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중구 IBK 기업은행 본점에서 기업은행 노조원들이 새로 선임된 장민영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부 출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장민영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첫 출근부터 발길을 돌렸다. 노조는 정부의 ‘총인건비제’로 인한 임금 체불 문제 해결 없이는 출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장 내정자는 23일 오전 8시47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으로 첫 출근을 시도했으나, 류장희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내정자로 지명된 지 하루 만이다.
류장희 노조위원장은 장민영 기업은행장의 첫 출근을 막으며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와야 (은행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체불 임금과 차별 임금 해소에 분명한 답을 가져와야 한다”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재정경제부(전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총인건비제도’에 있다. 기업은행은 ‘총인건비제도’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시간외수당 등을 추가 지급하기 어려운 구조다. 임금과 복리후생비 등 인건비 총액을 연간 한도로 미리 정해두고, 그 범위 내에서만 인건비를 지출할 수 있도록 제한된 탓이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매년 정하는 인상률 상한 이내에서 인건비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기업은행은 그동안 부족한 수당 대신 ‘보상 휴가’를 지급해왔으나, 현장에선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으로 휴가를 쓰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과 수당 대신 지급된 휴가 중 미사용 일수는 1인당 35일이다. 이를 수당으로 환산하면 1명당 600만원, 기업은행 직원 전체로는 780억원 수준이라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노조는 “공공기관 총액인건비 제도 도입 이후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미지급된 보상 휴가 전액을 현금으로 보상하고, 특별성과급을 추가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노조의 지적에 공감하며 총인건비제 해결을 지시한 바 있다.
장 내정자의 앞날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태 전 행장 퇴임 이후 이어진 경영 공백을 메우는 것이 시급하지만, 노사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집무 시작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미 지난달 조합원 총투표에서 91%의 압도적 찬성률로 총파업을 가결·준비 중이다. 오는 1월말 예정된 총파업은 노조와 기업은행의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된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2020년 윤종원 전 행장 임명 당시, 노조가 26일간 출근을 막아서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던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는 전날에도 성명을 통해 △기업은행 예산·인력 자율성 확보 △기업은행 총인건비제 모순 해결 등을 거론하며, 장 내정자가 이를 완수할 적임자라는 확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대통령을 설득하고 금융위원회와 맞서며, 국회를 설득할 역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직접 공개 지시한 기업은행 총인건비제 모순 해소를 완수할 적임자라는 확신이 없다”고 했다.
다만 장 내정자는 대화의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있었고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은행 임직원의 소망을 저 역시 알고 있으며, 지시 사항이 나오기까지 노조가 해온 역할도 잘 알고 있다. 저 역시 노사가 합심해서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