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은 멀리 있지 않았다, 늘 반복하던 식탁 위 선택
점심시간을 앞둔 서울 성북구의 한 백반집. 김치찌개가 끓어오르자 손님들 손이 자연스럽게 국자로 향한다. 한 숟가락 떠서 간을 본 뒤 밥을 말고, 남은 국물까지 비워낸다. “이 집은 국물이 진해야 제맛이지.” 식당 안에서는 흔한 말이다.
의료 현장에선 이 ‘익숙한 한 숟가락’을 다르게 본다. 위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들 사이에선, 병의 시작이 거창한 유전자나 특이한 독소가 아니라 이렇게 반복되는 식탁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왜 한국에서 유독 많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국과 찌개 중심의 식문화가 반복되는 일상 속 선택이 위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
의료 현장에선 이 ‘익숙한 한 숟가락’을 다르게 본다. 위암 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들 사이에선, 병의 시작이 거창한 유전자나 특이한 독소가 아니라 이렇게 반복되는 식탁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왜 한국에서 유독 많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위암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높은 암이지만,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발병률이 유난히 높다. 그동안 짠 음식, 유전적 요인 같은 설명은 많았지만, 무엇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리는 부족했다.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박성수 고려대안암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연구팀은 방향을 바꿨다. 새로운 실험이 아닌 이미 전 세계에서 쌓인 연구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 수십 년간 발표된 논문을 하나씩 다시 검토하며, 위암과 연결된 요인들을 같은 기준으로 정리했다.
분석 결과는 의외로 담담했다. 위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넘겨온 생활습관이었다.
짠 음식과 절인 반찬, 잦은 술자리, 흡연. 여기에 위 속에 서식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이 겹치면, 위 점막은 회복할 틈 없이 자극을 받는다. 의료진은 이를 “위가 늘 상처를 입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에 비유한다.
정제된 탄수화물이나 붉은 고기, 가공육처럼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별히 몸에 나쁘다고 느끼지 못한 채 반복되는 선택들이 위험을 쌓아 올린다는 점에서, 경고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낯선 위험보다 너무 익숙한 습관들…“검사 결과 듣고 국자부터 내려놨습니다”
이 변화는 실제 식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52) 씨는 2년 전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축성 위염’ 진단을 받았다. 암은 아니었지만, 의사는 “지금 식습관이 계속되면 위험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씨는 “그때 의사가 한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은 게 ‘국물부터 줄이세요’였어요”라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들렸죠.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저는 하루에 국물 요리를 두 번은 먹더라고요. 찌개, 국, 라면까지요.”
그날 이후 이 씨의 식탁은 달라졌다. 찌개를 시켜도 국자는 내려놓고 건더기 위주로 먹었다. 반찬은 절인 것보다 생채를 골랐고, 밥을 말아 먹는 습관도 끊었다.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에요. 그냥 한 숟가락을 안 뜬 것뿐인데, 다음 검사에서 염증이 줄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반대로, 위암 위험을 낮춘 선택들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자주 먹고, 생선과 해산물을 식탁에 올리는 것. 국물보다 건더기를 먼저 먹고, 짠맛을 조금 덜어내는 습관이었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도 도움이 됐다. 헬스장에 매일 가지 않아도, 걷기처럼 일상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위 점막의 염증 반응이 완화되는 경향이 관찰됐다. 의료진은 “약보다 먼저 바꿔야 할 건 생활의 리듬”이라고 말한다.
◆“아시아인의 위는 짠맛에 더 혹독했다”…위암 예방, 이제는 ‘운’이 아닌 ‘선택’
이번 분석에서 특히 눈에 띈 대목은 지역별 차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시아인의 위는 염분과 탄수화물 섭취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과 찌개, 탕이 식사의 중심이 되는 문화가 반복되면서 위가 받는 부담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지방 섭취 역시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어떤 지역에선 위험 요인이지만, 다른 곳에선 상대적으로 덜 문제 되는 식이다. 식습관과 유전적 배경이 겹치면서 나타나는 차이다.
짠 국물과 절인 음식 위주의 식습관이 위 점막에 누적 부담을 주며 위암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뉴시스 |
박 교수는 “이번 분석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연구 결과를 한 번에 정리해, 위암의 위험과 보호 요인을 같은 눈높이에서 본 것”이라며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실질적인 예방 전략을 세우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진료실에서 의사들이 반복해 꺼내는 말은 비슷하다. “운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이 쌓인 결과입니다.” 오늘 점심에 국자를 끝까지 들었는지, 중간에 내려놨는지. 의료진은 그 차이가 몇 년 뒤 검사 결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무심코 뜬 국물 한 숟가락. 그 순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면이 매일 반복된다면, 위는 분명히 기억한다. 위암은 멀리서 찾아오는 병이 아니다. 늘 반복되던 식탁 위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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