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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동력서 재앙의 씨앗으로… ‘땅의 타락’

조선일보 김홍수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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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동력서 재앙의 씨앗으로… ‘땅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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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금리 낮춰 부동산 불패 신화 만들었지만
상업용 땅값 80% 폭락… 30년 불황의 시작

영국 경제 전문지 기자 출신인 저자의 말
“토지로 일군 富, 치명적 피해 입힐 수 있어"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마이크 버드 지음 | 박세연 옮김 | RHK | 366쪽 | 2만5000원

봉건 시대가 끝나고 소작농이 자기 땅을 경작하는 자작농이 되면서 땅은 귀족, 영주가 아니라 개인의 자산 축적 수단이 된다. 농민 소득이 늘어나면서 상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기자 출신인 저자는 소작농이 자작농이 됐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2차 대전 후 일본의 농지 개혁 사례로 보여준다.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지주에게서 토지를 몰수해 소작민에게 배분하는 농지 개혁을 단행했다. 자작농 비율이 1947년 37%에서 50년 62%로 뛰었다. 농업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올랐다. 농민들은 늘어난 소득을 자녀 교육에 쏟아부었다. 일본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저자는 한국의 1949년 토지 개혁도 비슷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한다.

땅은 원초적 자본 역할로 국민 경제를 키우는 동력이 된다. 18세기 홍콩과 20세기 중국이 대표적 사례다. 아편전쟁 승리로 홍콩을 식민지로 얻게 된 영국은 홍콩 개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궁리하다 묘안을 떠올렸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인 토지 임차권을 경매에 부쳐 자본가들에게 판 것이다.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정부로 자동 반환되게 해 토지 사용권 수익이 영구적으로 이어지게 설계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에도 토지 임차권 수익은 홍콩의 최대 세수 항목으로 남아 있다. 중국 개혁가 등소평은 홍콩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1980년 홍콩 인근 선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토지 사용권 판매로 재원을 마련하는 홍콩 모델을 그대로 가져왔다. 다른 시 정부들도 선전 모델을 잇따라 도입했다. 토지 관련 수익은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이끄는 종잣돈 역할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반대로 주택담보대출로 상징되는 부동산과 금융의 결합은 경제위기라는 재앙을 낳기도 한다. 1980년대 일본 사례가 그랬다. 일본 정부는 수출을 위해 엔화 가치를 낮추고, 예금 금리도 낮게 유지했다. 이것은 부동산을 한층 더 매력적인 투자 자산으로 만들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이어졌다. 기업들은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1987년 도쿄의 주거용 토지 1㎡ 가격은 400만엔에 달해, 영국 런던(10만엔)보다 40배 비쌌다. 일본의 토지 가치 총액은 미국의 4배 이상이었다. 1985년 엔화 가치를 2배로 올리는 미·일 플라자 합의로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상업용 땅값이 80% 넘게 폭락했다. 일본 경제 30년 장기 불황이 그렇게 시작됐다.

19세기초 미국의 언론인 출신 개혁가, 헨리 조지는 토지가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토지 임대료 수익의 100% 과세를 주장했다. 단일세로 토지세만 거두면 다른 모든 세금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헨리 조지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국가로 싱가포르를 꼽는다.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 정부는 1966년 ‘토지 수용법’을 제정한다. 토지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민간인 소유 토지를 시장가보다 낮게 강제 매입할 수 있게 했다. 이 법 덕에 정부가 국가 토지의 90%를 소유하게 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 소유 땅에 공공임대 아파트(HDB)를 지어 공급한다. 아파트는 99년간 임대되지만 토지는 임대 만료 후 국가에 반환된다. 싱가포르 국민 80% 이상이 HDB 아파트에 거주한다. 필자는 “싱가포르야말로 헨리 조지가 150여 년 전에 품었던 이상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신흥 부자들이 모여사는 수퍼스타 대도시들은 주택 가격 급등을 촉발, 사회 양극화를 키우는 온상이 됐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주택 공급 확대, 토지 관련 감세 폐지, 대체 투자수단인 자본시장 키우기 등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스스로도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중산층을 포함한 다수 유권자들의 저항이란 정치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지는 제로섬(zero-sum) 자산이며, 토지로 일군 부(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다소 위안을 얻는다.

[김홍수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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