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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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들에 비하면 우리가 비교적 안녕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만이 등장한다. 책의 한 구절을 빌면 이들의 삶은 "불행의 집결지와도 같"(250쪽)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그렇지 않은 우리네 처지에 안도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라지만 작가가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이 가혹한 비참과 절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세상의 가장 지독한 비극만을 골라서 묶은 것만 같은 이 소설집은 자기연민의 임계치를 넘어 결국 우리 인간의 내재적 죄의식을 끄집어 올린다.
소설집에는 단편 10편이 실렸다. 멀게는 2007년, 가깝게는 지난해 겨울까지 쓴 단편들이다. 표제작은 아들을 원하는 아버지가 '유용진'이라는 이름을 지어뒀지만, 여자로 태어나고만 '유진'이 주인공이다.
딸이 태어났다는 실망감에 '유용진'에서 가운데 '용'자만 빼고 대충 '유진'이라 이름 붙여진 이 여자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가랑이 사이로 쑥 자라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유진.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그녀의 삶 앞에 한때 그녀가 좋아했던 '석문'이 나타난다.
'구체성이 불러오는 비루함에 대하여'에서는 도둑놈의 아들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멸시받아온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도둑놈의 새끼"라는 주홍글씨, 달동네 판자촌에서의 비루한 삶을 자식에게 안긴 것도 모자라 이제는 치매까지 걸린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에서는 지난밤 하숙집 옆방 사람에게 삼만 원을 빌려주지 않았는데 다음날 그이가 세탁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 채 발견된다.
나들이 갔던 한 가족의 승용차 전면 유리 위로 앞서 가던 트럭의 목재가 쏟아져 앞좌석의 부모는 즉사하고 그 파편이 목에 박힌 형은 목소리를 잃고 동생만 경상으로 화를 피한 이야기('나선의 방향') 등은 과연 그들에게 희망이 있는지 되묻는다.
이들의 삶은 왜 이토록 절망스럽기만 할까? 어떤 이들은 작가의 시선이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해볼 수 있다.
그러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뉴스가 날마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할 뿐이다.
"저기, 집이 한 채 불타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집이다. 아는 집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93쪽)
작가는 적당한 불행으로 타협하지 않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을 작품 속에서 불러 세운다. 우리는 이번에도 이들의 불행을 무심히 지나칠 수 있을까?
"안보윤 소설이 과도하게 느껴질 만큼 불행에 잠식된 이웃들로 가득한 것은 그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양태에 무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안녕을 위협하는 병리적 현상들에 특히 예민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사회의 평균 지수를 가늠케 하는 척도가 아니라 사회의 안녕과 존속을 최전선에서 담당하는 퓨즈를 알아보는 데 그는 거의 본능적이라 할 만한 촉수를 지니고 있다."(문학평론가 백지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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