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127>
5만원 쿠폰에 여론 ‘싸늘’...마케팅 전략 논란
대미 언플, ‘미국인’ 김범석 은둔에 정계 격앙
공정위원장, 김어준 유튜브서 “영업정지 검토”
美, 알리·테무 이득 의심...투자사는 정부 청원
金총리까지 사상 첫 방미...온플법과 분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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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한국 국민 3379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논란을 빚은 사태가 한미 통상 마찰로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쿠팡의 적극적인 로비에 미국 여야와 행정부가 모두 한국 정부의 조사와 제재를 질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모양새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이를 국제 분쟁 절차에 부치겠다고 나선 데 이어 미국 정부의 직접 개입까지 요구했다. 한국은 김민석 국무총리 등 고위직들이 잇따라 진화에 나섰지만, 자국 서비스를 견제해 중국을 돕는다는 미국 측 인식이 예상보다 확고해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만 원 쿠폰 제공에도 여론 ‘싸늘’...마케팅 전략, 대미 언플 논란
쿠팡은 지난달 29일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 6850억 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쿠팡은 보상 계획에 따라 이달 15일부터 고객 3370만 명에게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구매이용권을 순차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나름대로 국민 여론을 다독이려는 보상책이다.
구매이용권은 쿠팡 전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 트래블 2만 원, 알럭스 2만 원 등으로 구성됐다. 사용 기간은 오는 4월 15일까지로 이 시점을 넘기면 자동 소멸된다. 탈퇴 회원은 기존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해 재가입해야 한다. 쿠팡 상품 가운데 도서·분유·주얼리·상품권, 쿠팡트래블 상품 가운데 호텔 뷔페·e쿠폰 등에는 사용할 수 없다.
쿠팡의 쿠폰 제공에도 한국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쿠팡이 ‘꼼수’를 쓰고 있다는 의심도 늘었다. 당장 쿠팡의 보상안부터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만 살 수 있게 해 사실상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용도가 높은 쿠팡에는 5000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트래블·알럭스에는 2만 원을 각각 지급한 점도 눈속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쿠팡은 특히 지난달 26일 우리 정부의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자백을 받아내고 기기를 회수했다고 주장하는 성명을 내면서 국문본과 영문본에 미묘하게 다른 표현을 써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쿠팡은 바로 전날 유출자 자백을 받고 해킹에 사용된 장비 등을 회수했으며 외부 전송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민관합동조사단이 확인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쿠팡은 당시 홈페이지에 게시한 성명에서 “‘자체 조사’가 아니라 정부의 지시에 따라 몇 주간에 걸쳐 매일 긴밀히 협력하며 진행한 조사였다”며 “정부의 감독 없이 독자적으로 조사했다는 잘못된 주장이 계속 제기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문본에서는 ‘불필요한 불안감’이란 문구를 ‘잘못된 불안감(false insecurity)’으로 표현했다. 쿠팡은 또 “정부 기관과 국회, 일부 언론에서 ‘쿠팡이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억울한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에서 ‘억울한 비판’ 문구를 영문본에서는 ‘잘못된 비난(falsely accused)’이라고 표현했다. “12월 1일 쿠팡은 정부와 만나 전폭적으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라는 문장도 영문본에서는 “12월 1일, 정부가 쿠팡에 접촉해서 전면적인 협조를 요청했다”고 표현했다.
정부에 미운 털...‘미국인’ 김범석은 또 두문불출
쿠팡은 나아가 자체 조사 결과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그대로 공시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SEC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쿠팡은 29일 제출한 서류를 통해 “고객 계정 3300만 건에 대한 접근이 있었으나 범인은 약 3000건의 제한된 데이터만을 저장했다”며 “해당 데이터는 제3자와 공유되지 않은 채 삭제됐다”고 신고했다. 26일 홈페이지에 게시했던 해명 자료 영문본도 첨부했다. ‘쿠팡 사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인 배경훈 과학기술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부와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것”이라며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쿠팡은 지난해 11월 29일 고객 계정 3379만 개 정보가 ‘노출’이 됐다고 발표하면서 여기에는 이름과 e메일, 전화번호, 주소, 주문 정보 등의 개인 정보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쿠팡은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지난 2010년 8월 유통 스타트업으로 세운 기업이다. 쿠팡의 모회사는 한국 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기업 쿠팡Inc다. 쿠팡Inc는 한국 쿠팡 매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김 의장은 대기업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시민권 보유자다. 김 의장은 지금도 쿠팡Inc의 의결권을 73.7% 소유하면서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김 의장은 2024년 11월 보유하고 있던 클래스B 보통주를 클래스A 보통주 1500만 주로 전환·처분하면서 4846억 원을 현금화하기도 했다.
정부가 쿠팡을 괘씸하게 본 지점은 더 있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12월 29일 정례간담회에서 쿠팡이 피의자의 노트북을 경찰에 임의제출하는 과정에 미리 포렌식을 한 사실을 참고인 조사에서 진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쿠팡은 고객 정보를 유출한 전직 직원을 자체 특정하고, 중국 현지에서 잠수부를 투입해 피의자의 노트북을 하천에서 건져 올렸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 청장은 “만약 허위·조작 자료를 제출한 경우에는 증거인멸, 공무집행방해 등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두문불출하는 김 의장은 그달 30~31일 국회 6개 상임위원회 연석청문회에도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의장은 “현재 해외에 거주하기에 부득이한 사유로 청문회에 출석이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야 의원들이 모두 “국회를 무시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의장은 지난달 17일 과방위의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청문회에도 글로벌 경영자라는 이유로 불출석한 바 있다. 김 의장은 지난해 1월 21일 열린 쿠팡 심야 택배 근로 조건 관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청문회에도 미국 워싱턴DC에서 마련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김 의장의 친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도 연말 청문회에 불출석한다고 알렸다.
세무·금융·수사 등 범정부 압박...임시대표는 청문회 뒤 출국
쿠팡이 독자 행보를 이어가자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회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12월 29일 배 부총리는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하고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이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며 “범정부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 단 하나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관세청은 같은 날 서울 송파구 쿠팡 한국 법인을 현장 조사하고 미국 본사와 주고받은 자금 흐름과 외국환 거래 등을 현장 조사했다.
금융감독원도 쿠팡의 계열사 쿠팡파이낸셜 ‘판매자 성장 대출’의 고금리 대출 관련 검사에 착수했다. 이는 쿠팡 입점 업체의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최대 5000만 원의 사업 자금을 최대 연 18.9% 금리로 빌려주는 상품이다. 금감원은 현장점검 과정에서 쿠팡파이낸셜이 금리 산정과 대출금 취급·상환 규정 등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5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가리켜 “갑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쿠팡의 개인정보유출과 관련한 쿠팡페이의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쿠팡의 산업재해 은폐 의혹까지 직접 수사하기로 했다. 2020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사망한 근로자 사건을 두고 택배노동조합 등이 12월 23일 김 의장을 증거인멸교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다. 경찰은 이달 2일에는 86명으로 구성된 TF도 새로 편성해 쿠팡 관련 고소·고발 사건 20건을 종합 수사하기 시작했다.
핵심 경영진이 모두 빠진 채 진행된 12월 30~31일 국회의 쿠팡 청문회는 또다시 ‘맹탕’으로 끝났다. 한국말을 못하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동시 통역기를 착용하는 대신 통역사를 옆에 두겠다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같은 달 17일 통역사를 앉혔다가 청문회 시간만 잡아먹었던 탓이다. 로저스 대표는 청문회를 일주일 앞둔 12월 10일 박대준 전 대표의 경질성 사임으로 급하게 대표직을 맡은 인물이다.
로저스 대표는 30일 청문회에서 수차례 동문서답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고 불쾌감을 표시해 청문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로저스 대표는 청문위원들이 쿠팡이 영문 입장문에 ‘false(잘못된)’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묻자 “우리가 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허위 정보가 있다”며 “우리가 자의적으로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격앙된 어조로 발언하면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기도 했다.
로저스 대표는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31일 해외로 출국했다. 이달 1일 경찰의 고발인 조사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경찰은 로저스 대표와 김 의장,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등에 대해 입국 시 통보요청과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
공정위원장, 김어준 유튜브서 “영업정지 검토”...노동장관 “고쳐서 못 쓸 기업”
국가정보원은 자기들의 지시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는 로저스 대표의 청문회 답변에 대해 “명백한 허위”라며 국회에 곧바로 위증 혐의 고발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자료 요청 외에 쿠팡에 어떠한 지시·명령·허가를 한 사실이 없다”며 “쿠팡은 국정원이 12월 17일 접촉하기 전인 15일 이미 이미지 사본을 복제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배 부총리는 31일 청문회에서 쿠팡 측의 과실로 홈페이지의 5개월 분량 접속 로그 데이터가 삭제됐음을 11월 27일에 이미 확인했다고 밝혔다. 배 부총리는 “쿠팡은 용의자의 진술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어 굉장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3000건이 삭제됐다는데 클라우드에 저장됐으면 찾기도 힘들고 국가 배후에 악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이달 1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명령을 시행하지 않거나 소비자 피해 구제가 안 된다고 판단되면 영업정지 처분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 위원장은 “최저가 판매로 발생하는 쿠팡의 손해를 전가하는 행위도 굉장히 중요한 불공정 행위”라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김 의장을 쿠팡의 총수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김 의장과 그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지를 면밀하게 점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그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정위의 기업 총수 지정을 피했다. 김 의장은 지금도 예외 조항을 통해 사익편취 금지, 친·인척 자료 제출 등 각종 의무를 부여받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김 의장의 친동생인 김 부사장이 거액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주 위원장은 19일에도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이용자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영업을) 확대하려고 정보 유출 사건을 활용한 것”이라며 쿠팡의 보상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온라인 플랫폼에 특화된 착취적 사업 방식을 규율하려면 특화된 법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청문회를 보며 ‘쿠팡을 고쳐 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질타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15일 이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청와대 상춘재에서 1시간 30분가량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면서 참석자들 다수가 쿠팡 사태에 대해 “국익을 훼손하는 문제로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경제형벌 합리화’ 문제와 관련해 여야 지도부에 “심각성을 인식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쿠팡 문제를 거론하며 “글로벌 기업이든, 국내 소기업이든 법과 원칙에 따라 상식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李대통령 “국익 훼손 엄중히 대응”...美의회는 “한국이 중국에 이득 주려 해”
문제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터져나왔다. 미국 연방하원 세출위원회는 이달 5일 상무·법무·과학(CJS) 등 관련 부처에 대한 ‘2026 회계연도 예산안’ 보고서를 공개하고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검토하는 온플법이 미국 기술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며 “중국에 본사를 둔 경쟁사들에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예산안 법안이 제정되면 60일 이내에 해당 법안(온플법)이 기술기업들과 미국의 외교 정책 이익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원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한국의 디지털 비관세 장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초당적으로 공유한 셈이다.
디지털 규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초인 지난해 2월부터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는 외국 정부의 ‘일방적·반경쟁적 정책과 관행’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USTR은 공식적으로는 쿠팡 사태와 무관하다면서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12월 18일 예정했던 비공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갑자기 취소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같은 달 23일 X(옛 트위터)에 “한국이 미국 기술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무역 관계 재균형 노력을 저해한다”며 사실상 백악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소속 대럴 아이사 공화당 의원도 12월 16일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미국 기업들에 대한 한국 국회의 괴롭힘이 심각한 외교·경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연방 상원이 공개하는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나스닥시장 상장 후 최근까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1075만 달러(약 159억 원)를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100만 달러(약 14억 6000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여한구, 급히 방미했지만 비판 기류는 그대로...투자사들, 美정부에 보복 관세 등 요청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1~15일 워싱턴DC를 찾아 미국 정치권 설득에 나섰다. 여 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등 당국자와 연방 의원들, 미국 기업·협회 관계자들을 다양하게 만났다고 전했다. 그는 “디지털 규제 등이 불확실한 부분에서 위험 요인은 분명히 있다”며 “우리나라가 이를 추진하는 배경을 잘 설명했고, 미국 측도 이해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 본부장 주장과 달리 쿠팡 사태와 온플법에 대한 미국의 표면적 기류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사 의원은 여 본부장을 만난 직후인 12일 X에 글을 올리고 “미국 기술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표적화와 쿠팡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적대 행위에는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의 스콧 피츠제럴드 하원의원도 같은 날 X에서 “정치적 동기에 따른 마녀사냥에 기반해 쿠팡의 미국인 임원들을 기소하라고 요구한 한국 정부의 조치에 경악한다”고 질타했다.
공화당의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 에이드리언 스미스 위원장도 13일 무역소위 청문회에서 “한국은 미국 기업들을 명백하게 겨냥하는 입법 노력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며 “쿠팡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 조치가 그 사례”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캐롤 밀러 하원의원은 “디지털 분야에서 자유로운 교역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한국에서 가장 뚜렷하다”며 “최근 두 명의 미국 경영인을 상대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수전 델베네 하원의원도 “내 지역구인 워싱턴주에 있는 쿠팡 같은 기업을 통해 한국 규제 당국이 이미 무역 합의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꼬집었다. 쿠팡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기술 사무소를 두고 있다.
쿠팡의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급기야 지난 22일 한국이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FTA를 위반했다며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우리 정부에 보냈다. 이들은 쿠팡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 대응으로 주가 하락 등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린옥스의 창립자인 닐 메타는 쿠팡Inc의 이사회 구성원이다.
이들은 의향서에서 “쿠팡은 중국 정부, 더불어민주당, 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 내 중국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며 “그러자 한국 정부가 행정 권력을 무기화하기 시작했다”는 위험한 발언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마피아를 소탕할 때와 같은 각오로 해야 한다’고 정부 규제 당국에 촉구했다”는 내용도 넣었다. 김 총리가 지난해 12월 19일 금융위와 공정위, 금감원 등의 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마피아를 소탕해 시장 질서를 잡을 정도로 한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을 인용한 내용이었다.
金총리까지 사상 첫 단독 미국행...쿠팡과 온플법 분리 대응해야
두 회사는 또 한국이 제한적인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범정부 차원에서 쿠팡을 공격하고 있다며 USTR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직접 조사를 요청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위반하거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정책으로 무역을 제한할 경우 이에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이다. USTR은 청원 접수 45일 내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사 결과 미국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등으로 한국에 보복할 수 있다. 쿠팡 투자사들은 USTR에 관세 부과, 미국 내 한국 서비스 제한 등을 청원했다.
USTR이 301조 조사 범위를 쿠팡에서 디지털 규제 전반으로 넓힐 경우 분쟁은 더 심화할 수 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리어 대표는 지난해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도 한국이 디지털 규제 관련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301조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경고했다. 법무부는 이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반응했다. 쿠팡은 “우리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 총리는 직접 미국까지 날아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미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총리 취임 후 첫 외국 출장이기도 하다. 김 총리는 22일 워싱턴DC에 도착한 날부터 연방 하원의원들을 만나고, 23일에는 밴스 부통령을 50분간 접견했다.
김 총리는 이날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갖고 “밴스 부통령이 한국에서 쿠팡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했다”며 “국민 상당수의 정보가 유출된 상황에서 해결을 지연시킨 문제와 최근 이 대통령과 총리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이 있었던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마치 쿠팡을 향해 차별적인 강력 수사를 지시한 것처럼 인용한 부분 자체가 완전히 사실무근”이라며 “당시 발언록 전문을 공개했고 이를 반증한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또 “밴스 부통령도 뭔가 법적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면서 이해를 표시했다”고 알렸다. 여 본부장도 19~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그리어 대표를 또 만나 통상 문제를 논의했다.
쿠팡에 대한 조사와 제재가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 중국 회사들의 반사 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가 미국 정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당분간 양국 통상 마찰 관련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궁지에 몰릴수록 쿠팡 김 의장의 로비가 더 노골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한국에서 강세를 보이는 해외 플랫폼 대다수가 미국계라는 점에서 온플법이 미국에만 차별적이지 않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워싱턴 정가에 얼마나 통할지도 미지수다. 한국 정부는 일단 쿠팡 사태와 온플법 논란을 분리하는 작업부터 매진해야 한다. 쿠팡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자 23일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도 19.99달러까지 내려갔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28일 28.16달러보다 29.0%나 떨어졌고, 공모가인 35달러보다는 42.9%나 낮아졌다.
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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