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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트럼프의 좌충우돌이 동아시아에 끼칠 해악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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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트럼프의 좌충우돌이 동아시아에 끼칠 해악

속보
실적 실망, 인텔 낙폭 8%로 늘려
대서양 동맹 흔든 미국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나

중국, 한미동맹 이간질
친중 세력에 더 공들인다
횡포에 대항할 전략을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합성 사진./트루스 소셜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합성 사진./트루스 소셜


2026년 벽두부터 세상이 살벌하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의 부동산과 자원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있다. 미국은 1월 3일 기습적 군사작전으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데 이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병합에 나섰다. 협상을 통한 매입이 성사되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강탈하겠다는 기세였다. 유럽 동맹국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단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대서양 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이제 미국까지 무력 사용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하면서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2400년 전 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의 명언처럼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일을 당한다(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넘볼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경에는, 전 세계에 걸친 동맹 네트워크와 함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서 키워온 독보적 소프트 파워가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은 이 강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불량국가처럼 난폭하게 좌충우돌을 일삼고 있다. 유럽 동맹국들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서 트럼프가 동맹을 배신하고 러시아 편을 들면서 대서양 동맹에는 이미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미국이 더 나아가 동맹국의 영토인 그린란드마저 병합한다면,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사실상 종말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소유권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뜻밖의 전략적 횡재를 누릴 나라는 러시아다. NATO의 내분과 해체라는 세기적 숙원을 이루고, 유럽 패권 세력으로 재기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광기와 난폭한 행보는 주로 서반구와 유럽에 집중돼 있지만 동아시아 전략 지형에도 최소한 세 갈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첫째,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가 약화될 가능성이다. 베네수엘라는 자칫 미국에 제2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수렁이 될 위험성이 높다. 마두로를 체포하여 미국으로 압송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베네수엘라를 정상 국가로 복원하고 명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마두로 정권의 핵심 세력이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면 대규모 미군 병력의 주둔이 불가피하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수탈하는 것으로 비치면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 민초들의 반미 정서를 자극하여 장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들 틈만 넓혀주고 말 것이다.

중국은 이미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산 대두 수입 카드만으로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력까지 베네수엘라에 묶이면 그만큼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미국의 여력은 줄어들고, 중국의 세력 확장은 더 용이해진다.


둘째,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정당성을 강화해줄 뿐 아니라, 미국을 본받아 동아시아 인근 국가에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미국이 이에 반대할 명분이 약화되었다. 물론 대만이나 역내 국가가 중국의 침공을 거부할 의지와 군사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중국이 실제 침공하기는 어렵고, 침공을 시도하더라도 실패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에 무력 사용의 문턱을 낮춰주는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고, 중국의 패권적 야망 실현에 힘을 보탤 뿐이다.

끝으로, 한미 동맹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경영에 정신을 빼앗기고 그린란드 문제로 유럽 동맹국들과 대립하면, 한미 동맹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북한이 사라진 것도 예사롭지 않다. 대북 억지 공약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흔들리고 대중국 견제를 위한 한국의 역할 확대 요구는 더 거세질 것이다.

한국 외교는 지금 혹독한 시험대에 서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집중력이 흩어진 틈을 이용해 한미동맹을 이간질하고 한국을 친중 세력으로 회유하는 데 더욱 공을 들일 것이다. 정초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훈계’한 것도 미·중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 편에 확실히 줄을 서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미국의 경제적 실익 추구가 동맹의 이익을 희생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중국의 패권적 야망과 횡포에 대항할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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