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작가 김원일 자전 소설 ‘나의 시대, 나의 유년’ 연재 시작

경향신문 한윤정 기자
원문보기

작가 김원일 자전 소설 ‘나의 시대, 나의 유년’ 연재 시작

서울맑음 / -3.9 °
빨갱이 아버지의 이야기
작가 김원일씨(70)가 자전 장편소설 ‘나의 시대, 나의 유년’을 계간 ‘21세기 문학’ 봄호부터 연재하기 시작했다. 2007년 나온 장편 <전갈> 이후 5년 만으로, <노을> <불의 제전> <마당 깊은 집> 등 김원일 문학의 원형을 이루는 분단 시대와 아버지의 삶을 정면으로 그리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 빨갱이, 빨치산의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했던 아버지의 삶이 원형으로 복원된다.

“내가 태어날 무렵부터 6·25 전쟁 직후 아버지가 월북하는 시기까지 10여년을 다룰 계획입니다. 우리 집안의 내력일 뿐 아니라 해방공간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당시 정치·사회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소설은 작가가 어머니 배 속에 있던 1941년에서 시작해 부모의 삶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 자리잡은 친가와 울산 출신 외가의 족보를 비롯해 부모가 중매 결혼하게 된 사연, 두 사람의 성격차와 불화, 아버지의 도쿄 유학과 좌익활동 등을 다룬다. 작가의 ‘아버지는 당시로서는 드문 핵가족의 외동아들로 고등교육을 받으며 자유분방하게 성장했고, 어머니는 적빈한 선비 집안에서 재래식 훈육 아래 자란 막내딸이어서, 서로가 성장한 가정환경부터가 달랐다’고 한다.

작가 김원일의 기억력은 자신의 유년기를 더듬어 아버지의 시대를 복원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사진작가 강운구 제공
일제시대 소방서장의 아들이던 아버지는 마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진영금융조합 서기로 취직한다. 그런데 ‘시민형’의 건실한 생활인이던 어머니와 달리, ‘예술가형’인 아버지는 10대 후반에 벌써 카페 여급과 동거하는가 하면 독서에 탐닉하는 등 소읍의 안정된 생활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그런 그와 결혼하면서 어머니의 수난이 시작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무척 다양한 사람이었어요. 순진하기도 하고 반푼이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요. 혁명가를 자처했습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내 아버지를 통해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결혼 이후 도쿄 주오(中央)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1930년대 후반 고향에 야학을 여는데, 이때부터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남로당 경남도당 부위원장을 지냈고, 6·25 직후 인공 치하의 서울시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으로 일하다가 서울 마지막 철수팀으로 월북했다. 유격대 간부로 남하해 1952년 3월까지 태백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제네바 남북 포로교환협상 때 북한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남로당 숙청으로 몰락, 복권을 거듭하다가 1976년 강원도 요양소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작가는 1998년이 돼서야 아버지의 소식을 접한다.


이번 작품은 대구에서 보낸 소년기를 그린 성장소설 <마당 깊은 집>의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진영에서 태어난 작가는 1949년 서울로 갔다가 9·28 수복 이후 다시 진영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가면서 <마당 깊은 집>이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 아버지만큼 중요한 인물이 어머니다. 어머니는 남편으로 인해 숱한 고통을 겪었다. 여자로서 사랑해주지 않았고 좌익활동으로 가족 전체를 신산한 삶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에게 많은 원망을 가졌다. ‘사상에 미쳐 가정을 내팽개친 서방과 어찌 전생의 인연이 맺어졌는지…, 한평생을 나만큼 한 많게 살아온 여편네가 이 땅에 몇이나 될꼬’라고 탄식한다. 아버지 때문에 무수한 고문도 당했던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런 한은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에게 평생 가장 좋았던 기억은 마산공립상업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진영읍에서 교복을 입고 기차로 통학하던 시절이다. 할머니는 아들이 일본유학 중 알게 된 신여성과 동거하면서 이혼을 요구하자 아들편을 들어 며느리와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소설 <미망>에도 그려진다.


작가는 두 아이를 잃고 딸 하나를 둔 어머니의 시름과 탄식 속에서, 남편이 이혼을 종용하던 시기에 배태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평소의 소심 불안증, 작은 일에도 찢어질 듯 아파 오는 가슴 두근거림, 대인기피증, 자괴감에 따른 만성 우울증 등이 내 디엔에이에 새겨졌다’고 고백한다. 만년의 작가는 자신과 일가의 삶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본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국제정세와 함께 진영이란 소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가족사와 촘촘하게 교차한다.

“별다른 소설적 장치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됩니다. 그런데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초등학교 이전 이야기가 500~600장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소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이 작품은 매회 원고지 250~300장 분량으로 5회를 이어가 1400~1500장으로 완성된다. 2009년부터 소설전집 간행작업을 하면서 젊은 시절 작품을 다시 손보고 있는 작가는 “빨리 늙은이가 되고 싶다던 젊었을 때의 바람처럼 서민들 속에 숨어서 한가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