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피고인 한덕수는 국무총리로서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작위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고위 공직자에게 보내는 선언이었다. ‘당신의 침묵은 때로는 그 어떤 폭력보다 잔인한 헌정 파괴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경고. 국가 위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는 중대한 범죄라는 경고.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 국무총리 한덕수에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등을 인정하며 징역 23년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한덕수 범죄사실 중 형량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윤석열 일당의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국무회의 심의’라는 외관을 갖추도록 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헌정사적으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국무총리에게 부여된 작위 의무, ‘헌법 방어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을 부작위범(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범죄)으로 판단한 부분이다.
통상 부작위범은 인정되기 어렵다. 부작위범이 성립하려면 ‘법적으로 무엇을 했어야 한다’라는 의무가 구체적으로 먼저 특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은 일반적으로 금지행위는 명확하게 규정하지만, 의무행위는 추상적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사회적 참사 사건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부작위 형사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던 이유다.
한덕수 판결에서도 유죄로 인정된 대부분은 ‘작위’, 즉 한덕수가 어떤 범죄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에 더해 두가지 법적 의무를 특정해 좁고 깊게 논리를 구성하면서 부작위범의 문턱을 넘었다. 국무총리에게 부여된 견제 책임을 ‘추상적 윤리’를 넘어 ‘구체적 법적 의무’로 끌어올렸다.
첫번째 부작위는 ‘국무회의 부의장’이라는 헌법 제88조 제3항이 정한 지위에 따른 의무를 해태한 것이다. 한덕수는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과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무회의를 운영하여야 했고, 그 전제로서 모든 국무회의 구성원에게 빠짐없이 소집을 통지하였어야 했으며, 비상계엄 선포 심의에 필요한 의견 등을 분명히 밝혀 제출하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덕수는 알고 있었다. 이 국무회의가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가기 직전의 단계라는 것을. 그때 한덕수는,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무엇을 해야 했나? 한덕수는 재판 내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고인은 국무위원들에게 소집 사유와 국무회의 의안들을 미리 알려주어 그들이 의사정족수에 포함되지 않는 차관을 대리 출석시키는 등으로 국무회의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를 저지하였어야 한다.” 대통령의 명령이 헌법에 반할 때, 국무총리는 그 명령의 수행자가 아닌 헌법의 방어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관 부장판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형을 선고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두번째 부작위는 정부조직법 제19조에 따른 국무총리의 중앙행정기관장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해태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덕수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지시를 받아 이를 이행함으로써 윤석열 등의 내란 행위에 가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국무총리로서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한덕수는 이상민을 저지하기는커녕 단전·단수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고, 이상민이 그 지시를 수용하고 이행하게 했다. 그 결과 시민들이 맨몸으로 국회 문을 지킬 때, 헌법의 보루여야 할 국무총리는 국무회의 의결정족수를 채워주며 내란범죄의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다.
한덕수는 12·3 내란과 관련하여 방조 혐의로 기소된 유일한 자였다. 재판부는 한덕수의 행위가 방조가 아니라 중요임무 종사라고 평가하며 부작위범 법리와 언어를 통해 ‘침묵의 책임’을 정면으로 다뤘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마지막 방어선을 한겹 두껍게 만들었다. 이후 내란 관련 많은 판결이 나오겠지만, 이 판결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헌정 파괴는 막을 수 있었던 자의 침묵으로 완성된다. 불법적 국가긴급권이 동원될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충성’을 외치는 실행자가 아니라 그 실행을 멈출 권한이 있으면서도 ‘절차’라는 방패 뒤로 숨는 사람이다. 재판부는 책임 있는 자의 침묵이 가장 무거운 쇠사슬이 될 수 있음을 서늘한 법의 언어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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