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레이더P] 333조 줄이려고 1602조 더 쓰자는 공무원연금 개혁

매일경제 김선걸,신헌철,이상덕,박윤수,김명환
원문보기

[레이더P] 333조 줄이려고 1602조 더 쓰자는 공무원연금 개혁

서울흐림 / 7.0 °
여야 지도부가 지난 2일 125일간의 진통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최종 합의했다. 국회는 오는 6일 본회의를 열고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한다.

여야는 "처음으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핵심은 공무원 급여에서 보험료로 떼는 비중인 기여율은 7%에서 9%로 올리고, 수령액의 핵심 잣대인 지급률은 현 1.9%에서 1.7%까지 낮추는 것이다. 다만 기여율은 5년간 단계적 인상, 지급률은 20년간 단계적으로 인하를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소득재분배 기능을 일부 도입해 하위직 공무원은 덜 삭감하고 고위직 공무원 많이 삭감하도록 했다.

하지만 애초 목표였던 더이상 국민 부담을 늘리지 않은 ‘근본적인‘ 개혁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비판이 나온다. 공무원연금 전문가들은 당초 정부와 여당이 주장했던 구조개혁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낮게 준다. 특히 MB정부 개혁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많다. 2009년 이명박정부 당시 개혁은 은퇴 직전 3년도 평균 소득만 고려했던 것을 재직기간 평균 소득으로 변경했고, 보험료율(11%→14%)은 3%포인트 올리고, 지급률(2.1%→1.9%)은 0.2%포인트 낮춘 바 있다.

게다가 여야가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추가 설치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방안을 9월 입법화하기로 발표하면서 새로운 불씨를 남겼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렛대로 삼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자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수용한 결과다.

◆ 무늬만 개혁 비판 쏟아져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놓고 '첫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개혁'이라는 평가와 '무늬만 개혁'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9년 MB정부는 요율도 조정했지만, 급여 계산 기간을 직전 3년도 소득에서 평생소득으로 변경한 큰일을 했다"며 "이번 개혁에도 요율은 조정했지만 정년 65세 연장, 인상액 동결 등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초 새누리당이 제시한 신규 공무원에 대한 국민연금 수준 지급으로의 개혁이 이뤄져야 했다"며 "당초 발표한 안이 제대로 된 수지 균형안이었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개혁은 기여율과 지급률을 소폭 조정하는 데 그쳤다"며 "당연히 단기 재정절감 효과는 반짝 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가정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며 "가령 수령액은 삭감했지만 향후 인사 정책을 바꾸면서 급여를 올린다면 결국 지원금이 연금에서 월급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이번 개혁이 신구 공무원간 갈등이라는 새 불씨를 남겼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합의안은 지급률을 현행 1.9%에서 1.7%로 낮췄는데 20년이라는 조정기간을 뒀기 때문에 연차 높은 공무원 중심으로 혜택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기여율과 지급률을 한 번에 삭감할 경우 약 30조원 안팎의 재정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당초 새누리당안인) 신·구 공무원 분리를 저지했다고 평가했지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입사 5년차 한 사무관은 "협상 당사자들이 포함 된 연차 높은 공무원들만 혜택을 본 것 아니냐"며 "젊은 공무원 상당수는 차라리 또 깎일지 모르는 공무원연금제도를 없애고 민간 수준 급여와 퇴직수당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번 개혁은 20년에 걸쳐 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2009년 개혁 당시에도 10년 이상 가입자들은 제대로 안 깎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개혁 고통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협상 당사자자인 여야와 정부는 사회적 대타협이란 점을 강조한다.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합의안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다 만족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또 고민이 시작된다"고 답했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완벽한 것을 추구하다 (합의를)못 하느니, 차선책을 택해 재정부담을 줄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비슷한 의견이다. 서영교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재정 절감을 위해 공무원들이 양보했다"고 평했다. 인사혁신처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상호 양보와 고통 분담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낸 최초의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협상카드로 사용된 ‘국민연금' 강화

이번 합의에 등장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의 월평균 명목소득과 비교해 65세 이후 수령하는 연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결국 보험요율을 올리거나 국민의 세금을 인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청와대측은 당장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실무기구가 결정한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공무원연금 개혁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여당 내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 내심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을 지켜본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국민연금 관련 내용이 2일 마지막 협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라, 특위 여야 간사 간에 간간이 논의돼 왔다"며 "협상 막판에 공무원연금 개혁안 마련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로 염두에 두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늦추겠다는 명분 하에 1998년과 2007년 두차례 개혁을 단행했다. 국민의 정부 때인 1998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췄고, 참여정부는 2007년 여론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60%에서 40%로 더 낮추기로 했다.

이로 인해 2008년 소득대체율이 60%에서 50%로 확 낮아졌고, 2009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더 줄어 2028년 40%까지 낮아질 예정이었다. 올해 소득대체율은 46.5%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이 여당이던 참여정부때는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해야 한다며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는 개혁을 추진하더니 지금은 정반대로 국민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자는 논리만 앞세우고 있는 셈이다.

만약 소득대체율을 다시 50%로 환원하려면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앞당기는 수 밖엔 없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방안이다. 정치권이 실현 불가능한 '허상'에 합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깊이있는 고민과 사회적인 논의도 없이 정치권에서 '소득대체율 50% 인상'이 툭 튀어나왔다. 얼마나 졸속 결정인지는 여러가지 숫자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이 50%로 현재보다 10%포인트 높아질 경우 올해부터 2065년까지 663조 6090억원, 2083년까지 1668조 8230억원이 연금급여로 더 지급될 것으로 추정했다.

보험료율을 조정한다면 현행 9%의 2배인 18% 수준으로 높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직장 가입자는 본인과 회사가 절반씩, 지역 가입자는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만약 보험료율을 높일 경우 가입자 반발뿐 아니라 기업 부담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가처분소득 감소로 인해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경기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인사혁신처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2085년까지 향후 70년간 333조원의 재정 절감 효과를 거두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일 경우 2083년까지 68년간 1669조원의 재정이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합의대로 공무원연금 재정절감 분 333조원의 20%인 67조원을 국민연금에 투입하더라도 50%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려면 1602조원이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한쪽에선 333조원을 줄이고 다른 한쪽에선 1602조원 더 쓰는 셈이 됐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다시 높일 경우 기금 고갈 시점이 현재 추정되는 2060년보다 최소 4년 가량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데 추가로 들어가는 돈은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절감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靑 “이런 개혁하려고 그 고생했다” 비판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순방 이후 첫 공개행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에 대한 평가를 내놓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난제로 꼽히는 연금개혁을 여야가 합의한 점은 평가하면서도 당초 원안에 비해 후퇴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여야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을 결정한 데 대해 실망감과 함께 개혁 취지와 상반되는 것이란 반대 의견을 분명하게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내에선 "이런 개혁을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느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 협의 단계부터 당·청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일 당 지도부와 만나 "공적연금 강화에 지나친 약속을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막상 막판협상에 나서니 야당이 녹록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여당은 "50%로 인상한다"에서 "50%를 목표로 한다"고 문구 수정을 제안했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시간가량의 지지부진한 논의가 진행되자 여당 지도부는 당초 합의안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합의안 마련 시한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당·청은 반발하고 나섰다. 청와대 측은 "분명한 월권"이라고 여당을 타박했고 문 장관은 "이해 당사자 없이 (국민연금의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을) 정책적으로 못박고 나가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항의했다.

여당 지도부도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합의안에 만족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만족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또 고민이 시작된다"고 답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만족하는 합의가 됐겠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코앞에 닥친 숙제는 풀었으나 또 다른 과제를 떠안은 셈이기 때문이다.

◆ 이제 국인·사학연금 차례…반발 거세 지금껏 보류

여야가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담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오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최종 합의하면서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 개혁이 추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공무원연금과 함께 국가 보전 의무를 강제규정으로 두고 있는 군인연금과 이를 임의규정으로 두고 있는 사학연금은 연금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군인연금은 도입 10년 만인 1973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인연금 국고보전금은 2013년 1조3700억원에서 2030년 2조7814억원을 넘어 2050년 13조원, 2080년 32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재정부도 2014회계연도 국가결산을 통해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119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연금충당부채란 연금 수급자와 재직자에게 장기에 걸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추정한 뒤, 현재가치로 환산해서 재무제표상 부채로 인식한 값이다. 모두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사립학교 교직원이 수령하는 사학연금은 아직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재정적자가 염려된다. 사학연금공단은 2023년부터 총지출액이 총수입액을 웃돌게 되며 2033년께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학연금은 연금액을 계산할 때 공무원연금 산정방식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사학연금도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군인·사학연금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때문에 개혁을 보류한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군인·사학연금을 연내 개혁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되돌렸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이 마무리된 만큼 사학·군인연금 개혁도 속도를 낼 것이 유력하다.

[김선걸 기자 / 신헌철 기자 / 이상덕 기자 / 박윤수 기자 / 김명환 기자]
[정치뉴스의 모든 것 레이더P 바로가기]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