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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그린란드에 미국이 ‘주권’ 행사하는 軍기지 원한다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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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그린란드에 미국이 ‘주권’ 행사하는 軍기지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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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영국이 주권 행사하는 키프로스 내 英기지가 모델
현재의 덴마크ㆍ미 협정은 미군 기지의 주권은 덴마크에
러시아ㆍ중국의 그린란드 자원 개발도 제한
덴마크는 어떠한 형태의 주권 양도도 반대...합의 전망은 불투명
트럼프 대통령이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과 합의했다며 밝힌, 그린란드에 대한 미래 딜의 기본틀(framework)은 그린란드에 설치하는 ▲미군 기지들에 대해 미국이 주권을 행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잠재적 적국이 그린란드의 광물 자원을 채굴하는 것을 차단하며, ▲북극에서 나토(NATO)군의 존재를 강화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고, 뉴욕타임스가 서방의 주요 안보ㆍ외교 관리들 8명을 인터뷰해 22일 보도했다.

이는 그린란드 전체에 대한 영유권(領有權)을 덴마크로부터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이 그린란드의 기지 설치ㆍ사용과 관련해 덴마크와 맺은 현재의 1951년 협정보다는 크게 나아간 것이다.

1951년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그린란드 내에 사실상 원하는 대로 미군 기지를 설치할 수 있지만, 기지에 대한 영유권은 여전히 덴마크에 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냉전 때 그린란드 미군 기지를 16곳까지 증가했고, 현재는 북서쪽에 피투피크(Pituffik) 우주군 기지(舊 툴레 공군기지)만 운영하고 있다. 미군 약 150명이 주둔하는 미사일 방어기지다.

미국은 냉전 때 소련의 위협에 대비해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를 16개까지 확대했으나, 현재는 그린란드 북서쪽에 미사일 방어가 주목적인 피투피크 우주군 기지 한 곳만 운영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냉전 때 소련의 위협에 대비해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를 16개까지 확대했으나, 현재는 그린란드 북서쪽에 미사일 방어가 주목적인 피투피크 우주군 기지 한 곳만 운영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이 ‘기본틀’은 영국이 1960년 키프로스를 독립시키면서, 이 섬에 설치한 영국 공군ㆍ육군 기지에 대한 주권은 영국에 속하도록 한 모델을 본 딴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딜의 기본틀을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딜의 기본틀을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주요 서방 안보ㆍ외교 관리들은 이 기본틀이 러시아ㆍ중국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북극을 방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우려를 충족시키면서도 “그린란드는 매물(賣物)이 아니다”라는 유럽의 ‘레드 라인(red line)’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표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 비즈니스 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본틀’은 당사자인 덴마크나 그린란드가 동의한 것이 아니며, 현재 덴마크는 그린란드 주권을 타협할 수 있는 어떠한 형태의 논의와 가능성에도 강력히 반대한다.

따라서 이 기본틀이 실제로 그린란드의 미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합의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22일 성명에서 “우리는 안보ㆍ투자ㆍ경제 등 모든 사안에서 협상할 수 있지만,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덴마크를 대신해 미국과 협상할 권한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밝혔다. 5만7000명의 그린란드 주민을 대표하는 그린란드 총리 옌스-프레데릭 닐센도 “내가 참석하지도 않은 논의에서 어떤 합의나 거래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주권 양도는 레드 라인”이라고 말했다.

이 ‘기본틀’에 따르면, 미국은 우선 1951년의 덴마크ㆍ미국 협정을 개정해, 미군 기지의 건설과 운영에 대해 현재보다 광범위한 접근권을 보장받으려고 한다. 특히 향후 그린란드의 독립과 관계없이, 그린란드의 미군 기지에 대해선 미국 영토에 준하는 ‘주권 기지 지역(sovereign base area)’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현재 협정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그린란드에 미군 기지를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린란드가 독립할 경우 이러한 접근권이 제한되거나 종료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우려한다. 또 현행 협정에서 미군기지에 대한 주권은 여전히 덴마크에 있다.

‘주권 기지 지역’은 현재 치외법권만 인정되는 대사관 부지보다도 더 강력해, 법적으로는 파견국(이 경우 미국)의 영토가 되며 주둔국(그린란드나 덴마크)의 주권은 배제된다.

이 ‘기본틀’은 또 러시아ㆍ중국과 같은 비(非)나토 국가들이, 그린란드 빙하 아래에 매장된 희토류와 주요 광물 자원을 채굴하는 권리를 얻는 것을 제한한다.


이밖에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발트해와 동유럽에서 실시하는 나토 군사작전을 모델로 해, 그린란드를 비롯한 북극에서 ‘북극 경계(Arctic Sentry)’라는 새 군사 미션을 시작하는 것을 담고 있다.

◇키프로스의 영국군 주권 기지 두 곳이 모델

트럼프 대통령과 뤼테 나토 사무총장이 염두에 둔 모델은 영국이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 내에서 영국 주권을 행사하는 두 기지다. 영국 공군은 1960년 키프로스 독립 협정에 따라, 이 섬의 남서부에 아크로티리(Akrotiri) 주권 기지를, 영국 육군은 섬의 남동부에 데켈리아(Dhekelia) 주권 기지를 운영한다. 이 면적만 259㎢(서울 면적의 42%)이다.

영국은 키프로스를 독립시키면서 1960년부터 협정에 따라, 섬의 남쪽 두곳에 영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군 기지를 설치해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영국은 키프로스를 독립시키면서 1960년부터 협정에 따라, 섬의 남쪽 두곳에 영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군 기지를 설치해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영국은 1960~1965년에는 일종의 토지 보상금 형태로 매년 약 1200만 키프로스 파운드(약 3300만 달러)를 지급했으나, 이후엔 지급하지 않았다. 기지에선 영국 법률만 적용되며, 키프로스 공화국이나 유럽연합(EU)에 속하지 않는다. 버뮤다, 포클랜드 제도와 같은 영국의 해외 영토다. 다만 키프로스 주민들의 기지 왕래는 자유롭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키프로스의 영국군 기지 모델이 미국에게도 그린란드 전체 인수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영국이 키프로스 식민통치에서 절감했듯이, 주민을 통치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정치적 난제를 피하면서 미군 기지를 “미국의 완벽한 통제 하에”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주권기지 지역’은 미국이 그린란드에 대한 영구적인 존재감을 확보하고, 해당 지역에 대해 더 큰 통제권을 행사하고 북극 천연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그린란드 북극 자원을 둘러싸고 국제 분쟁이 발발하면, 미국이 더 무게를 실은 ‘주권적 주장’을 할 토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키프로스의 영국 주권 기지 지역은 지중해에 접해 있지만, 인근 해역의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미국은 자유로운 자원 개발을 원한다면, 보다 강력한 ‘주권 기지 지역’을 협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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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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