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만 잘했는데 다 잘할 수 있다고 착각
세상 일은 뜻대로 안 되고 의욕도 잃어…
어느 날 숨차게 다시 바벨 들다 깨달았다
중학생이 15㎏ 들 때처럼 한 발씩 나가자
1도씩 움직이면 ‘인생의 원’ 점점 커져
힘들 때 다시 뛸 준비, 그게 우리 삶이다
세상 일은 뜻대로 안 되고 의욕도 잃어…
어느 날 숨차게 다시 바벨 들다 깨달았다
중학생이 15㎏ 들 때처럼 한 발씩 나가자
1도씩 움직이면 ‘인생의 원’ 점점 커져
힘들 때 다시 뛸 준비, 그게 우리 삶이다
일러스트=이철원 |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부지런히 인사를 나눈다. 평소 연락 없던 지인들과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눈다. 첫해, 첫날은 각 사람에게 여러 의미를 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한다.
나도 새해가 되면 꼭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무엇을 이룰지, 첫 달의 시작과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구상한다. 하지만 올해도 생각만 하다 보니 벌써 한 달이 다 지나 있었다. 인생엔 성장에 불필요해 보이는 당장의 일들이 너무 많고, 그것을 하다 보면 하루가 저문다.
나는 시간 낭비를 유난히 아까워한다. 시간을 아끼려 계획을 세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획 세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어떻게 해야 시간을 더 유익하게 쓰고, 목표를 기한 안에 이룰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늘 제자리인 듯한 내 모습에 실망한다. 이 감정은 은퇴 후 더 잦아졌다. 역도만 잘했던 나는 국가대표로 오래 지내다 보니, 다른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관계도, 공부도, 인생도 모두 국가대표처럼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대단한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고, 실력도 늘지 않았다.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의욕도 사라졌다.
그렇게 몇 번 마음이 무너지고 심란하던 어느 날, 새벽 눈이 번쩍 떠졌다. 문득 역도가 하고 싶어 역도장으로 나갔다. 굳어 있던 몸을 푸니 열이 오르고 땀이 났다. 경직된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도 풀리는 듯했다. 1년 넘게 바벨을 잡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금메달리스트인데...’ 하며 가장 좋아하던 스쿼트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너무 잘했다. 바벨을 어깨에 지고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숨차게 동작을 취했다. 바벨을 지고 점프도 하며 더 격렬하게 몸을 쓰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대로 매트에 누워 거친 숨을 가다듬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에너지를 다 쏟아내니 몸의 불필요한 힘이 다 빠진 듯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으니, 다른 것을 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운동을 처음 했을 때가 떠올랐다. 역도장에 들어서 첫 동작을 배우던 때, 나무 막대로 자세를 익히던 때. 그 순간 개인적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맞아, 내가 갑자기 세계 신기록을 들 수 있었던 게 아니었지. 거기까지 가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 내가 그 시간과 양을 채우지 않고 그런 성과를 바라는 건 양심 없는 거지….’
그 후로 나는 인생의 숙제들을 역도에 대입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15㎏ 바벨을 들던 때처럼, 1㎏씩 올리기 위해 인내하며 반복하던 훈련처럼 말이다. 이후로 조급함이 사라졌다. 오히려 너무 느긋해져서 문제가 될 때도 있었지만, 이런 여유가 생기니 계획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좀 부족해도 마음이 편했다. 내 안의 불안이 가라앉고 여유를 가지게 되니, 시간이 내 박자에 맞춰 움직여 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모든 일을 역도에 대입해 생각한다. 이 생각들이 실망을 덜어주었고, 포기하는 일이 줄지는 않았지만 대신 끊임없이 시도하는 힘을 기르게 해주었다.
1분씩, 1시간씩 차근차근 시간의 양을 채우며 마침내 이루는 때를 기다린다. 그 시간이 더디게 느껴질 때면 지루함보다 ‘빨리 이루면 재미가 없지’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으니, 하나 이룬다고 숙제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더 큰 숙제가 기다리기에 모든 것이 벅차게 느껴질 때는 일부러 시간을 길게 가질 때도 있다.
역도가 즐거웠던 이유는 기록 경기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했는지, 잘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일들은 이런 확인이 어렵다. 양으로 나타나지 않고 측정할 수 없는 일들을 꾸준히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준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여 자포자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주저한다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겠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포기든 한 발을 떼어 전진한다면 인생은 더 깊고 넓어질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를 1도씩 움직이게 한다. 인생의 원이 계속 그려지고 점점 커진다.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없고 알 수가 없다. 늘 제자리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어떠한 결과가 있든 모든 일은 필요하며, 그 과정 안에 배움이 있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실수를 줄이고 지혜로워지는 비결이라 생각하기에 어떠한 경험이든 모두 나를 돕는 것이라고. 여러분에게도 끊임없이 말해 주고 싶다. 우리는 계속 돌고 있다고. 360도를 다 돌았는데도 여전히 같은 자리라 느껴져 힘이 빠질 때도 있겠지만.
여러분, 절대 실망하지 마시라. 지나온 시간들은 분명 하나의 원을 그린 것이고 앞으로 더 큰 원을 그리기 위한 자리에서 새출발하는 것이다. 한쪽 발목을 살짝 꺾고 한쪽 발목에 힘을 주어 몸을 가볍게 띄워 또 다른 원을 신나게 그려보자. 숨이 좀 차고 힘도 좀 들겠지만 한 바퀴 돌고 나면 내 안에 기분 좋은 밝은 빛이 깃들 것이다. 마음을 시원하고 환하게 해주는,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으로 새해를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 불필요한 힘을 빼고 움직여 땀을 내고 몸을 가볍게, 그렇게 다시 뛸 준비를.
장미란(당시 25세)이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 인상 140㎏을 번쩍 든 모습. 장미란은 합계 326㎏(인상 140㎏, 용상 186㎏)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