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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야간통행증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문 기자용, 심야 열차 승객용, 지방‘향토방범단원’용 야간통행증. |
1970년대 야간통행증을 소지하고 취재했던 어느 언론인은 "이놈만 갖고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다. 경찰관들도 이 증서 가진 사람들은 눈치를 봤다"고 회고했다. 광복 직후 경찰은 야간통행증 발급 대상을 '공무원, 의사, 신문기자, 그리고 신분이 확실한 자로서 야간 통행을 부득이 필요로 하는 자'로 정했다. 전국에 2만3119명이었다(조선일보 1949년 12월 11일자). 박정희 정권 시절 이 증명서는 장·차관과 주요 공공기관 간부들에게 우선 발급됐지만 나중엔 김장용 배추 운반 트럭 운전사나 영세 상인도 갖게 됐다. 가수 이장희 윤형주 등 심야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DJ들도 받았다. 통금 시간에 도착한 기차 승객들에게는 임시 통행증을 나눠줬다. 승객 팔뚝에다 고무도장을 쾅 찍기도 했다. 이 임시 통행증이 가끔 말썽을 빚었다. 1971년에는 자정 넘긴 취객들과 술집 접대부들이 열차 승객용 야간통행증을 받아 집에 가려다 적발됐다. 파출소 '자문위원'이었던 술집 주인이 경찰에 힘을 써서 자기 가게 손님과 종업원들 편의를 봐주려던 것이었다(경향신문 1971년 9월 14일자). 어느 10대들은 일부러 통금 시간에 도착하는 열차를 이용한 뒤 통행증을 발급받아 돌아다니면서 도둑질을 일삼다 구속됐다(동아일보 1977년 8월 26일자). 과학기술에 관심 크던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반영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간부에게도 '특별통행증'이 나왔다. 과학자들 사기도 올라갔지만, 통행증 믿고 밤새워 술 마시던 여러 '주당(酒黨) 과학자'들의 일화도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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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추억, 야간통행증 |
[김명환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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