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총격 사망, 거센 후폭풍
백인 남성 알렉스 프레티가 이민 단속 요원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 날인 25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우리 거리에서 살인자 ICE(이민세관단속국)를 몰아내자’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지난 7일에도 백인 여성이 이민 단속 요원 총격으로 숨졌다./AFP 연합뉴스 |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남성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37)가 불법 이민자 단속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의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7일 백인 여성 르네 굿(37)에 이어 한 달도 안 돼 이민 단속에 반발하던 주민이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미국 사회의 분열이 내전(civil war)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세관단속국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 연합뉴스 |
트럼프는 26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미니애폴리스에 보낸 연방 이민 단속 요원의 철수 및 사건 진상 조사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는 “그들은 일정 시점에서 떠날 것”이라며 “우리는 사건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결론을 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단속 요원의 대응 사격이 적절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사건 발생 직후 단속 요원의 정당 방위를 주장하며 적극 옹호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날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프레티의 사망이 ‘가슴 찢어지는 비극’이라며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미니애폴리스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평화 시위 물결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복면 요원들이 주요 도시 주민들을 무소불위로 위협하고 괴롭히려 고안한 듯한 전술을 사용하는 광경에 미국인들이 분노해왔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우리가 (미국 건국 후)250년 동안 지켜온 자유를 지금 포기한다면, 다시는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며 “미국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믿는 우리 모두가 떨쳐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이 나라가 국민의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도 성명에서 “사망자와 그의 가족, 미니애폴리스 그리고 미국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고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오랫동안 미국의 전직 국가 지도자들은 현안에 대한 발언을 가급적 삼가고 당파를 초월해 현직 대통령을 응원하며 국민의 대승적 화합을 호소해왔다. 이런 전례에서 벗어나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을 지지할 정도로 미국 사회 분열과 갈등이 봉합 불가 상황까지 치달았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는 미네소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건 다음 날인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강추위에도 연방 요원 철수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뉴욕과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미국 내 주요 도시에서 수백~수천 명이 몰려나왔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과 시위대 충돌이 이어지자 질서 유지 등을 위해 무장한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정확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1500여 명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니애폴리스가 미국 정부와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했고, 영국 가디언은 “미니애폴리스의 공포는 내전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강경 이민 단속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민주당·진보 진영을 넘어 트럼프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 톰 틸리스, 빌 캐시디 연방 상원의원 등은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며 단속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화당 소속 케빈 스팃 오클라호마 주지사도 “우리가 TV에서 보고 있는 미국인들의 죽음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나쁜 조언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이익단체 전미총기협회(NRA)까지 비판에 동참했다. NRA는 숨진 프레티가 합법적으로 총기 면허를 발급받은 사실을 부각하며 “누군가가 무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 집행기관이 총격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주장은 위험하고 잘못됐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보수 진영으로도 확산하고 있는 것은 현장에서 포착된 동영상 화면 등 확실한 물증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러 이민 단속 요원이 프레티를 바닥에 쓰러뜨린 뒤 5초 동안 최소 열 번 총을 발사하는 등 현장 장면이 ‘불가피한 방어적 사격’이었다는 당국의 해명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민주당·진보 진영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는 25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민주당이 운영하는 ‘피난처 도시’가 ICE와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피난처 도시는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행정을 맡아 연방 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적에 협조하지 않는 도시를 말한다. J D 밴스 부통령도 X에 “이런 혼란은 미니애폴리스에서만 나타나고 있고 극좌 선동가들이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2년차에 접어든 트럼프 2기의 국정 동력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민 단속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에 대한 탄핵이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로빈 켈리 연방 하원의원이 발의한 탄핵 소추안에 70여명이 서명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이민 단속 부문이 포함된 정부 예산안에 반대해 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을 경우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