왕국을 뜻하는 ‘킹덤 오브 페임(Kingdom of Fame)’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이야기가 가가의 음악과 춤,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흘러갔다.

◇완벽한 퍼포먼스

이번 공연의 퍼포먼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블러디 메리(Bloody Mary)’를 부를 때, 어떤 장치를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가가의 몸이 저절로 무대를 천천히 이동했다. 마치 귀신처럼 말이다. 특별 스탠딩석인 ‘몬스터핏(Monster Pit)’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돌출형 무대를 가가와 여성 백댄서들이 천천히 이동하며 노래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또 오토바이에 납작 엎드린 채 노래하거나(이 위에 여성 백댄서가 올라타 춤을 춘 것이 동성애를 의미한다는 비판이 불거지기도 했다), 오토바이에 건반을 올려놓고 이를 꾹꾹 누르며 노래하기도 했다.


가장 신기한 부분은 고기를 가는 분쇄기에 상반신을 쳐박힌 채 노래를 이어간 부분. 가가는 공연에서 항상 라이브를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노래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때도 라이브를 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는 천재 아니면 외계인일 것이다.

‘일렉트릭 채플(Electric Chapel)’을 부를 때는 무대 곳곳에 붉은 십자가를 장식해 놓기도 했다. 생고기 드레스 또한 다시 선보였는데, 등장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정육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를 갈고기에 죽 걸어놓은 행거가 무대에 등장했다. 생고기 드레스를 입은 가가는 거기 걸린 고기 중 한 덩이였다.

이번 생고기 드레스는 가가가 2010년 미국 MTV 시상식에서 입고 나타난 것보다 인조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 당시 의상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자 백댄서들은 조금 더 생고기 느낌이 강한 속옷을 입고 가가를 뒷받침했다.


이밖에 ‘파파라치(Paparazzi)’를 부르면서 3D 홀로그램을 총으로 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알레한드로(alejandro)’의 마지막 부분에선 여러 명의 남자 백댄서와 소파에 누워 스킨십을 주고 받기도 했다. 남성 백댄서끼리의 스킨십은 분명 동성애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일 뿐.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우려했던 대로 크게 엽기적이거나, 성애 묘사가 강한 장면은 없었다.

◇‘가가 코리아~’

이번 공연엔 외신 기자도 상당히 몰렸다. 내년 3월까지 약 110회에 걸쳐 이어질 가가의 월드투어 ‘더 본 디스 웨이 볼 글로벌 투어(The Born This Way Ball Global Tour)’의 첫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가가는 공연을 앞두고 딱 일주일 전 한국을 찾았다. 그만큼 탄탄히 준비할 생각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여러 차례 한국을 언급하며 관객과 소통하려 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너무 멘트 없이 노래에만 치중했다"는 볼멘 소리도 나왔을 것이다.

‘배드 로맨스(Bad Romance)’를 부를 땐, 가가와 객석이 하나가 됐다. 그가 후렴구인 ‘가가 울랄라’를 ‘가가 코리아’로 바꿔 부르자 객석이 이를 따라 부르면서 잠실 주 경기장이 한 목소리로 넘실댔다. ‘헤비 메탈 러버(Heavy Metal Lover)’에서는 뒤에 태극기가 꽂힌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왔고, 무대가 끝난 뒤 오토바이 위에 올라 서 “코!리!아”를 외치기도 했다. 그의 애정에 한국의 5만 리틀 몬스터(Little Monster)들은 열광했다. 이들은 가가를 ‘마더 몬스터(Mother Monster)’라 부르며 추앙하고, 가가는 팬들을 ‘리틀 몬스터’라 부른다.

가가는 게스트 없이 거의 2시간을 혼자 노래하며, 춤추며 무대를 꽉 채웠다. 건반을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여느 콘서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 마시는 모습조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따로 공연을 관람한 지인들과 나눈 얘기 중 하나는 “어쩜 저렇게 옷을 빨리 갈아입느냐”였다. 그는 한 의상을 입고 두 곡 이상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래 사이 간격이 거의 없이 새로운 옷, 헤어스타일로 나타났다. ‘가가는 혹시 정말 외계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연장이 너무 넓어 무대를 잘 볼 수 없는 점은 아쉬웠다. 기자의 자리는 전광판으로 겨우 얼굴 식별이 가능한 거리의 좌측 지정석이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4000원을 주고 국내산 망원경을 샀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전광판과 비교적 가까운 이 자리도 이 정도인데 무대와 마주보고 있는, 가장 먼 쪽에 앉은 관객들은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탠딩석에 앉았다면 좌석보다 훨씬 흥겨운 공연을 즐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날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 앞에서 공연을 반대하는 수십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마이크 장비의 문제로 잠깐 잠깐 노래가 끊기긴 했지만, 가가 잘못으로 노래가 멈춘 적은 없었다. 게스트도 없이, 쉬지 않고 두 시간 남짓을 혼자 채웠다. 퍼포먼스들은 노래와 어울려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쳐졌다. 반면 일렉트로닉 팝댄스곡 위주의 노래는 많은 관객이 흥겹게 따라 불렀다.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퍼포먼스를 아는 행위예술가’란 결론을 내리게 된 건 그래서다.

송지혜 기자

송지혜 기자 enjoy@joongang.co.kr
▶송지혜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henjoy/
[ⓒ 중앙일보 & Jcube Interactive In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