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트럼프 “추가 관세 없던 일로”… 유럽은 여전히 美 불신

조선일보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원문보기

트럼프 “추가 관세 없던 일로”… 유럽은 여전히 美 불신

서울맑음 / -3.9 °
그린란드 사태, 불안불안한 봉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부대행사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과 회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부대행사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과 회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린란드 매입’을 놓고 파국으로 치닫던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2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향해 겨눴던 징벌적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무력 사용 배제를 천명하며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갈등의 완전한 해소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실리를 챙기기 위한 ‘치고빠지기식 거래 기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동맹국의 안보·영토조차 언제든 거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준 트럼프의 일방주의로 인해 대서양 동맹의 신뢰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훼손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이날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그린란드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직후 소셜미디어에 “마르크 뤼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생산적인 회담 끝에 그린란드와 북극 전체에 대한 ‘미래 합의의 틀(framework)’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양해를 바탕으로 나는 2월 1일에 발효될 예정이었던 관세를 유럽에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린란드와 관련된 ‘골든돔(Golden Dome·차세대 미사일 방어망)’에 대해 추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는 “그들(유럽·그린란드)은 골든돔에 관여하게 될 것이고 광물권(mineral rights)에도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 단체인 ‘국가 쇄신을 위한 공화당원들(RNR·Republicans for National Renewal)’이 20일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그린란드 케이크’를 자르며 ‘트럼프 취임 1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그린란드 영토 모양인 이 케이크는 성조기 무늬로 덮였고 옆에는 ‘Greenland’라고 적혀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 단체인 ‘국가 쇄신을 위한 공화당원들(RNR·Republicans for National Renewal)’이 20일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그린란드 케이크’를 자르며 ‘트럼프 취임 1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그린란드 영토 모양인 이 케이크는 성조기 무늬로 덮였고 옆에는 ‘Greenland’라고 적혀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가 내세운 합의의 실체는 모호한 상태다. 백악관은 구체적인 협정 문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가 CNBC 인터뷰에서 “이 합의는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말해, 그린란드 일부를 ‘영구 조차(租借)’ 형태로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협상 파트너인 뤼터 사무총장은 “그린란드 주권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북극 안보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트럼프는 그린란드에 대한 사실상의 소유를, 나토는 안보 협력 강화를 강조하며 미묘한 온도 차를 보인 것이다.

트럼프가 합의의 핵심 성과로 꼽은 골든돔과 광물권은 미국의 북극 전략이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군사·경제적 패권 장악에 있음을 보여준다. 골든돔은 트럼프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을 본떠 추진하겠다고 밝혀온 차세대 다층 미사일 방어 체계다. 군사 전문가들은 그린란드에 있는 미군 피투피크 공군기지의 레이더 및 요격 시스템을 대폭 확장해 러시아와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북극권에서 조기에 탐지·요격하는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으로 해석한다. 여기에 희토류 등 그린란드 빙하 아래에 있는 막대한 광물 자원에 대한 미국의 우선적 접근권을 요구한 것 역시 중국의 북극 진출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트럼프가 관세 철회와 무력 사용 배제를 언급하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덴마크와 이탈리아 등은 즉각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낙관론보다는 불신이 지배적이다. 유럽의회는 이날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영토 매입을 압박한 행태 자체를 문제 삼으며 미국과의 무역 협정 승인 절차를 전격 중단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CNN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유럽에 대한 기상나팔(wake-up call)”이라고 규정하며 더 이상 미국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20일 그린란드 누크 시내 눈 덮인 거리를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AFP 연합뉴스

20일 그린란드 누크 시내 눈 덮인 거리를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AFP 연합뉴스


그린란드 현지의 공포감은 더 구체적이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얼음 한 조각(A piece of ice)’이라고 지칭하며 거래 대상으로 취급한 데 대한 모욕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다. 아야 켐니츠 덴마크 의회 그린란드 대표 의원은 “주민들에게 비인간적인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밤에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린란드 세르메르소크주의 아라바크 올센 주지사 역시 “군사력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 우리에게 안정적인 미래가 주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트럼프의 변덕에 따른 강제 병합 우려를 씻지 못했다. 나토 내부에서는 미국의 안보 우산이 언제든 걷힐 수 있다는 공포 속에 각자도생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트럼프는 이날 다보스 연설 상당 부분에서 이러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유럽을 향해 “미국이 없으면 대부분의 국가는 작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개입을 거론하며 “우리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은 지금 독일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고 조롱 섞인 면박을 줬다. 또한 나토를 향해 “우리는 너무 많이 주는데 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그린란드 매입 요구에) ‘아니오(No)’라고 답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야 켐니츠 의원은 “정말 어이가 없다”며 “우리는 팔기 위해 내놓은 물건이 아니고 따라서 살 수도 없다”고 했다. 그린란드 현지에서도 트럼프 연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한 주민은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수차례 ‘아이슬란드’라고 부른 데 대해 “그는 우리나라 이름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했다.

결국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유예하며 전략적인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대서양 동맹을 향한 압박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향후 구체화될 골든돔 구축과 광물권 확보를 위한 후속 협상은 언제든 갈등을 재점화할 뇌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무력 사용을 배제하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그가 동맹을 다루는 방식이 나토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근본적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샷 국제뉴스 더보기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