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유석재의 돌발史전 2.0]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고? 그렇다면 1963년 5대 대선은 뭔가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원문보기

[유석재의 돌발史전 2.0]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고? 그렇다면 1963년 5대 대선은 뭔가

속보
코스피 0.76% 오른 4,990.07 마감
박정희의 대통령 당선은 국민의 직선제 선거를 통해서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이 진술은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가.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됐다.”

‘쿠데타’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군사혁명’이나 ‘군사 정변’이나 ‘쿠데타’는 그걸 주로 지칭하는 사람과 어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은 같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이 문장은 큰 오해의 소지가 있다. 1961년 5월 16일 일어난 군사 정변은 분명 제2공화국 정부를 와해시켰다. 정변의 주역인 군인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수립했다. 이 기관은 1961년 5월 19일부터 1963년 12월 16일까지 존속했다. 초대 의장인 장도영은 1961년 7월 2일 반혁명 혐의로 체포돼 물러났고, 7월 3일부터는 박정희가 2대 의장을 맡아 기관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박정희가 5·16을 통해 집권했다’고 할 때 그 ‘집권’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뜻하는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렇다면 제5대 대통령(1963.12~1967.6)과 제6대 대통령(1967.7~1971.6)의 경우는 어떤가? 역시 ‘쿠데타에 의한 집권’인가?

이런 경우가 수없이 많겠지만, 최근 나온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1회를 보면 1970년의 상황에서 이런 대사가 흘러나온다. 중앙정보부 요원인 주인공(현빈)의 독백이다.

“중앙정보부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 군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국가 정보기관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라고? 당시는 제6대 대통령 박정희의 임기 중이었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 5·16이 아니었으면 박정희는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테니 ‘쿠데타가 대통령이 된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으나, ‘쿠데타를 통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것은 1963년 10월 15일에 있었던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니, 군사 정변을 일으킨 박정희가 이 선거를 군대식으로 억지로 치러서 이기기라도 했단 말인가? 3·15처럼 부정선거를 벌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 /조선일보DB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 /조선일보DB


‘한국정당정치사’를 쓴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에게 물어봤다.


-1963년 5대 대선은 혹시 부정선거였던가?

“그렇지 않다. 박정희는 2위 후보였던 윤보선보다 15만 표 이상을 더 얻어 당당히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렇다면 5·16과 그 이후 박정희의 행보가 오히려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 박정희는 초헌법적인 대통령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제3공화국 시절에 세 번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분명 국민의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하지만 특히 젊은 층에선 박정희를 ‘5·16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고, 유신으로 종신 집권을 기도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가?

“쉽고 편하게들 이해를 하려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당시 박정희는 ‘기호 1번’을 차지해서 아직 문맹자가 상당수 존재하던 시절 당선에 유리하게 활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가. 이때 기호 1번은 신흥당의 장이석 후보였고,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온 박정희는 기호 3번이었다.

5대 대선에는 모두 7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심지연 교수는 ‘한국정당정치사’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국민의 신임을 받아 재집권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군정 종식을 내건 구(舊)정치인이 집권해 진정한 의미의 민정 이양을 이루느냐 하는 점에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고 했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의 신문 광고.


당시 박정희는 “참신한 인사를 제외한 구정치인은 제2선으로 물러서게 하고, 새 역사의 창조에 원동력이 될 신세력 중간층의 등장을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권은 허정과 송요찬 두 후보가 사퇴했음에도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야권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던 윤보선 후보는 ‘박정희가 여순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사상 문제를 제기했고, 공화당은 ‘과거 매카시즘 수법을 쓰고 있다’고 반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국 정보기관은 ‘3·15 부정선거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면 한국은 정말 공산화될 것’이라 우려했지만,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 안심했다고 한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가 470만2640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득표율 46.64%였다. 2위인 윤보선 민정당 후보는 454만6614표를 얻어 45.09%에 그쳤다. 초반 개표에선 윤보선이 앞섰으나 박정희가 역전에 성공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호남 지역에서 얻은 지지가 박정희의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반면 정작 군 부재자투표에선 윤보선 지지가 더 많았다. 이것은 당시 대선의 공정성을 입증하는 증거 중의 하나다.

박정희의 제5대 대통령 당선을 보도한 조선일보 1963년 10월 18일자 1면.

박정희의 제5대 대통령 당선을 보도한 조선일보 1963년 10월 18일자 1면.


정리하자면 이렇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다’고 한다면 이것은 1963년 12월까지 그가 맡았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칭하는 것에 한해 합당하다. 그러나 ‘박정희는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고 한다면 잘못된 진술이다. 여러 차례 말을 바꿔 논란이 됐지만, 그는 끝내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공정한 대선 후보로 나서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아무리 박정희와 제3공화국을 비판하고 싶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정희는 국민의 지지를 얻은 합법적인 대통령이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고 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아래 얼굴 사진 오른쪽에 있는 ‘구독+’를 한 번 눌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설명해드립니다.

돌발史전 구독하기

[유석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