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자행 크메르루주 20년간 게릴라戰 벌이고, 훈센 총리가 처벌 반대… 法 심판 늦어져]
캄보디아, 사형제 폐지돼 최고형인 종신형 선고
전범 2명, 끝까지 "잘못 없었다"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 잡힌 뒤 심장마비 사망
캄보디아, 사형제 폐지돼 최고형인 종신형 선고
전범 2명, 끝까지 "잘못 없었다"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 잡힌 뒤 심장마비 사망
한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특별재판소(ECCC)에 7일 나타났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자국민 200만명을 학살한 급진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의 2인자 누온 체아(88)였다. 그 옆에는 역시 크메르루주 최고 지도부였던 키우 삼판(83) 전 부총리가 앉았다.
이날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구성한 ECCC 재판부는 이들에게 학살 가담 혐의를 인정,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했다. 크메르루주가 1979년 축출된 지 35년 만에 최고 지도부에 처음으로 법의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역사적 판결 소식에 법정 바깥에 모인 생존자와 유가족 수백명은 울음을 터트렸다. 크메르루주 학살에서 살아남은 요우크 창은 "젊은 세대가 이 재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BBC방송은 보도했다. 크메르루주는 1970년 후반 집권 기간 완벽한 공산주의 농업 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프놈펜 시민 200만명을 농촌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 탈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엘리트·관료는 물론 그 일가족을 모두 처형하거나 강제노동으로 내몰아 죽게 했다. 크메르루주의 대학살극은 '킬링 필드(Killing Field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4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날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구성한 ECCC 재판부는 이들에게 학살 가담 혐의를 인정,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했다. 크메르루주가 1979년 축출된 지 35년 만에 최고 지도부에 처음으로 법의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역사적 판결 소식에 법정 바깥에 모인 생존자와 유가족 수백명은 울음을 터트렸다. 크메르루주 학살에서 살아남은 요우크 창은 "젊은 세대가 이 재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BBC방송은 보도했다. 크메르루주는 1970년 후반 집권 기간 완벽한 공산주의 농업 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프놈펜 시민 200만명을 농촌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 탈진으로 목숨을 잃었다. 엘리트·관료는 물론 그 일가족을 모두 처형하거나 강제노동으로 내몰아 죽게 했다. 크메르루주의 대학살극은 '킬링 필드(Killing Field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4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7일 재판 내내 누온과 키우 두 전범(戰犯)은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키우는 최후 변론에서 "판사들은 진실은 외면한 채 나를 '괴물'로 규정하고 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크메르루주 전범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 크메르루주가 베트남군에 축출된 건 1979년이었다. 하지만 태국 접경지대 정글에 도피해 20년 가까이 게릴라전을 벌이는 바람에 이들을 재판정에 세우지 못했다. 1998년 크메르루주 최고 지도자 폴 포트가 체포된 직후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내전이 끝났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이들의 처벌에 여전히 소극적이었다. 과거 크메르루주에 몸담았던 훈센 총리는 국가 분열을 이유로 전범 처벌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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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범 재판에 나선 건 유엔이었다. 유엔은 캄보디아 정부를 압박, ECCC를 2006년 세웠다. 하지만 ECCC 직원 임금 체불, 재판관 사퇴 등으로 재판은 더디게 진행됐다. 2010년이 돼서야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재소자 1만4000명을 고문·기아·처형 등으로 숨지게 한 투올슬랭 교도소 소장이 징역 35년형을 처음 선고받았다. 이후 3년 만인 7일 키우, 누온에게도 유죄판결을 내리게 됐다.
[이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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