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화수소법 개정 추진…“기업에 유전운영 자율권 부여·판매수익 분배 확대”
반미·자원 주권 노선서 방향 전환…美·서방 관계 개선 포석
반미·자원 주권 노선서 방향 전환…美·서방 관계 개선 포석
2026년 1월 22일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 페드로 인판테 부의장(제1부의장), 그레시아 콜메나레스 부의장(제2부의장)이 석유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국회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자원 주권을 강조해온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 베네수엘라가 원유 개발 빗장을 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초강경 압박 속에서 베네수엘라가 우고 차베스(1954~2013) 전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63) 정권의 핵심 정치적 유산인 석유 국유화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베네수엘라 국회는 22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델시 로드리게스(56) 임시 대통령 정부가 제출한 탄화수소법 개정안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마두로 축출 이후 지난 3일부터 국정 운영을 맡고 있는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앞서 15일 국회 연설에서 “외국인 투자 촉진을 목표로 한 탄화수소법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며 “투자금이 신규 유전과 인프라가 부족한 기존 유전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과 AFP통신에 따르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발효될 경우 외국 및 현지 기업들은 새로운 계약 모델을 통해 유전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생산물을 상업화할 수 있게 된다.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소수 지분 파트너로 참여하더라도 판매 수익을 받을 수 있도록 배분 구조도 확대된다.‘베네수엘라에 본사를 둔 민간 기업’이 석유 탐사 및 채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특별 프로젝트 또는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사업에 대해 현재 33%인 로열티 비율을 15%까지 낮출 수 있도록 해 기업들의 현지 진출 동기부여를 높이는 구상도 담겼다고 로이터는 개정안 초안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분쟁 해결을 위한 독립적인 중재 신청도 가능하게 될 전망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차베스 전 정부(1999∼2013년)에서 외국기업 자산을 몰수하고 PDVSA 지분율을 강제 상향하는 등의 석유 국유화 조처를 사실상 폐기하는 ‘변침’(방향 전환)으로 풀이된다.
차베스 전 정부는 자유무역 체제 지양·민족주의 성향 강화 등 성격을 띤 21세기 사회주의와 ‘반미’(反美)를 기치로 내걸고 국가 경제 근간인 석유 산업을 2000년대 국유화했는데, 이 정책 방향은 2004∼2008년께 국제유가 고공행진 덕분에 경제 호황을 맞으면서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었다.
다만, 예측 불가능한 국유화에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는 와중에 유가 폭락과 미국 정부의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까지 겹치며 2010년대 들어서는 베네수엘라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석유 산업 자체도 전문 인력 축출과 재투자 부재에 부닥치면서, 한때 하루 300만 배럴 넘던 하루 생산량이 80만 배럴 수준까지 곤두박질친 것으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주요 외신은 분석한 바 있다.
그간 베네수엘라 PDVSA에서 독점했던 원유 수출 통제권을 민간에 일부 부여하는 이 개정안은 글로벌 에너지 지형을 흔들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외국 기업의 기술력과 자본이 본격적으로 투입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제 유가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베네수엘라 입장에서는 서방 기업들의 복귀 명분을 제공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꾀하는 지렛대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자산 몰수 경험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의 법적 투명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대런 우드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백악관에서 열린 석유 업계 임원 회의에서 “현재 베네수엘라의 법과 상업적 제도와 틀을 보면 투자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