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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판 맘다니’ 등장 시간문제

조선일보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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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판 맘다니’ 등장 시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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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뉴욕시청에서 열린 조란 맘다니(오른쪽) 뉴욕시장 취임식. 미국 좌파 진영 거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취임 선서를 주관했다./AFP 연합뉴스

1일 미국 뉴욕시청에서 열린 조란 맘다니(오른쪽) 뉴욕시장 취임식. 미국 좌파 진영 거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취임 선서를 주관했다./AFP 연합뉴스


지난 1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취임식은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를 15년 전으로 되돌리는 듯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90분 이상 줄을 서 행사장에 들어온 시민 4만여 명은 미국 좌파 진영 거두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이 맘다니의 부유세 계획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자 “부자에게 세금을!”이라고 환호했다.

취임식이 열린 뉴욕시청은 2011년 경제적 불평등과 정경 유착을 비판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시작된 주코티 공원에서 도보로 5분 남짓한 거리다. 미국 사회에 부유세 담론은 그 시민운동을 계기로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

지금 미국에는 ‘민주사회주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샌더스가 이 이념을 대중에 널리 알린 인물이라면, 맘다니는 현재까지 등장한 최고 ‘히트 상품’이다. 한국에선 민주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쉽게 말해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를 벗어나지 않는 사회주의다. 민주주의가 이미 뿌리내린 체제 속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모색한 이념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멀쩡한 겉옷을 입었지만 그 본질은 사회주의다.

수면 아래에 있던 민주사회주의를 끌어올린 원동력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 핵심 키워드는 맘다니가 작년 시장 선거 때 내세운 ‘affordability(경제적 여유)’라는 단어다. 평범한 미국 가정 식탁에 오르는 소고기, 분쇄 원두, 바나나, 우유 등 유제품이 수년 전에 비해 최소 몇십 %씩 올랐다. 주택 가격도 마찬가지라 매달 렌트비에 허덕이는 뉴욕 시민이 많다. 곤궁해진 삶에 지친 시민들은 “너희를 먹고살게 해주겠다”는 민주사회주의의 달콤한 약속에 눈길을 돌린다. 천하무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고물가로 인한 민심 이반을 해결해야 한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이 뽑는 정치인의 위선과 부조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사람 심리다. 맘다니는 저소득층 등 약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명문대 교수 아버지와 인도의 저명한 영화감독 어머니를 둔 금수저다. 샌더스는 과거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신도 인세(印稅)로 백만장자가 되자 표적을 억만장자로 좁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모순은 대중의 뇌리에서 금방 잊혔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 가격과 시장 물가, 고환율 등에 고통 받는 한국도 민주사회주의의 영향권에서 무풍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그 이념의 실험장이 되는 순간 피해는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다. 맘다니가 1%대 지지율에서 출발해 작년 11월 선거에서 5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열 달 남짓이다. 정치권이 내란 청산과 당권 싸움에 골몰하며 민생 경제를 팽개친다면 ‘한국판 맘다니’의 등장은 시간 문제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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