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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혜의 主人丈, 이 사람] 강사 모두 편입생 출신… 경험이 최고 스승이죠

조선일보 인천=김수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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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혜의 主人丈, 이 사람] 강사 모두 편입생 출신… 경험이 최고 스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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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입 영어과외 전문 황종찬씨]

늦은 영어공부로 고생하는 학생과 가난한 명문대 편입생 많은데서 착안
전국 8곳서 20명이 500명 가르쳐… 24세 창업, 시행착오 끝 매출 5억원
"헛돈 쓰지 말고 시장변화 주시해야"
학창 시절 그는 공부랑 담쌓고 놀았다. 강력범죄랑 본드 부는 것만 빼놓고, 노는 애들이 하는 건 이 사람도 다 해봤다.

그는 중학교 때 애틀랜타올림픽 유도 경기를 보고 유도를 시작했다. 용인대 유도학과가 목표였다. "근데 고3 첫 수능 모의고사에서 400점 만점에 70점이 나왔어요."

담임이 어이없어했다. '큰일났다' 싶어 불같이 공부했다. 그해 연말 수능에서 300점을 받았다. 본인이 제일 놀랐다. 내친김에 재수할 땐 더 열심히 해봤다. 새벽 6시에 입시학원에 가서 그다음 날 새벽 2시에 왔다. 365점까지 올랐다.

명문대는 못 갔다. 내신이 15등급 중 15등급이었다. 인천전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영가편입과외 주인장 황종찬(33) 대표가 "그때 크게 깨달았다"고 했다. "양자역학 전공해서 석학이 되려면 천재라야 해요. 수능이랑 대학 편입시험은 달라요. 아인슈타인 아니라도 노력하면 올라요."

"어른이 과외 하실 분!"

대학 편입시험은 어른들이 보는 시험이다. 황 대표는 대형 학원 일색이던 그 시장에 처음으로 과외 상품을 들고 나왔다. 2006년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150만원 들고 창업했다. 지금은 전국 8개 지점에서 교사 20명이 월평균 500명을 가르친다. 2013년 매출이 5억원이었다.

황종찬씨는 9년간 사업하면서 느낀 점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헛돈 쓰지 말 것, 시장 변화에 따라 수업 내용과 수익 배분 비율 등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다듬어 갈 것.” /오종찬 기자

황종찬씨는 9년간 사업하면서 느낀 점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헛돈 쓰지 말 것, 시장 변화에 따라 수업 내용과 수익 배분 비율 등 세부 사항을 끊임없이 다듬어 갈 것.” /오종찬 기자


창업할 때 '이 사업, 된다'고 판단한 근거가 두 가지였다.


첫째, 학생 수요가 넘쳤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일수록 영어 때문에 고생해요. 대형 강의에서 남들은 다 알아듣는데 혼자 못 따라가고 헤매거든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그룹과외를 받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둘째, 교사 공급이 충분했다. "기를 쓰고 공부해서 명문대에 편입한 분들이 아르바이트를 못 구해 애를 먹어요.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명문대 합격한 선생님을 찾지, 명문대 편입한 선생님을 찾진 않거든요. 편입 준비하는 학생들은 시각이 달라요. 자기랑 똑같은 과정을 거쳐 명문대에 합격한 선생님이 자기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주는 걸 좋아해요."

"인테리어에 돈 쓰지 마라"

창업 초기엔 양쪽을 연결해주는 업무만 했다. 지금은 강의실도 제공하고 학사 관리도 한다. 과외비는 대형학원 수강료와 비슷하거나 약간 싸다(주 6시간 기준 33만원). 과외 교사와 학원이 반씩 나눈다.


인테리어에 돈 쓰지 않는 게 철칙이다. 교통 좋은 곳 허름한 상가 건물을 빌려서 광나게 청소한 뒤 책상 놓고 '끝' 이다. 가벽을 세우거나 부수는 공사를 할 때, 황 대표도 목수들과 나란히 연장을 잡는다.

그도 한때 새로 지점 낼 때 수천만원 들여 인테리어를 한 적이 있다. "뭘 잘 몰랐죠." 그는 월세 35만원짜리 창문 없는 사무실(7㎡)에서 1인 기업으로 출발했다. 처음 석 달 동안 수익이 월 800만~1000만원 났다. 금방 부자 될 줄 알고 직원을 4명이나 뽑았다. 그 뒤 학생이 뚝 끊겼다. "알고 보니 편입 시험 일정에 따라 성수기(3~9월)와 비수기(11~2월) 격차가 거의 '폭포' 수준이었어요." 직원들 내보낼 때 '잔액 0원' 통장을 보여주며 사죄했다.

왜 돈 벌고 싶었나

군 복무 시절, 그는 틈틈이 노트에 창업 아이디어를 적었다. 총 300개쯤 된다. 그중 하나가 편입 과외다. 전문대 다니면서 편입 시험을 준비할 때 느낀 애로사항을 사업으로 연결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물으면 "사업하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무역회사를 했다.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강아지 7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부터 강아지가 하나 둘 사라졌다. "그러다 어머니가 개장수를 불러 마지막 강아지를 파는 장면을 봤어요. 아버지 사업이 망할 때죠."


무역회사를 닫은 뒤, 아버지는 화곡동 재래시장에 두 평짜리 수입 잡화점을 열었다. 온 식구가 가게 뒷방에서 잤다. 시장통은 소란했다. 집 안에선 아버지가 술 마시고 어머니와 다퉜다. 집 밖에선 야채가게 주인과 생선가게 주인이 육박전을 벌였다. '커서 돈 많이 벌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is와 am이 어떻게 다른가"

정작 대학 다닐 땐 경영서보다 철학·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 공강 시간마다 '시시포스의 신화' '아Q정전'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동해·남해로 무전여행도 갔다. 그는 "책 읽으면서 돈 벌고 싶은 '이유'가 달라졌다"고 했다. "10억원을 벌어서 생활을 해결하고 가족을 챙긴 다음, 읽고 싶은 책을 무진장 읽으면서 사는 것"이 꿈이 됐다. 책 읽는 순간 빼고 가장 뿌듯한 순간은 "진학 상담 하러 왔을 때 'is와 am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던 학생이 1년 뒤 '원하는 학교에 붙었다'며 펑펑 울 때"다.

[인천=김수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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