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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아닌 탈세 혐의로 구속… ‘범죄왕’ 알 카포네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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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아닌 탈세 혐의로 구속… ‘범죄왕’ 알 카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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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47년 1월 25일 48세
알 카포네. 1930년.

알 카포네. 1930년.


폭력·밀수·밀주·살인을 비롯한 숱한 범죄 혐의에도 처벌하지 못했다. 미국 시카고 마피아 조직 보스 알 카포네(1899~1947)를 구속한 사유는 탈세였다.

미국 재무부 수사관 엘리엇 네스는 1931년 알 카포네 구속에 성공했다. 네스는 온갖 협박과 매수 시도에 굴복하지 않아 ‘언터처블’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7년 영화 ‘언터처블’은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와 알 카포네(로버트 드 니로)의 실제 대결을 그린다.

알 카포네는 이전에도 법정에 선 적 있지만 정계 인사를 동원해 무마하거나 배심원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번번이 처벌을 피했다. 네스는 판사를 설득해 배심원단을 전격 교체하면서 유죄를 이끌어냈다. 카포네는 11년 형을 선고받고 캘리포니아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됐다.

세계를 진동하는 괴인 대도 카포네. 1931년 8월 4일자 5면.

세계를 진동하는 괴인 대도 카포네. 1931년 8월 4일자 5면.

알 카포네의 악명은 식민지 조선에도 알려졌다. 1931년 8월 4일 자 조선일보는 ‘세계를 진동하는 괴인/ 대도(大盜) 카포-네/ 몃백 몃천의 인명을 살해해도/ 미국에서는 엇재 방관만 하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듬해 뉴욕 특파원 한보용은 ‘미국의 범죄 문제 개관’ 시리즈 기사에서 알 카포네를 자세히 소개했다.

“세상에 소개된 알 카포네는 범죄왕인 동시에 살인전문상(殺人專門商)이다. 그러나 차(此)에 관련하야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미국 관헌이 갖고 있는 금일까지의 범죄 기록에 카포네의 살인 사건은 하나도 없다. 아니 그가 살인 사건에 관련된 기록조차 볼 수 없다. 십여년전에 그가 뉴욕에서 모 살인 사건 관계로 체포된 일이 일차 있었으나 그후 곧 무죄로 석방되었었다. 카포네의 칭호가 ‘범죄왕’이니만치 유죄 판결로 징역한 일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죄명은 무기 휴대 또는 수입세 불납 등의 죄명뿐이오 살인 사건은 아니였다.”(1932년 3월 12일 자 석간 4면)


1932년 3월 12일자 4면.

1932년 3월 12일자 4면.

알 카포네가 연루된 가장 유명한 살인 범죄는 ‘발렌타인데이 학살’로 불리는 사건이다. 금주법 시대인 1929년 밀주와 밀수로 돈을 벌어들이던 때였다. 알 카포네 조직원들은 경찰로 변장해 경쟁 조직의 보스 벅스 모렌을 습격했다. 모렌의 부하 7명이 처참하게 살해됐다. 정작 카포네는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이 사건은 1967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배우 제이슨 로버즈가 알 카포네 역할을 맡은 ‘성 발렌타인데이의 대학살’이다.

알 카포네 출옥. 1939년 6월 3일자 4면.

알 카포네 출옥. 1939년 6월 3일자 4면.

카포네는 7년여 수감한 후 1939년 출옥했다. 당시 조선일보에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야반(夜半)의 미국에 군림하든/ 갱의 두목 카포네 출옥/ 군주를 능가하는 호화한 생활’이었다.

“아메리카의 암흑가의 왕자 알 카포네가 칠년동안의 징역사리를 마치고 느저도 유월 초순에는 다시 출옥하여 광명을 보게되리라 한다. 이 끔찍끔찍한 깽의 두목 카포네는 과연 어떠한 인물이엇던가. 카포네는 올에 마흔살이란 한참 왕성한 나이다. 최근에 의사가 그의 건강진단을 해본 결과 투옥 당시보다 훨씬 몸이 조하지고 건강해젓다. 복역 중에도 가튼 죄수들을 주먹으로 따리어 기절시킨 일이 세 번이나 된다 하니 그의 소가튼 기운은 어디를 가나 변함이 업는 듯하다.”(1939년 6월 3일 자 조간 4면)


영화 '암흑가의 왕자 카포네'. 1959년 9월 11일자 4면.

영화 '암흑가의 왕자 카포네'. 1959년 9월 11일자 4면.


알 카포네의 삶은 앞서 언급한 영화 외에도 여러 차례 영화·뮤지컬로 제작됐다. 1959년 리처드 윌슨 감독 영화 ‘알 카포네’는 한국에서도 ‘암흑가의 왕자 카포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단성사는 “시카고 암흑가를 뒤흔들던 깽의 제왕 알 카포네의 극적인 생애!”(1959년 9월 11일 자 4면)라고 광고했다. 카포네가 밀주에 이어 벌인 우유 사업을 그린 국내 창작 뮤지컬 ‘카포네 밀크’도 2024년 12월 무대에 올랐다.

2017년 1월 11일자 A27면.

2017년 1월 11일자 A27면.


알 카포네의 일생은 조선일보 고정 코너 ‘만물상’이 잘 요약 소개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생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알 카포네가 시카고로 옮겨가 현지 갱 조직을 물려받은 것은 26살 나던 1925년이었다. 천재적 범죄 센스와 조직 장악력을 발판으로 그는 순식간에 10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수퍼 갱스터 왕초 자리에 올랐다. 도박과 매춘, 술 밀매 루트 독점을 통해 그는 연간 6000만달러의 돈을 긁어모았다.


1985년 12월 21일자 4면.

1985년 12월 21일자 4면.


▶왼쪽 뺨의 칼자국 때문에 ‘스카페이스(Scarface)’로 불린 카포네는 그 흉터가 1차대전에서 얻은 상처라고 자랑하며 정·재계 유력인사들과 유대를 쌓았고, 경제공황 실업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차리는 쇼맨십도 발휘했다. 그러나 그는 ‘성 밸런타인 데이의 학살’ 사건을 비롯, 평생 250여명에 달하는 살인을 저질렀다. 카포네는 1931년 탈세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됐다. (중략)

▶그러나 알 카포네는 사실은 군대에 가지도 않았고, 뺨의 흉터는 술집에서 여자를 두고 싸우다 생긴 것이었다. 그의 가석방 사유는 심각한 매독 후유증이었으며, 1947년 플로리다에서 죽을 때 그의 지능은 12살 수준으로 감퇴해 있었다.”(2001년 7월 30일 자 5면)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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