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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천로역정…"난 철새 아닌 불새"

머니투데이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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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천로역정…"난 철새 아닌 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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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경선불복과 잦은 당적변경 사실을 두고 그를 비웃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고용보험을 만든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정치인생은 의미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최근 저서인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을 이렇게 평했다.

이 의원은 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의 첫 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돼, 근로자가 갑자기 직장을 잃었을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고용보험제를 도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엔 일자리를 잃은 114만7000명의 실업자가 3조6236억원 규모의 구직급여를 받았다. 유시민의 의미부여대로 고용보험제는 실직자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정치인 이인제'에게서 '실업자의 수호자'보다는 '철새'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게 사실이다.


6선의 이 의원은 13개의 당적을 가졌다. 무소속을 포함하면 14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국민신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민주당→통합민주당→무소속→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새누리당'이다.

가장 최근의 움직임은 2012년이었다. 이 의원은 선진통일당 대표로서 새누리당과 합당을 선언하며 "정치를 처음 시작한 어머니의 당으로 합류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자가 모국을 떠나서 열 몇 나라를 돌아다니다 14년 만에 돌아왔다는데, 제가 15년 만에 돌아왔다"고 감회를 밝혔다.


여당내에서 사실상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고 계파를 이끌고 있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그는 균형감각을 갖춘 '원로'로서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1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이른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법 제정안'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주목하기도 했다. 그는 "손질을 잘 해서 처리돼야 하는데 연좌의 성격도 있고 너무 광범위해서 실효성이 어떻게 될지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율사출신인 그는 "법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법 만능주의는 언제나 결과가 썩 좋지 못하다"고 경계했다.

이의원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4위를 기록하며 최고위원 자리를 지켰다. '친박' 홍문종 의원이 이 의원에 밀려 탈락한 것은 최대 이변으로 여겨졌다.


노동부 장관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이인제 의원/사진=MBC 뉴스화면 캡처

노동부 장관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이인제 의원/사진=MBC 뉴스화면 캡처


[키워드 - YS]

자타공인 '충청의 맹주'지만, 정치 새내기였던 88년엔 경기도 안양을 지역구에서 13대 총선에 나섰다. "고향인 논산을 염두에 두었으나, 미리 기반을 닦고 있는 유력인사가 있었다. 할 수 없이 수도권을 탐색하기 시작했는데 서울은 대만원이어서 비집고 들어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낯선 경기도 안양에 정치의 둥지를 틀었다."

국회 입성 전엔 YS 캠프에 있었다. 이 의원은 "아버지의 열망 때문에" 판사 2년, "아내의 권유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째인 87년 6월 항쟁을 겪었다. 그해 9월 경복고 선배 김덕룡이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아 YS 진영에 합류했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는 상도동계의 핵심 조직이었다.

이 의원은 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명성이나 경험이 없는 초보자로서 (대통령 당선에)특별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YS는 이 의원을 특별히 아꼈다. 급기야 95년 한 외신 인터뷰에서, 경기도지사였던 이 의원을 "깜짝 놀랄만한 대통령 후보"라며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렸다.

[키워드 - 1997년]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는 1997년 대선에서 정말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하고 대선 후보로 나왔다. 대선에선 김대중-이회창에 이어 3위를 했지만, 보수 표 분열로 여야 정권이 바뀌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보수진영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

"출마 기자회견을 하러 서울로 떠날 채비를 하는데 도지사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만류하는 전화였다. 결심을 돌이킬 수 없다고 말씀드린 후 곧바로 서울을 향했다. 이렇게 해 나는 이 순간까지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됐다."

이 의원은 97년 대선에서 자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유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유세 현장에선 "박 대통령과 키가 1㎜도 다르지 않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말해 영남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의원은 최종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는데, 그가 얻은 500만표 중 260만표가 영남에서 나왔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키워드 - 노풍]

이 의원은 두 번째 도전인 2002년 대선에서도 패한 뒤 이후 검찰조사까지 받았다.

97년 대선 패배 이후 갈 곳 없어진 그는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가 됐고, 실제로 '이인제 대세론'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한다. '부동의 1위 이인제 후보가 노풍에 밀렸다'는 제목의 기사가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모두가 역사의 섭리인 것을 어찌 할 것인가. 나는 어느 사이 홀로 광야에 서 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4년엔 대선자금 관련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고 2002년 민주당을 탈당한 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대가로 2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대검 중수부(안대희 검사장)는 이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했지만, 대법원은 2006년 무죄를 확정했다.

[키워드 - 불사조]



YS는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칠푼이'로 깎아내렸지만, 비슷한 시기 자신을 찾아온 이 의원에겐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인제는 불사조야!"

이 의원은 끈질기게 정치 생명을 이어오며 불사조같이 살아남았다. 선거 유세현장에선 자신을 '철새'로 몰아붙이는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에 대응해 "난 철새가 아닌 불새"라고 외치기도 했다. 최근 기자와 만나선 "과분한 별명"이라며 "시련과 역경을 딛고, 유권자들이 진심을 알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당적 변경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정치적 이상을 강력하게 추구하다보니 고립됐다"면서도 "그러나 추구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외롭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법안 - '북한인권']

이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한 법안은 7건이다. 눈에 띄는 법안은 2012년 8월20일 대표발의한 '북한인권법' 제정안이다.

제정안은 '북한인권개선과 대북인도적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통일부장관이 3년마다 북한인권기본계획을 수립토록 했다. 외교통상부엔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제정안은 현재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그 외 대표 발의한 법안은 △약사법 개정안 △인삼산업법 개정안 △바둑 진흥법안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 개정안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 개정안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다. 이 의원은 지난 3일엔 △고려인동포 관련 법 개정안을 새로 발의했다.

[그의 사람들→상도동계]

이 의원은 YS를 "정치적 아버지"로 부른다. 김무성·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그와 함께 과거의 '상도동계'로 분류된다. 김무성 당대표에 대해선 "상도동에서 같이 시작했다"며 "다른 길을 걸은 적은 있지만 인간적으로 한 번도 부딪힌 일이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왼쪽)·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김무성(왼쪽)·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이 의원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대통령 선거에 나설 뜻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선 같은 질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이 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연설문은 윈스턴 처칠이 1941년 영국 해로스쿨 졸업식에서 말한 '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in)'이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절대, 절대, 절대-명예로움과 분별의 확신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단하건 하찮건 작건 크건-절대 포기하지 마라(Never give in. Never give in. Never, never, never-in nothing, great or small, large or petty-never give in, except to convictions of honor and good sense)."

[프로필]

△충남 논산(66) △서울 경복고-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21회 △대전지법 판사 △13대·14대·16대·17대·18대·19대 국회의원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1997년·2002년·2007년 대선후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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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기자 hyd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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