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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영화 '비긴 어게인'이 '일베'에 주는 메시지

머니투데이 이원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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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영화 '비긴 어게인'이 '일베'에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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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좋아하게 만들어야지. 일단 쉬운 여자 옷차림으론 안 돼. 상상할 여지를 안 남기거든."

'중2병'으로 괴로운 학부모가 있다면 영화 '비긴 어게인'을 추천한다. 중학생 바이올렛(헤일리 스테인펠드 분)은 상·하의 동반 실종의상으로 관능미를 뽐내는 데 여념 없다. 여지 없이 '꼰대' 아버지 댄(마크 러팔로 분)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별거 중인 아내와도 책임 공방을 벌이지만 딸의 일탈은 멈추지 않는다. 이 때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나타나 위와 같이 말한다. 음악하는 시크한 언니의 치명적 충고. 10대 소녀는 숙녀가 됐다.

철없는 어른들의 일탈도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폭식투쟁'이나 서북청년단 재건 등이 그렇다. 자식을 잃고 단식 투쟁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고 노란 리본을 자르겠다며 가위를 들었다. 이에 다소 우스꽝스런 정치적 '분석'이 뒤따랐다. 일베는 무능한 진보 세력에 대한 극우의 결집이며 오랜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청년들의 반란이자 일본 재특회의 재림이거나 독일 네오나치의 한국판이란다.

이때 한 심리전문가의 말이 관심을 모은다. 황미구 전문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원장은 "돈, 권력, 웃어른 등 사회 기득권에 대한 조크가 허용되지 않는 문화에서 건강하지 못한 조롱 문화가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베는 억압된 권위주의의 돌연변이며 이같은 조롱에서 벗어나려면 하위 문화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나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비극에 대한 '자위적 조롱에서 쾌락을 얻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정치색을 이유로 일베를 비판하는 일은 애초에 번지수가 틀렸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을 먹는 행동이 국가주의, 반여성주의 등 가치를 공유하고 특정 정치집단을 선호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난 8일 서북청년단 재건을 자처했던 노모씨(51)는 서울광장 분향소에 엎드려 사죄하며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 몰랐다"며 "선배가 크게 혼을 내 그제서야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일베의 그간 철없는 행동들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굳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반항을 위해 담배 피는 청소년에게 하는 잔소리는 반항할 거리를 하나 더 줄 뿐이다. 스스로 철없음을 깨닫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들에게 자리 한쪽을 내어준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베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돌아볼 때다.

이원광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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