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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햄의 만남… 한식과 양식 사이 새 전통을 만들다

조선일보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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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햄의 만남… 한식과 양식 사이 새 전통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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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계보 (9) 부대찌개
부대찌개의 고향 의정부식 부대찌개. 다른 지역 부대찌개보다 국물이 덜 진하고 더 시원하다. 국자를 젓는 건 부대찌개를 처음 만들었다는 ‘오뎅식당’ 허기숙씨의 손이다.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부대찌개의 고향 의정부식 부대찌개. 다른 지역 부대찌개보다 국물이 덜 진하고 더 시원하다. 국자를 젓는 건 부대찌개를 처음 만들었다는 ‘오뎅식당’ 허기숙씨의 손이다.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부대 고기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의 변종이다. 전쟁 직후부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물 쓰레기에서 건진 고깃덩어리 같은 단백질을 국에 넣고 끓인 꿀꿀이죽은 UN탕, 양탕(洋湯)이라 불렸다. 하지만 꿀꿀이죽은 부대찌개의 조상은 아니다. 꿀꿀이죽은 고아나 실향민, 일용직 노동자들처럼 살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 음식이었다.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 스팸 같은 고기를 한국식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다. 주로 유효기간이 지난 통조림 가공육을 폐기하지 않고 유통시킨 것들이 사용됐다.

부대찌개는 1960년대 초반에 의정부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부대찌개와 비슷한 음식은 1960년대 초에도 있었다. "발육기에 있는 자녀들에게 손쉽게, 그리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공급시켜야 할 의무가 주부들에겐 있다. 햄과 소시지를 우리 식탁에 많이 이용했으면 좋겠다. 햄을 잘게 썰어서 넣고 김치찌개를 해도 좋다. 햄과 소시지를 썰어서 프라이팬 위에 놓고 한 번 볶아 내어서 도시락 반찬을 해도 좋다. 햄과 소시지에는 단백질 지방 칼슘 철분 등이 포함되어 있어 칼로리가 높다."(1962년 10월 30일자·동아일보)

미군부대 주변에서 번창하던 부대찌개가 대중화한 것은 1980년대 중반 국내에 본격적으로 고급 소시지와 스팸, 햄 등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전에 밀가루나 전분이 많이 들어간 국내산 햄과 소시지는 국에 넣으면 텁텁한 맛이 나서 업주들이 꺼렸다. 최대의 부대찌개 프랜차이즈인 '놀부부대찌개'는 1992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라면 사리를 부대찌개에 넣어 먹는 문화가 본격화되자 1995년에 부대찌개 전용 라면 사리가 만들어진다. 부대찌개는 김치와 찌개 같은 전통적인 한국 음식에 햄과 소시지 같은 미군의 전투식량과 라면 사리 같은 식재료가 더해져 탄생한 복합적인 대중 음식이다.

[의정부]

자타가 공인하는 부대찌개의 발상지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넘쳐나던 의정부 제일시장 옆에서 오뎅(어묵) 장사를 하던 허기숙 할머니에게 미군부대를 출입하던 사람들이 들고 나온 부대 고기 요리를 부탁하면서 부대찌개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햄이나 소시지를 볶아서 팔다가 이내 찌개로 만들면서 부대찌개가 탄생한다.

1968년 지금의 자리에 ‘오뎅식당’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불법 유통되던 부대고기 때문에 오뎅식당이란 어정쩡한 이름을 달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뎅식당의 성공에 힘입어 주변에 부대찌개 식당들이 자리 잡으면서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이 형성된다. 의정부 부대찌개는 치즈나 베이크드 빈스(강낭콩을 소스와 함께 끓인 것) 같은 부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소시지와 스팸에 파·마늘·김치·두부와 다시마 육수가 들어간다. 개운한 김치찌개 맛을 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오뎅식당 (031)842-0423

[송탄]

1970년 송탄 오산캠프 주변의 ‘최네집’에서 부대찌개가 처음 등장한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창업주인 ‘최’씨는 미군부대에서 부대 고기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다가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식당을 시작했다. 송탄의 부대찌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한 맛을 낸다. 햄과 소시지도 타 지역보다 짜고, 간도 세고 맵다. 햄과 소시지에 민찌(잔육 다진 것)와 대파·양파·생마늘에 송탄식 부대찌개의 가장 큰 특징인 슬라이스 치즈를 넣는다.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오는 밥과 함께 먹어야 제맛을 낸다. 최네집 (031) 663-8922 김네집 (031)666-3648


김네집 부대찌개.

김네집 부대찌개.


[서울]

미군부대가 들어선 이태원과 용산에 서울식 부대고기 문화가 탄생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이태원의 ‘바다식당’은 부대찌개라는 이름 대신 ‘존슨탕’이란 말을 사용한다. 독일에서 살다 온 창업주는 부대찌개에 햄과 치즈를 넣어 달고 부드러운 서양식 스튜 같은 찌개를 만들어 낸다. 칠면조 소시지를 파는 것도 다른 부대찌개 집과 다르다.

남영동의 ‘은성집’은 사골 육수의 부대찌개와 더불어 부대 고기를 이용한 철판 스테이크를 판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등심은 2000년대 초반까지 유통됐다. 미국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등급의 등심을 사용해 인기가 많았다. 서울의 부대찌개는 찌개와 함께 술을 먹을 수 있는 안주 요리가 발달한 것이 타 지역과 가장 다르다. 바다식당 (02)795-1317 은성집 (02)797-2855

[문산]

군인들의 도시인 경기도 파주 문산에 부대찌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1년 ‘원조 삼거리 식당’에서부터다. 미군부대보다는 한국 군부대가 많은 탓에 다른 지역과 달리 주로 주변의 한국 군인들이 이용하면서 성장한 것도 남다르다.


소뼈를 기본으로 한 육수에 미군 부대찌개용으로 널리 쓰이는 ‘콘킹’ 소시지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스팸은 밀가루나 전분이 많이 들어간 제품을 사용한다. 쑥갓과 미나리 같은 채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동두천과 비슷하다. 원조 삼거리 부대찌개 전문 (031) 952-3431

[동두천]

경기도 동두천에 부대 고기 문화가 등장한 것은 1970년 초반이다. 부대 볶음을 파는 것이 동두천 부대찌개 집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대부분 양파와 대파를 크게 썰어 넣고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햄과 소시지, 베이컨, 다진 고기를 넣는다. 집마다 우동 사리 혹은 당면 사리를 넣는 것이 다르다.

부대찌개는 쑥갓을 사용하는 것은 문산과 비슷하지만 대파 등이 들어가는 것이 조금 다르다. 당면을 넣는 것도 동두천만의 특징이다. 부대찌개 실비집 (031)865-8079


[인천]

1970년대 말 ‘오소래’란 식당에서 인천 최초의 부대찌개 문화가 시작된다. 5년 뒤에 오소래 자리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영업하는 ‘양지부대고기’와 지금은 사라진 ‘서라벌’이 유명했다. 양지부대고기는 남대문 시장과 인연이 깊은 실향민 출신의 창업주가 남대문시장에서 미군부대 고기를 사오고 직접 레시피를 만든 것이다. 인천의 부대찌개는 사골 국물에 대파와 팽이버섯, 콩나물이 듬뿍 들어가고 다진 마늘과 마늘 가루로 맛을 낸다. 고기는 민찌가 아닌 일반 쇠고기를 넣는다. 채소가 많이 들어가 시원한 국물 맛이 많이 난다. 양지부대고기 (032)772-3678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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